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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레기통 있고 없고 … 길 건너면 달라지는 강남대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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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강남대로 서쪽엔 왜 쓰레기통이 없을까. 서울시 행정구역도를 보면 답이 나온다. 강남대로(강남역~신논현역·760m)의 서측은 서초구 서초동, 동측은 강남구 역삼동이다.

지난 22일 강남대로 강남구 쪽 보도에만 있는 쓰레기통 (왼쪽)과 서초구 쪽에만 있는 판매대. 양쪽의 서로 다른 시설물들은 경관의 조화를 해치고 보행자에게 혼선을 준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신인섭 기자] ▷여기를 누르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10차선 도로를 사이에 두고 양쪽 구청은 서로 다른 ‘쓰레기통 철학’을 추구한다. 강남구청은 쓰레기통이 있어야 쓰레기 무단투기 행위가 사라진다고 본다. 반면 서초구청은 쓰레기통이 없어야 거리가 깨끗해진다고 믿는다. 이에 따라 서초구는 2012년 대로변의 쓰레기통을 모두 없앴지만 강남구는 그대로 남겨놓았다.

강남구 쪽 보도에만 있는 우체통.

 강남구와 서초구는 강남대로를 놓고 또 한번 이견을 보이고 있다. 서초구는 23일 “오는 10월까지 강남대로에 설치된 대형 화분 214개를 모두 철거하겠다”고 밝혔다. 강남구에 대해서도 대로변의 돌화분 127개를 함께 치울 것을 제안했다. 조은희 서초구청장은 “화분 때문에 걷기 불편하다는 민원을 반영한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강남구는 서초구의 제의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강남구청 관계자는 “노점 방지 효과가 있는데다 우리 화분은 (서초구 화분과 달리) 원형 벤치가 같이 설치돼 있어 철거가 어렵다”고 설명했다.

 두 구청의 엇갈린 행정 속에 강남대로의 ‘동서 비대칭’ 현상은 점점 더 뚜렷해지고 있다. 2009년 강남구 쪽에만 설치된 미디어폴(뉴스·날씨·교통정보 등을 제공하는 11m 높이의 통합가로등)도 도심 경관의 통일성을 해친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당시 강남구는 40억원을 들여 미디어폴 22개를 세웠다. 강남구 측은 경관 조화를 위해 서초구도 함께 설치하길 바랐지만 당시 서초구는 “예산이 부족하다”며 미디어폴 대신 신형 가로등 29개를 세웠다. 공중전화박스·구두수선대·우체통 등 강남대로 한쪽에서만 볼 수 있는 시설물은 10가지가 넘는다.

 도로를 경계로 금연 단속 규정·간판 허용 기준도 다르다. 강남역 주변에서 담배를 피울 경우 10번 출구(서초구 관할) 앞에선 5만원을, 맞은편 11번 출구(강남구 관할) 앞에선 10만원을 물어야 한다. 김창보 서울시 시민건강국장은 “실내 흡연 과태료는 10만원으로 통일돼 있지만 실외 금연구역의 과태료는 자치구 조례로 정한다”며 “두 구청에 대해 과태료 수준을 맞추도록 권고했지만 양측간 이견이 좁혀지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또 강남구가 5층 이하 높이에선 허용하고 있는 돌출형 간판 설치를 서초구는 엄격히 제한하고 있다. 아울러 강남구 쪽에선 간판에 흑·적·황색을 30% 이상 쓰지 못하지만 서초구 쪽에선 별도의 간판 색상 관련 규정이 없다.

 강남대로는 하루 유동인구가 100만 명에 달하고 지난해 외국인 방문객만 200만 명(연 인원) 이상이었던 것으로 추산된다. 도시계획 전문가들은 “강남대로가 한국의 대표 거리 중 하나인만큼 통일성 있는 관리가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이미 세계 주요 도시들은 조화로운 미관 조성과 공공 디자인 통합작업에 공을 들이고 있다. 2000년대 영국 런던이 진행한 읽기 좋은 도시(legible city) 프로젝트는 33개 자치구의 표지판·시설물 규정을 통일시켜 보행 환경을 크게 개선시켰다. 채민규 명지대 공간디자인학과 교수는 “각 자치구의 개성을 살리는 것도 좋지만 도시의 이미지를 해칠 때는 서울시가 종합적인 컨트롤타워 역할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글=장혁진 기자 analog@joongang.co.kr
사진=신인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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