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투리펀드 갖고 속상하신 분, 수수료 없이 갈아타시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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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3면

회사원 A씨가 적립식으로 3년간 투자한 펀드의 수익률은 -5%다. 수익률이 나쁘다 보니 환매하는 투자자가 늘었다. 가입 초기 40억원이었던 펀드 설정액(총 투자금)은 3년만에 20억원으로 반토막이 났다. 이러자 자산운용사는 점점 더 관리를 소홀히 했다. 펀드매니저가 세 번이나 바뀌면서 운용 전략이 뒤죽박죽됐다. A씨는 “마치 내 펀드를 놓고 폭탄돌리기를 하는 느낌”이라며 불만을 토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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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앞으로는 투자자 속을 썩이는 이런 자투리펀드(설립 1년 뒤 설정액 50억원 미만 펀드)가 없어질 것으로 보인다. 금융당국이 수익률이 나쁘거나 거래 비용이 많이 드는 자투리펀드를 한꺼번에 정리하기로 했기 때문이다. 금융감독원은 13일 이런 내용의 펀드시장 질서 확립 대책을 발표했다.

 이에 따르면 올해 4월 현재 전체 공모펀드(2268개)의 36.9%(837개)가 자투리펀드다. 그간 여러 차례 정리 노력에도 비중이 줄지 않고 있다. 유행에 따라 새 펀드를 만드는 ‘베끼기 관행’이 여전한데다 정부 정책에 따라 만들어지는 소규모 세제혜택펀드가 많아서다. 금감원은 지금까지의 실패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올해 말까지 자투리펀드 비중을 20% 밑으로 낮출 계획이다. 837개인 자투리펀드 중 절반 가까운 400개 가량을 없애겠다는 뜻이다.

 금융당국이 이처럼 강력한 의지를 보이는 이유는 자투리펀드가 투자자 입장에서 대표적인 ‘고비용 저효율’ 상품이라고 판단해서다. 금감원에 따르면 자투리펀드는 중대형펀드(설정액 50억원 이상)보다 유지비용이 많이 든다. 전체 펀드 순자산에서 유지비용이 차지하는 비중이 평균 1.572%로 중대형펀드(1.072%)보다 높다. 안정된 수익률을 유지하기도 어렵다. 대형펀드는 베테랑 펀드매니저에게 맡기는 반면 자투리펀드를 경험 적은 신참 매니저에게 맡기는 경우가 많아서다. 운용사 입장에서도 자투리펀드는 골칫거리다. 종자돈이 너무 작다 보니 다양한 투자처에 분산투자하기가 어렵다. 보통 100억원이 최소 투자 단위인 채권이 대표적이다. 자투리펀드 매니저는 시장이 불안해도 채권 투자로 리스크를 관리할 수 없다는 얘기다.

 금융당국은 우선 자산운용사 스스로 이런 불합리한 관행을 바로잡도록 했다. 자투리펀드를 해지한 뒤 대형펀드로 합병시키는 방법을 통해서다. 대신 해지된 펀드의 투자자는 환매수수료 없이 원하는 다른 펀드로 갈아탈 수 있다. 펀드 해지 전 투자자가 먼저 옮기겠다고 할 경우에도 환매수수료를 면제해주기로 했다. 근본적인 해법도 마련한다. 조만간 자본시장법 시행령 개정을 통해 일정 기준 이하의 자투리펀드는 대형펀드나 모자형펀드에 편입시키기로 했다. 운용사의 효율적 펀드 운용을 위해 펀드매니저 1명당 운용 펀드수를 일정 수준 이상으로 늘릴 수 없도록 제한하는 방안도 검토하기로 했다.

 그러나 자산운용사 사이에서는 정부가 자투리펀드 양산의 책임을 업계에 전가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최근 몇 년간 나온 소득공제장기펀드·재산형성펀드와 같은 세제혜택펀드 100여개는 대부분 자투리펀드다.

 송홍선 자본시장연구원 펀드·연금실장은 “정부가 업계와 공조를 통해 정책 취지를 살리는 동시에 투자자가 매력을 가질 수 있는 상품을 내놓아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번 대책에는 판매 수수료가 오프라인의 절반 이하(0.359%)인 온라인 연금펀드를 확대하는 방안도 포함됐다. 이를 위해 앞으로 새로 출시되는 연금펀드는 오프라인 뿐만 아니라 온라인을 함께 내놓도록 했다. 기존 오프라인 연금펀드도 가급적 온라인 버전을 내놓도록 했다. 이와 함께 펀드 판매회사 이동제도 활성화한다. 지금까지는 복잡한 이동절차 때문에 판매회사가 맘에 안 들어도 바꾸는 경우가 많지 않았다. 그러나 앞으로는 절차를 확 줄이는 것은 물론 수수료를 다양화해 판매회사간 고객 유치 경쟁을 유도하기로 했다.

이태경 기자 unipe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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