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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병안 통과 여전히 불투명 … 삼성, 찬성 23% 더 확보해야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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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5호 18면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의 캐스팅 보트를 쥔 것으로 평가받는 국민연금이 투자위원회를 연 10일. 삼성을 공격해 온 헤지펀드 엘리엇은 이날 이례적으로 두 차례나 입장을 내놨다.

국민연금, 제일모직-삼성물산 합병 찬성

오후 2시에는 “삼성물산 주주들이 불공정한 인수계획(합병안)에 반대할 것을 촉구한다. 국민연금은 심히 불공정한 인수합병안에 반대함으로써 올바른 결정을 내릴 것으로 기대한다”고 했다. 이후 국민연금이 “공개할 순 없지만 결론은 내렸다”고 밝히고 ‘찬성’으로 입장을 정한 것으로 알려진 오후 9시에는 “국민연금이 의결권 행사 전문위원회에 안건을 회부하길 바란다. 주주들에게 합병에 반대하는 투표를 계속 독려할 것”이라는 입장을 냈다. 합병을 결정하는 오는 17일 임시 주주총회 때까지 삼성에 대한 공세를 멈추지 않겠다는 의지를 대내외에 분명히 한 것이다.

삼성 대 엘리엇. 그들의 싸움은 계속된다. 삼성물산 지분 11.21%(의결권 기준)를 가진 국민연금이 ‘찬성’으로 기운 것으로 알려지면서 삼성은 일단 큰 고비를 넘겼다. 국민연금은 제일모직 지분 5.04%도 갖고 있다. 평가액은 1조1700억원으로 삼성물산 평가액 1조1400억원과 비슷하다. 국민연금 입장에서는 통합 삼성물산의 기업 가치가 오를 수 있다는 점도 고려한 것이다. 장기적으로는 헤지펀드의 공격으로 삼성 전체의 가치가 훼손되면 국민연금은 손해라는 계산도 한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고 삼성이 안심할 수는 없다. 여전히 유동지분이 60%에 달하기 때문이다. 삼성그룹 고위관계자는 10일 “반대 목소리는 크고 찬성은 침묵하고 있어 반대가 많은 것처럼 보이지만 유동표 가운데 찬성도 적지 않다”고 말했다.

합병은 주총의 특별안건으로 주총 참석 의결권의 3분의 2 이상, 발행 주식 총수의 3분의 1 이상 찬성이 필요하다. 국민연금을 포함하면 합병에 찬성을 밝힌 지분은 삼성계열사 및 특수관계인(13.82%), 백기사 KCC(5.96)를 합쳐 30% 수준이다. 반대 의사를 밝힌 지분은 엘리엇·네덜란드·캐나다 연기금 등 약 9.7%. 찬반을 알 수 없는 지분은 약 60%. 특히 엘리엇과 네덜란드·캐나다 연기금을 제외한 외국인 지분이 26%에 달한다. 국민연금을 제외한 국내 기관투자가(11.05%), 기타 국내 주주(22%)도 어느 쪽으로 기울지 모른다. 국내 기관투자가들은 국민연금의 결정을 따를 가능성이 크다. 그렇다하더라도 일반·소액주주 상당수가 반대 쪽으로 기울면 합병 성사를 장담할 수 없다.

의결권 자문사, ‘합병반대’ 권고
한화투자증권에 따르면 이번 합병의 사회적 관심과 특수성을 반영해 의결권 참여율을 80%로 잡을 경우, 삼성은 우호지분을 53.3% 확보해야 합병안을 통과시킬 수 있다. 엘리엇은 26.7%를 확보하면 합병을 무산시킬 수 있다. 삼성으로서는 23% 이상 우호지분을 더 확보해야 한다. 엘리엇은 17%가 필요하다. 지난달 SK합병 건에서 의결권 참여율은 81.5%였다. 의결권 참여율이 90%로 높아지면 삼성은 60%를 확보해야 한다. 현재보다(국민연금포함) 30%가 더 필요하다. 쉽지 않은 일이다. 특히 세계 1, 2위의 의결권 자문사인 ISS와 글라스 루이스뿐 아니라 국내의 서스틴베스트, 기업지배구조원이 합병 반대를 권고한 상황에서 외국인 투자자 상당수가 ‘반대’로 기울 가능성이 크다.

삼성물산 지분 0.2%를 가진 캐나다 연기금이 8일 합병 반대를 밝힌 후 미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지분 규모는 작지만 ISS가 합병 반대를 권고한 이후 사실상 처음으로 공식 입장을 밝힌 것”이라고 전했다. 외국 투자자 상당수가 ISS권고를 따를 가능성이 있음을 보여줬다는 것이다.

ISS가 투자자에게 상당한 영향력을 발휘하는 것은 널리 알려져 있지만 합병 찬반에 관한 계량화된 영향력은 알기 어렵다. 다만, 짐작해 볼 수는 있다. 올해 5월 미 보스턴대 나디아 말렌코(금융학) 교수팀이 발표한 논문 ‘의결권 자문사의 역할’(The Role of Proxy Advisory Firm)을 보면, 임원 보수 관련 주총 표결의 경우 ISS의 반대 권고는 찬성표를 25%포인트 줄이는 것으로 나타났다. ISS의 권고가 구속력은 없지만 의결권 행사에 상당한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다. 대신경제연구소 김호준 지배구조실장은 “ISS권고를 따르지 않으면 설명의무가 있기때문에 따르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여기에 합병 비율에 불만이 있는 일부 소액주주들은 인터넷에 별도의 카페를 만들어 합병반대 투표방법·청와대 감사청원·국민연금 압박을 위한 탄원서 제출 움직임도 보이고 있다.

상황이 이런 만큼 양측은 주주의 표심을 잡기 위해 총력전을 벌이고 있다. 삼성물산(www.newsamsungcnt.com)과 엘리엇(www.fairdealforsct.com)은 각각 전용 사이트를 열고 온·오프라인에서 전쟁을 벌이고 있다. 삼성은 이재용 부회장이 합병비율에 불만을 표시해 온 네덜란드 연기금 관계자를 직접 만났고, 김신 삼성물산 사장은 기관투자가를 중심으로 설득 작업을 벌이고 있다. 임원부터 부장 이하 일반직원들도 전국으로 흩어져 소액주주 마음 잡기에 나서고 있다. 의결권 위임을 권유하는 우편물도 보내고 있다.

삼성, “주주 권익위·사회공헌위 설치”
엘리엇은 ‘낮은 합병비율’을 강조하며 우호세력 확보에 나서고 있다. 삼성물산의 가치가 지나치게 낮게 평가돼 주주의 손해가 크니 반대해야 한다는 것이다. 지금처럼 낮은 비율로 삼성물산이 제일모직에 합병되면 7조8000억원 상당이 제일모직 주주에게 그대로 넘어간다고 주장한다.

삼성은 반박한다. 합병 비율은 법에 따라 한 것이기에 문제 없다는 것이다. 현 자본시장법시행령(제176조5항)은 상장사 간 합병비율은 합병결의 직전 최근 1개월 평균종가, 1주일 평균종가, 합병결의 전일 종가를 산술평균해 산정하도록 하고 있다. 이렇게 해서 나온 게 제일모직 15만9249원, 삼성물산 5만5767원으로 1대0.35다.

공격하는 엘리엇이나 방어하는 삼성이나 모두 ‘주주가치’를 강조한다. 그래서 삼성은 ‘통합 삼성물산’의 배당 성향을 30%로 높이고 거버넌스위원회(주주권익위원회)·사회공헌(CSR)위원회를 설치해 주주가치를 높이겠다’는 방안을 내놨다. ‘뉴 삼성물산’은 합병 시너지로 글로벌 초일류 기업으로 도약, 주주에게 더 많은 이익을 줄 것이라고 강조한다. 엘리엇은 삼성의 주주가치 제고방안은 “주주를 달래기 위한 의미 없는 양보일 뿐”이라고 반박한다. 일단 삼성물산이 제시한 배당성향 30%는 실제론 퇴보라고 주장했다. 이미 2014년 배당성향이 28%인데 이번 합병으로 지분이 크게 희석돼 손해를 보고 난 이후에 배당받는 상황에서 30%는 오히려 퇴보라는 설명이다.

국민연금이 강조해 온 것도 주주가치, 장기적이고 안정적인 수익률이다. 국민연금공단 이사장을 역임한 전광우 연세대 석좌교수는 “장기적 관점에서 수익을 높이고 주주가치를 높이면, 해당 기업의 가치 상승으로 이어지고 그것이 결과적으로 국익에 부합하는 방향으로 가는 것”이라며 “외국인이든 국내 투자자든 삼성물산의 주주들은 결국 안정적 수익의 극대화 관점에서 결정할 것”이라고 했다. 그 결과는 17일 주총에서 드러난다.

염태정 기자 yonni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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