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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은행이 알아서 하라’는 게 가계부채 대책이라니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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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는 가계부채 문제에 대응해 정부가 어제 ‘가계부채 종합관리 방안’을 내놓았다. 금융위원회와 기획재정부·금융감독원·한국은행이 참여해 지난 3월부터 만든 방안이다.

 가계부채는 한국 경제의 가장 큰 위험 요인으로 지적된다. 절대 규모가 이미 1100조원을 넘어섰다. 올 들어 많게는 한 달에 10조원씩 늘어나며 사상 최대 기록을 갈아치우고 있다. 증가 속도가 빨라지는 건 더 큰 문제다. 2012년 5.2%였던 증가율이 지난해 6.5%, 올 상반기 7.3%로 높아졌다. 특히 2013년까지 연 3%대에 머무르던 주택담보대출 증가율이 지난해부터 연 10% 이상으로 치솟았다. 정부는 “은행권의 가계부채 연체율이 미국의 10분의 1 수준인 0.45%에 지나지 않아 가계부채가 경제 전체를 위협하는 불안 요인(시스템 리스크)은 아니다”고 한다. 하지만 미국발 금리 인상과 집값 하락과 같은 예기치 못한 충격이 가해진다면 결코 안심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부른 미국의 비우량주택담보대출(서브프라임모기지) 사태의 기억이 아직 생생하다.

 정부도 이런 점을 충분히 고려했다고 강조한다. 내수나 부동산 경기를 위축시키지 않으면서 가계부채도 관리하는 최적점을 찾으려 노력했다는 것이다. 주택담보인정비율(LTV)·총부채상환비율(DTI)을 건드리는 대신 심사 절차를 까다롭게 하면 대출 수요를 줄일 수 있다고 설명한다. 거치 기간을 줄이고 분할상환 대출 비율을 높이는 식으로 대출 구조를 바꿔나가고, 상환 능력이 떨어지는 한계 계층에 대한 대출을 억제해 가계부채의 양과 질을 안정적으로 관리할 수 있을 것이라고도 한다.

 하지만 이걸로 효과가 있을지는 의심스럽다. 가계부채 증가의 주요인인 경기와 부동산 시장 상황이 그대로이기 때문이다. 가계부채의 절반가량은 주택 마련을 위한 대출 수요가 차지한다. 5년째 계속되고 있는 전셋값 급등으로 ‘자의 반 타의 반’으로 내 집을 장만하려는 수요가 늘었다. 대출 심사 강화를 통해 이런 수요를 억제하는 데엔 한계가 있다. 대출 수요의 또 다른 축인 창업이나 생활자금 대출이 줄거나 억제될 만한 경기 상황도 아니다.

 더구나 이번 대책은 제도보다는 금융회사들의 자율 규제에 바탕을 두고 있다. 대출 심사를 강화하는 은행 공통 가이드라인을 만드는 게 주요 방안이다. 정부는 이를 잘 관리하겠다고 한다. 언뜻 시장 친화적으로 보이지만 사실 또 다른 정부의 시장 개입이다. 이런 방식이 정부의 의지에 따라 정책 효과의 편차가 심해진다는 점도 문제다. 경기 상황 같은 변수에 따라 ‘정부의 의지’가 오락가락할 우려가 적지 않다.

 결국 이번 대책이 종합적이고 선제적이라는 정부의 설명에는 동의하기 어렵다. 가계부채에 대한 보다 장기적이고 종합적인 고민과 대책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