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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가락 떼 손가락 만드는 ‘예술의 경지’ 다지증·합지증 어린이 마음까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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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W병원 우상현 원장은 환자와 보호자의 ‘마음 치료’를 위해 손 모형을 만든다. 수백 명의 ‘기형 손’은 그의 손을 거쳐 모두 정상으로 돌아왔다. 신동연 객원기자

[명의 탐방] 손 수술 우상현 대구 W병원장

‘0.1㎜의 의학’. 조직 재건술은 미세수술에서 꽃을 피운다. 손가락 혈관의 굵기는 실처럼 가늘다. 이를 바늘로 꿰매 혈액을 통하게 하는 솜씨는 달인을 넘어 예술의 경지다. 몇 시간을 꼼짝하지 않고 현미경을 들여다보며 육안으로 보이지 않는 실·바늘과 씨름한다.

잠깐의 실수는 조직 괴사로 이어진다. 집중력과 정교함이 요구되는 이유다. 30년간 환자의 수부(손) 재건을 이끌어 온 의사가 있다. 대구 W병원 우상현 원장 얘기다. 그의 ‘뚝심 의료’는 외곬으로 이룬 성공이어서 남다른 의미가 있다.

부산에 사는 정화순(34·여·가명)씨는 아들 상우(2·가명)를 낳고도 얼굴을 들지 못했다. 상우는 손가락이 모두 붙는 합지증(合指症)이었다. ‘내 탓’이라는 죄책감에 엄마는 수없이 가슴을 쳤다. 수술이 어렵다며 다른 병원이 손사래칠 때, 대구 W병원 우상현 원장은 “한번 해 봅시다”라며 힘들었던 정씨를 다독였다. 지난해 10월부터 모두 두 차례, 6시간에 걸친 대수술로 상우에게 엄지와 검지가 생겼다.

두께 0.1㎜ 실로 미세혈관 꿰매

손은 29개의 뼈, 34개의 힘줄, 수많은 혈관과 신경이 집약돼 있다. 손을 다루는 수지외과 의사에겐 그만큼 정교함을 필요로 한다. 가령 잘린 손을 붙이는 수지접합술은 수술용 드릴로 뼈를 연결하고, 피부에서 가장 깊숙한 곳의 힘줄, 혈관, 신경을 차례로 이어붙여야 한다. 0.1㎜ 두께의 실로 0.5~1㎜에 불과한 혈관과 신경을 한 땀씩 완벽하게 꿰매야 손의 괴사나 기능장애가 예방된다.

 선천성 수부 기형 환자의 수술은 더욱 어렵다. 신체 조직이 성인보다 작고 약하다. 어린아이는 작은 실수에도 평생 기능장애를 안고 살아야 한다. 특수장비가 없는 수부재건술은 온전히 의사의 경험과 술기에 성패가 좌우된다. 우 원장은 이런 이유로 단지증, 육손과 같은 선천성 기형 수술은 자신이 집도한다. 그는 “30년 동안 손을 다뤘던 ‘내가 하지 않으면 누구도 이 손을 되살릴 수 없다’는 생각으로 수술에 임한다”고 말했다. 수술 후에는 주말까지 반납해 가며 환자의 손을 직접 소독하며 접합 여부를 확인한다. 경기·부산 등 전국에서 환자가 몰리면서 향후 1년간 그의 선천성 기형 수술 예약은 꽉 차 있다.

족지전이술 성공률 95% 넘어

우 원장은 발가락을 떼 손가락을 만드는 ‘족지(足指)전이술’의 대가다. 성공률은 95%를 상회한다. 수지접합이 고교 수준이라면 전혀 다른 부위를 붙이는 족지전이술은 대학원 수준의 난도가 있다. 다른 형태의 동·정맥을 잇고, 방향에 맞춰 힘줄을 붙이는 데 8~9시간은 족히 걸린다. 2011년, 그는 손가락을 모두 잃은 30대 환자에게 세 개의 ‘발가락 손’을 만들어 줬다. 세계적으로도 매우 드문 성과다.

 그의 실력은 이미 국내외에서 최고 수준으로 평가받는다. 미국 미세수술학 교과서(Operative Microsurgery), 수부외과 교과서(Hand&Upper Extremity Reconstruction)는 그가 직접 집필자로 참여했다. 관련 분야에서는 ‘닥터 우’가 최고라는 인증서와 같다. 해외에서도 그의 수술 방법을 배우기 위해 해마다 의사를 보낸다.

그가 집필한 논문은 국내 학술지 150편, SCI급 학술지 22편 등 170편이 넘는다. 그런데도 공부에 대한 그의 열정은 현재진행형이다. 매일 오전 7시20분에 수부외과, 정형외과, 성형외과 등 의료진을 모아 환자 케이스를 놓고 회의를 벌인다. 각자의 방식을 비교해 장점은 살리고, 단점은 버리면서 의술은 보다 완벽해진다.

팔 이식수술 성공이 최종 목표

“의사가 스트레스를 받을수록 환자는 행복해진다”는 그의 철학은 신축한 병원에서도 드러난다. 이 병원 최상층에는 VIP 병실 대신 의료진의 개별 연구실이 마련돼 있다. 회의실에는 수술 장면을 실시간으로 볼 수 있는 시설을 갖췄다. 의술에 대한 자신감의 표현이자 동시에 수부외과 수련 병원으로서 능력 있는 의사를 만들기 위한 투자다. 개인병원에서는 보기 힘든 3.0T MRI, 16채널 CT 등 첨단 의료장비도 들였다.

우 원장의 최종 목표는 팔 이식이다. 피부의 면역거부반응 제어 등 해결해야 할 과제가 많지만 그는 15년째 이 꿈을 포기하지 않고 있다. 연간 8000건의 수부외과 수술을 하는 ‘최고 수준의 병원’이 열어가야 할 ‘의학의 미래’라고 믿기 때문이다.

박정렬 기자 park.jungryul@joongang.co.kr

손가락 절단 사고 때 응급조치 요령
우선 깨끗한 거즈나 수건으로 출혈 부위를 압박한다. 고무줄이나 끈으로 묶으면 혈관과 피부가 손상될 수 있다. 젖은 거즈나 수건으로 절단 부위를 감싸 조직이 마르는 것을 막고, 방수가 되는 비닐팩에 담아 얼음물에 담근다. 119 구급차를 불러 병원으로 갖고 간다. 병원 위치는 사전에 알아두는 것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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