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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로 끝난 유서 … 야당 “진술서 같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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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모든 저의 행위는 우려하실 부분이 전혀 없습니다.”

 지난 18일 숨진 국가정보원 직원 임모씨는 국정원 앞으로 남긴 유서에 이렇게 적었다. 그는 또 “동료와 국민들께 큰 논란이 되어 죄송하다”며 “업무에 대한 열정으로, 그리고 직원의 의무로 열심히 일했다”고 했다. 맡은 업무가 논란이 됐지만 떳떳하다는 주장이다.

 임씨는 유서에서 자신이 “내국인에 대한, 선거에 대한 사찰은 전혀 없었다”고 주장했다. 아내와 두 딸, 부모 앞으로 쓴 유서에도 “부끄러운 활동은 하지 않았다”는 내용을 담았다고 사정 당국 관계자가 전했다. 가족에게 보낸 유서는 경찰이 공개하지 않았다.

 이 같은 임씨의 유서가 19일 공개됐지만 의문은 가라앉지 않고 있다. 특히 야당을 중심으로 유서 자체에 모순이 적지 않다는 의혹이 집중적으로 제기되고 있다. 앞뒤가 맞지 않고 표현이 모호한 대목이 많다는 것이다.

 새정치민주연합의 핵심 당직자는 이날 “‘지나친 업무 욕심’이라는 표현이 애매하고 이상하다”고 지적했다. 유서에서 임씨는 “지나친 업무에 대한 욕심이 오늘의 사태를 일으킨 듯하다”고 했지만 구체적으로 설명하지 않았다.

또 ‘내국인에 대한, 선거에 대한 사찰은 전혀 없었다’는 표현도 논란을 낳았다. ‘내국인’이라는 표현이 생소할 뿐만 아니라 내국인에 대한 선거 이외의 사찰은 있었다는 뜻으로 읽힐 수도 있다는 게 야당의 주장이다.

 새정치연합 관계자는 “수신인이 ‘원장님, 차장님, 국장님께’로 돼 있는 유서 속에서 선거 관련 사찰 등을 하지 않았다고 해명한 것도 어색하고, ‘감사합니다’로 유서를 끝낸 것도 일반적인 상식으론 납득하기 어렵다”고 했다. 그래서 “유서가 아니라 진술서 같다”는 이야기도 나왔다.

 온라인상에서도 임씨 유서를 놓고 각종 의혹이 쏟아졌다. 특히 유서 군데군데 ‘v’ 표시를 해 추가로 문구를 끼워 넣고 일부 단어를 삭제한 부분에 대한 의문이 이어졌다. 임씨는 ‘공작활동’ 앞에 ‘대북’을, ‘지원했던’ 앞에 ‘오해를 일으킬’을 추가했고, ‘국정원이~’를 ‘국정원 직원이~’로 고쳐 썼다. 일부 네티즌은 “추가된 단어들은 이번 해킹 의혹을 국정원 조직이 아니라 개인 책임으로 축소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또 ‘자료를 삭제했다’→‘부족한 판단이 저지른 실수’→‘그러나 우려하실 부분이 전혀 없다’→‘저와 같은 일이 벌어지지 않도록 잘 조치해 달라’는 유서의 논리 전개도 일관되지 못하다는 지적이 나왔다.

 경찰은 유서가 볼펜으로 작성된 것으로 보고 있지만 임씨 시신이 발견된 차량에서 필기도구는 발견되지 않았다. 경찰은 “유서를 미리 준비한 것 같다”고 했다.

용인=한영익·박병현 기자, 이지상 기자 hanyi@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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