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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조·자유시 함께 어울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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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문단 내부의 문제점들을 정색을 하고 비판한 폭탄선언처럼 보이는 이 인용글은 기존 '열린시조'에서 제호와 편집방향을 대폭 바꿔 새롭게 탈바꿈한 '열린시학' 여름호 편집후기의 일부분이다.

이 글의 주장이 적지 않은 무게를 갖는 이유는 필자가 1996년 계간지 '열린시조'를 창간해 문예지를 통한 시조의 대중화에 힘쓰는 한편 꾸준히 시조 창작을 해온 시조시인 이지엽(45.경기대 국문과 교수)씨이기 때문이다.

문단에 대한 이씨의 분노는 이어진다.

"(다른 분야에서는)학연과 지연이 사라져 가고 있는데 문학판에서는 공공연한 비밀처럼 끼리끼리 상을 돌려받고 평론을 통해 서로 치켜세우고 있다. 대기업이 후원하는 모 문학상의 경우도 그렇게 운영되고 있다는 비판이 자자하다. 심지어 돈 얼마면 등단이라는 수식어를 달아주는 잡지도 부지기수다."

시조 대중화, 시조 부흥을 표방하는 '열린시조'를 새단장하는 마당에 이씨가 문단 전체를 매섭게 꼬집고 나선 것은 시조시단이 '시조시인, 그들만의 리그'로 쪼그라들어 고사 직전에 처한 원인이 문단의 타락과 무관하지 않다고 보기 때문이다.

이씨의 주장에 따르면 우리 문단은 연줄에다 자본의 논리까지 개입해 영향력만을 확대하려는 이전투구가 공공연히 난무하고 있다고 한다. 그 와중에서 마이너 장르인 시조가 설 자리는 점점 좁아지고 있다는 것이다.

월간 시전문지나 계간지에서 시조를 찾아보기 어렵게 됐고 시조전문지는 시조시인들이나 돌려보는 잡지로 전락했다. 웬만한 독자들의 머리 속에 들어있는 시조의 모습은 '태평연월'이나 읊는, 시효 지난 고답적인 문학장르일 뿐이다.

이씨는 "옛것을 소중히 여기는 가운데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자는, 시조의 법고창신(法古創新) 정신이 문학이 하향평준화하는 요즘 상황을 타개하는 대안이 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구체적인 전략으로, 새롭게 선보이는 '열린시학'은 적극적으로 자유시를 끌어안는다. '열린시학'의 문호를 자유시에도 대폭 열어 시조시인들과 자유시인들이 활발하게 교류하는 마당으로 만들겠다는 뜻이다.

자유시와의 비교를 통해 자극받은 시조시인들이 한층 공들인 작품들을 내놓을 수 있고, 광범위한 자유시 독자층을 시조 독자로 끌어들이겠다는 계산이다.

'열린시학' 여름호 특집 '한국대표시와 시론'은 그런 전략에 충실하다. 이 잡지가 선정한 대표적인 젊은 시인 27명 중 시조시인은 7명에 불과하다. 신작.대표작, 시인의 시론을 차례로 실었다.

신작 특집에서 다룬 시인 18명 중 시조시인은 8명이다. 시인 오세영씨는 시조시인으로 변신, '시작사우(詩作四友)' 등 시조 5편을 내놓았다.

시를 통해 문단 이면사를 풀어내는 이경철 문예중앙 편집위원의 '시시주선(詩時酒禪)', 꽃의 아름다움을 노래한 한시를 소개하는 기태완씨의 '화정만필(花情漫筆)' 등 연재물은 읽히는 잡지를 위한 아이템들이다.

신준봉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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