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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정치연합 청년 몫 혁신위원 이동학의 ‘586 세대 전 상서’

중앙일보

입력

  새정치민주연합 혁신위원회(위원장 김상곤)에 청년 몫으로 참여 중인 이동학 혁신위원이 같은 당 이인영 의원 등 586 세대를 향해 쓴소리를 쏟아냈다. “당의 활로가 돼달라. 정치인은 선거 때 출마로 얘기해야 한다”고 말해 내년 4월 총선 때 당세가 상대적으로 약한 지역에서 출마할 것을 요구하기도 했다.

이동학 위원은 15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586 전 상서 - 더 큰 정치인으로 거듭나주십시오’라는 장문의 글을 올려 이인영 의원 등 ‘586 세대’를 향한 고언을 털어놨다.

이 글에서 이 위원은 “아마 많은 국민들은 1996년, 2000년, 2004년 총선에서 과거 민주주의를 곧추세운, 386 청년들의 국회 등원을 반겼을 것”이라며 “그러나 이후 불과 십여 년이 지나는 동안 무기력한 모습을 보이고 586으로 전락해버린 선배들에게 많은 국민이 느꼈을 허탈함을 저희 세대도 느끼고 있다”고 말했다.

이 위원은 “선배 세대에게 느끼는 비애는 이런 것”이라며 “하나는 후배 세대들의 사다리 걷어차기로, 이른바 ‘전대협 세대’는 든든한 후배 그룹 하나 키워내지 못했고 후배 그룹과 소통하지도 않았다”고 비판했다.

이 위원은 또 “시대는 빠르게 변해가는데 (586 세대는) 우리 사회의 새로운 어젠다나 비전을 제시하지 못했다”며 “아마도 ‘하청 정치’라는 비판을 받는 원인 중 하나일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이인영 의원을 향해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이 무모해 보이는 부산 출마를 반복해 국민 신뢰를 얻었고, 김부겸 전 의원이 ‘적진’ 대구에서 출마해 국민에게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왔다”며 “정치인은 선거 때는 출마로 얘기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 위원은 통화에서 자신의 글 취지를 “이인영 의원에게 내년 총선에 나설 지역구로 ‘쉬운’ 곳보다 ‘어려운’ 지역에 나가는 희생을 요구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의원은 당 지지세가 강한 서울 구로갑에서 두번(17ㆍ19대 국회) 당선됐다. 이 의원 측은 이 위원의 글에 대해 입장을 내놓을지 검토 중이다.

이 위원은 ‘다음 세상을 준비하는 다른 연구소’ 소장으로, 새정치연합 혁신위에 청년 몫으로 위촉됐다.

다음은 이 위원의 페이스북 글 전문.

<586 전 상서 - 더 큰 정치인으로 거듭나주십시오>

이인영 선배님 안녕하세요. 이동학입니다.

선배님이라는 호칭이 다소 어색합니다. 12년 전 입당하여, 대학생시절을 오롯이 청년당원으로 있어왔지만 그 흔한 술자리, 밥자리, 아니 티타임 한번 진솔히 가져보지 못했기에, 호칭에서 풍기는 거리보다 더한 거리감이 느껴지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보다 근본적인 것은 선배님과 저의 18년의 세월이라는 차이 때문일 수도 있겠습니다. 그리고 그 세월만큼의 차이 때문인지는 몰라도, 오래토록 우리당 청년의 대표 주자였던 선배님은 우러러 볼 수밖에 없는 정치인이었습니다.

20대 시절 전국 대학생들의 어깨를 나란히 만들고, 독재자들에게 당당히 저항하여 새로운 시대를 열었던 선배님들의 역사가 때론 부럽기도 했습니다. 그에 반해 우리세대는 20대개새끼, 88만원세대, 3포, 5포를 거쳐 7포세대, 캥거루, 니트 등 온갖 신조어가 하루가 멀다 하고 쏟아지고 있습니다. 우리는 왜 이토록 못난 세대로 살고 있을까요. 선배세대가 같은 나이 때 고민했던 건 국가의 미래였지요. 우리는 개인의 오늘만을 고민합니다. 이 나라의 젊은이들이 꿈을 잃고 헤매고 있습니다. 젊은이들 뿐 아니라 우리라는 공동체에 미래는 있습니까? 전 진솔하게 질문을 던지지 않을 수 없습니다.”

386의 청년들은 어느새 흰머리가 듬성한 586의 중년으로 변했습니다. 그새 우리사회도 많이 변했지요. 고층빌딩이 즐비하고, 네온싸인은 아침까지 꺼질 줄 모릅니다. 그런데 건물은 무너지고 배는 침몰하고 우리는 안전하지 못합니다. 1인당 국민소득이 3만불에 다가섰다는데, 우리는 여전히 가난합니다. 경제대국이라며 G20을 개최하는데, 우리는 빚에 허덕이고 있습니다. 젊은이들은 적절한 처우를 받지 못해도 군소리 없이 국방의 의무를 다하는데, 군 수뇌부의 국방비 빼돌리기 범죄는 상상하기 힘든 규모입니다. 사교육에 많은 지출을 하고 있지만, 살인적 대학등록금과 가혹한 박봉의 비정규직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더 이상 버틸 힘이 국민들에겐 남아있지 않습니다. 사회정책에 소외되어 있고, 가진 자들로부터 무시당하는 가난한 사람들은 어디선가 자살을 선택하고 있습니다. 울타리가 보호하지 못하는 노년들은 지구상 최악의 자살사태를 일으키고 있는데도, 우리사회는 노년들을 구하러 나서지 못하고 있습니다. 저출산, 세입규모의 축소, 생산력저하, 고령화로 인한 재정지출은 우리가 맞이해본 적 없는 미래입니다. 보편적 복지만을 외치는 우리당은 국민이 부담 가능한 범위와 지속가능성을 다시 한 번 점검해봐야 합니다. 이젠 국민들도, 파산하는 중산층과 서민들을 국가가 구제해 줄 수 없다는 것을 알아채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런 비극을 이렇게 해결하겠다! 다시 희망을 그려보자! 라고 말해야 하는 이때에 우리당은 지금 어떻습니까.

아마도 많은 수의 국민들은 1996년, 2000년, 2004년의 총선에서 과거 민주주의를 곧추세운, 386청년들의 국회등원을 반겼을 겁니다. 인물이 교체되고,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을 것이라 기대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후 불과 십여 년이 지나는 동안 무기력한 모습을 보이며 586으로 전락해버린 선배님들에게 많은 국민들이 느꼈을 허탈함을 저희 세대도 느끼고 있습니다. 저희세대가 선배세대에 느끼는 비애는 이런겁니다.

하나는 후배세대들의 사다리 걷어차기입니다. 우리당에 전대협이라고 일컫는 선배님들 세대 이후에 누가 있습니까? 선배님들을 응원할 든든한 후배그룹하나 키워내지 못했고, 새로운 시대를 열어낼 후배그룹과 소통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러는 새 우리당의 대의원 평균나이는 58세에 이르렀고, 이대로 가면 2년 후 전당대회를 환갑잔치로 치러야 할 상황입니다. 젊은이들은 기를 펼 수 없고, 나라와 당은 활력을 완전히 잃어버렸습니다.

다른 하나는, 시대는 빠르게 변해왔고, 또 변해 가는데, 우리사회의 새로운 어젠다나 비전을 제시하지 못했습니다. 아마도 하청정치라는 비판의 원인 중 하나일겁니다. 지금의 계파전쟁이라고 하는 최악의 상황을 만들어 낸 것에서도 자유롭지 못하십니다. 그런데 우리당원들도, 국민들도 586세대에 대한 기대는 더 이상 이어지지 않고 있는 것 같습니다. 우리당이 자리싸움에 혈안이 되어 서로 난타전을 벌이고 있는 이 상황. 절망스럽습니다.

세상은 변하고 있는데 우리 정치는 새로운 세상에 적응하기는커녕 따라가기도 급급합니다. 국민의 입장에서 보면 움직여야 할 지점이 보이는데, 서로간의 욕심이 우리를 스스로 망치고 있습니다. 당이 매우 아픕니다. 안 아픈 적이 없었지요. 그치만 지금은 국민이 너무 너무 아픕니다. 저는 매일 가슴으로 울고 있습니다. 당을 살리는 것과 국민을 살리는 것이 그 어떤 때보다도 깊숙이 연관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저는 할 수 있는 게 많지도, 그리 크지도 않습니다. 무기력감보다 희망을 보고 싶은데 말입니다.

이인영선배님. 이제는 선배님께서 당이 찾아야 할 활로가 되어주시는건 어떻습니까.

김대중 대통령은 엄혹한 박정희 정부 치하에서도 목포 출마를 통해 두각을 드러냈고, 노무현 대통령은 무모해보이는 부산 출마를 반복하며 국민의 신뢰를 얻으셨습니다. 지난 총선과 지방선거에서 김부겸 전 의원님의 대구 출마가 국민들에게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왔던 것도 잘 아실 거라 생각합니다. 손학규 전 대표님은 천당 밑의 분당이라는 적진 출마를 통해 위기에 빠졌던 당을 하나로 묶어내셨습니다. 부산에서 도전하고 계신 김영춘 선배님도 계십니다.

정치인은 평소엔 정책으로 말하지만 선거 때는 출마로 이야기해야한다고 생각합니다.

정치인 이인영의 선택은 혼자만의 것으로 끝나지 않을 것입니다. 새정치민주연합 뿐 아니라 야권 전체의 혁신, 나아가 대한민국의 혁신이란 큰 태풍을 일으키는 나비의 날개짓이 될 것이라 확신합니다. 부디 더 큰 정치인의 길을 가십시오.

선배님의 답장을 기다리겠습니다.

2015. 7. 15.
이동학 올림

김형구ㆍ위문희 기자 kim.hyoungg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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