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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6년 일본 정부가 만든 지도일람도에도 ‘독도’는 없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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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일본 외무성이 펴낸 홍보책자 『다케시마(竹島) 문제를 이해하기 위한 열 가지 포인트』에 실린 일본의 독도(일본명 다케시마) 영유권 주장의 근거는 크게 다음과 같다. 1)독도는 일찍부터 일본의 고유 영토였으며, 2)1905년 독도를 시마네현 영토로 편입해 영유 의사를 재확인했고, 3)제2차 세계대전 종전 후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1951년 9월 체결, 1952년 4월 발표)에서 일본이 한국에 반환할 영토로 독도를 명확히 명기하지 않았기 때문에 독도는 일본 영토로 남았다는 것이다.

하지만 오는 8월 출간되는 『일본고지도선집』에 실린 일본의 지도들은 이 같은 일본 측 주장의 맹점을 드러낸다. 특히 책에 실린 대부분의 지도가 개인이 펴낸 것이 아닌 일본 정부 기관이 편찬했다는 점에서 일본 정부의 독도에 대한 모순된 인식을 보여준다.

① 번 지도는 1936년 육군성 육지측량부가 발행한 ‘지도구역일람도’. 확대 부분에 울릉도와 독도(竹島)가 명기돼 있고 조선 쪽에 속해 있지만 일본 학자들은 편의상 조선 가까이 그려졌을 뿐이라고 주장해 왔다. 하지만 새로 발굴된 1937년판 ‘지도구역일람도’(② 번 지도)에는 선을 긋고 여백에 ‘조선(朝鮮)’이라고 적어 울릉도와 독도가 조선의 고유 영토라는 사실을 명확히 표기해 놓았다. ③ 번은 1946년 내무성 소속 지리조사소가 발행한 ‘지도일람도’. 일본 전도지만 독도는 그려져 있지 않다. 일본은 이에 대해 전후 혼란기에 벌어진 실수라고 주장해 왔으나 이번에 공개된 1956년 건설성 지리조사소 발행 ‘지도일람도’(④ 번 지도)에도 독도는 없다.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 이후에도 일본 정부가 독도를 자신들의 영토로 인식하지 않았음을 보여준다. [사진 우리문화가꾸기회] ▷여기를 누르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우선 하야시 시헤이의 ‘대삼국지도’(1802)는 독도를 명확히 조선의 소유라고 명기함으로써 ‘독도가 일본의 고유 영토’였다는 주장이 허구임을 입증한다. 하야시는 당대에 가장 저명한 지도 편찬자였다. 그는 서구 열강의 아시아 진출이 가시화하기 시작한 당시 국제정세 속에서 일본이 주변국과의 접경을 제대로 정리할 필요가 있다는 생각으로 지도를 제작했다. 그는 직접 쓴 『삼국통람도설(三國通覽圖說)』의 서문에 자신의 지도가 개인적 판단에 의한 것이 아니라 당시 공개된 다양한 지도를 객관적으로 반영해 만들어졌다고 밝혀 놓았다.

 『일본고지도선집』에서 처음으로 공개되는 또 하나의 지도는 일제강점기인 1937년 일본 육군성 육지측량부가 발행한 ‘지도구역일람도(地圖區域一覽圖)’다. 이는 당시 일본 정부 내에서 측량 및 지도 제작을 책임졌던 육군성이 당시 일본 식민지였던 조선과 관동주(關東州), 화태(樺太·사할린), 타이완(臺灣) 등 일본에 속한 모든 지역의 지도발간 현황을 표기해 놓은 일종의 색인 지도다. 이 지도에는 한반도 오른쪽에 울릉도(鬱陵島)와 독도(竹島)가 한자로 명확하게 표기되어 있으며, 두꺼운 선으로 구분돼 ‘조선(朝鮮)’이라고 적힌 구역 안에 포함돼 있다.

 육군성의 지도일람도는 거의 매년 발행됐다. 1920년대 지도까지는 독도가 포함되지 않았다가 1930년대부터 독도가 지도에 나타난다. 이미 공개돼 있는 1936년판 육군성 ‘지도구역일람도’에도 독도는 조선 구역에 포함돼 있다. 하지만 이 지도는 이번에 공개된 37년 지도와는 달리 ‘조선(朝鮮)’이라는 구역의 명칭이 적혀 있지 않았다. 한철호 동국대 역사교육과 교수는 “36년판 지도를 갖고 일본 학자들은 편의상 독도를 조선 쪽에 가깝게 배치했을 뿐 독도가 조선의 영토라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라고 주장해 왔다”며 “이번에 발굴된 37년판을 보면 1905년 독도 불법편입 이후인 일제강점기에도 일본 정부가 지속적으로 독도를 한국 영토로 인식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번에 처음 발굴한 또 하나의 중요한 지도로 1956년 일본 건설성 지리조사소가 발행한 ‘지도일람도(地圖一覽圖)’를 들 수 있다. 일본 전체 지역의 지도발간 현황을 표기한 이 색인 지도에는 독도가 그려져 있지 않다. 지도를 펴낸 건설성 지리조사소는 현재 일본 국토교통성 산하 특별기관인 국토지리원의 전신이자 전쟁 당시 활동했던 육군성 육지측량부의 후신이다.

 특히 이 지도는 일본이 독도 영유권 주장의 중요한 근거로 삼고 있는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 이후에 간행된 지도라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 이후에도 일본 정부가 독도를 자신들의 영토로 파악하고 있지 않았음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이미 공개돼 있는 1946년판 지리조사소 ‘지도일람도’에도 독도는 들어 있지 않지만 일본 측은 전쟁 직후 혼란스러운 시기에 발행된 지도라 착오가 있었다고 억지 주장을 펴왔다.

양보경 성신여대 지리학과 교수는 “만약 전후 일본이 독도를 자국 영토로 인식하고 있었고 이를 주장하려 했다면 50년대 일람도에는 어떠한 형식으로든 독도를 기재해 넣었을 것”이라며 “이 시기에도 여전히 일본 정부는 독도가 한국의 고유 영토이자 한국에 반환해야 할 땅으로 인식 혹은 인정하고 있었음을 이 지도가 보여준다”고 말했다.

이영희 기자 misquic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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