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흘 내 이익 만들라” … 도시바 1조4000억원 분식회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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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조4000억원 이상의 회계부정이 드러난 도시바의 다나카 히사오 사장이 21일 도쿄 본사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퇴진을 발표하고 있다. [도쿄 AP=뉴시스]
사사키 부회장

“남은 사흘 안에 120억엔(약 1110억 원)의 영업이익을 만들어라.” 2012년 9월 27일 일본을 대표하는 글로법 업체 도시바(東芝)의 PC부문 회의. 당시 사장이던 사사키 노리오(佐佐木則夫) 현 부회장이 중간 결산을 사흘 앞두고 분식회계를 지시했다. “보고는 다음날까지 하라”는 지시와 함께였다. 실현 불가능한 일이지만 어느 누구도 거역할 수가 없었다. 영업 이익을 부풀리기 위한 회계 조작은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지난 5월 도시바의 부정 회계가 불거진 이래 회사가 설치한 제 3자위원회(위원장 우에다 고이치(上田廣一) 전 도쿄고검장)이 21일 공개한 부정 회계의 한 단면이다. 도시바는 이런 방식으로 2008년 4월~지난해 12월 영업이익을 1518억엔(약 1조4090억원) 부풀린 것으로 드러났다. 도시바 자체 집계액 44억엔까지 합친 부정 회계액(1562억엔)은 세전 영업이익(5600억엔)의 3분의 1가량 됐다.

 이에 대한 책임을 지고 이 기간 사장을 역임한 니시다 아쓰토시(西田厚聰) 상담역과 사사키 부회장, 현 다나카 히사오(田中久雄) 사장이 이날 동반 퇴진했다. 창업 140년의 세계적 명문기업이 회계 부정으로 국민과 주식시장의 신뢰를 동시에 잃게 됐다. 도쿄 증권거래감시위원회의 회계부정 조사가 진행되면 파장은 더 커질 전망이다.

 3자위원회 조사 결과 도시바의 회계 부정은 회사 전체의 조직적인 차원에서 이뤄졌다. 보고서는 “인프라·TV·PC 등 주력 분야 거의 모든 분야에서 경영자들이 관여했다”고 지적했다. 회계 부정은 경영진의 단기 이익 지상주의와 상명하복(上命下服)식의 기업문화가 빚은 결과였다. 보고서는 부정 회계의 가장 큰 원인으로 사사키 부회장과 경영진의 언행을 꼽았다. 2008년 세계 금융위기 당시 실적에 압박을 받은 사사키는 회의와 메일을 통해 ‘챌린지(Challenge·도전)’라 불리는 과도한 수익 목표치를 일선에 부과했다. 지시를 받은 담당자는 압력을 견디지 못하고 회계를 조작할 수밖에 없는 상황으로 몰렸다. 보고서는 “도시바에는 상사를 거역할 수 없는 기업 풍토가 있었다”고 지적했다.

 이익 부풀리기가 계속된 데 대해 보고서는 “과다한 이익 계상으로 차기 이익 목표 달성이 어려워지자 다시 거액의 부적절한 처리를 하지 않을 수 없었다”고 지적했다. 감사시스템도 겉돌았다. 사내 회계를 감시하는 감사위원장은 도시바의 전 최고재무책임자(CFO)였다. 그는 한 감사위원이 문제를 제기했지만 감사 안건으로 올리지도 않았다. 보고서는 “감사위원 5명 가운데 3명은 재무에 충분한 지식을 갖고 있지 않은 인사”라고 밝혔다. 사내 출신 감사위원은 눈을 감았고, 사외 인사는 재무를 몰랐던 셈이다. 과다한 영업 이익에 대해선 도시바 회계감사법인이 의문을 가졌지만 경리담당자가 거짓 자료를 만들어 은폐했다고 한다. 아사히 신문은 “불편한 정보를 감추려는 경향은 종신고용이 보장된 토박이 임원으로 채워진 일본적 경영의 약점”이라고 꼬집었다.

 제 3자위원회는 이날 도시바에 경영진 책임과 더불어 과도한 이익 목표 달성 요구를 폐지할 것을 촉구했다. 이번 회계 부정으로 9월 임시 주주총회까지 도시바의 16명 임원 가운데 절반 이상이 교체될 것이라고 니혼게이자이신문은 전했다. 증권거래감시위원회의 조사에 따른 과징금도 역대 최대 규모가 될 것으로 언론들은 전망했다.

도쿄=오영환 특파원 hwas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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