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지원씨, 특검 소환 앞두고 산행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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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원(朴智元.얼굴) 전 청와대 비서실장은 7일에 이어 8일에도 북한산을 올랐다.

일요일인 8일의 산행에는 동교동에서 DJ(金大中 전 대통령)를 보좌 중인 김한정 비서관 등 4명이 동행했다.

서울 구기동 이북5도청 앞에서 등산을 시작해 비봉.사모바위 등을 거쳐 내려왔다. 모두 3시간30분이 걸렸다.

朴전실장은 일행과 점심을 같이 한 뒤 헤어지면서 "오는 11일 다시 산에 가자"고 얘기했다.

그리곤 웃으며 "내가 계속 산에 다닐 수 있을까"라고 말했다고 한다. 대북(對北)비밀송금 의혹을 수사 중인 특검의 소환을 의식한 물음이다.

특검은 이번주 중 朴전실장을 부를 예정인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朴전실장은 아직 소환일을 통보받지 못했다고 한다.

그는 특검조사에 대비해 김주원 변호사 등으로부터 법률자문을 받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金변호사는 'DJ 청와대'에서 민정비서관을 지냈다.

朴전실장은 측근들에게 "특검에 가서 사실을 사실대로 밝힐 것"이라고 수차례 말했다고 한다. "책임질 게 있으면 책임진다. 그러나 있는 그대로 밝히면 큰 문제는 없을 것"이라는 얘기도 했다고 한다.

노무현 대통령이 특검법을 받아들였을 때 朴전실장은 '섭섭하다'는 생각을 가졌다고 한다. "특검으로 남북 정상회담의 역사성이 훼손될까 우려하기 때문"(측근 L씨)이란다.

그래서 朴전실장은 요즘 들어 주변 사람들에게 "(내가) 역사적인 남북 정상회담에 기여했다는 것을 무한한 영광으로 생각한다"는 말을 자주 한다고 한다. "그런 기회가 다시 주어진다면 똑같은 길을 걸을 것"이란 말도 덧붙인다는 것이다.

그러나 朴전실장이 "나는 깃털이 아니다"며 대북송금의 몸통을 자임했다는 일부 언론의 보도에 대해 측근들은 "朴전실장이 그런 말을 한 적은 없고 언론이 오버한 것 같다"고 했다.

특검이 김윤규(金潤圭) 현대아산 사장 등을 기소하면서 법원에 제출한 공소장엔 朴전실장이 대북 송금자금 조성에 개입한 혐의가 있다는 대목이 있다.

이에 대해 朴전실장은 "혐의를 인정하지 못하겠다"는 입장인 것으로 전해졌다.

한 측근은 "공소장엔 박지원.임동원(林東源.전 국정원장).정몽헌(鄭夢憲.현대아산이사회 회장) 등 3명이 대북 송금자금 조성.전달에 조직적으로 개입한 것처럼 돼 있는데 朴전실장의 경우는 다르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朴전실장은 정상회담 성사를 위한 대북접촉 등에 주력했지 현대의 4천억원 대출.국정원의 대북송금 지원 등에 개입한 적은 없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朴전실장으로부터는 특검에 대해 어떠한 직접적 언급도 나오지 않고 있다.

퇴임 후엔 언론과의 접촉을 철저히 기피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8일 오전 6시30분쯤 등산을 위해 집을 나와 자정쯤 귀가했다고 한다.

등산 후 하루 종일 무엇을 했는지 주변 인사들에게 물어봐도 "모른다"는 대답뿐이었다. 그의 여의도 한양아파트 집을 찾아갔지만 경비실 직원이 1층 입구부터 차단했다.

경비실 직원은 "朴전실장은 매일 아침 일찍 나가며, 자정을 전후해 들어온다. 청와대에 있을 때와 비교하면 그것만은 변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상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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