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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광준의 新 생활명품 <21> 아크테릭스 베일런스] 드러나는 듯 드러나지 않는 멋쟁이 도시 남자를 위한 옷

중앙일보

입력

비엔나 벨베데레 미술관에 소장된 클림트의 그림 ‘키스’의 황금빛 색채는 어둑한 실내를 비출 만큼 강렬했다. 그림 속 주인공의 황홀한 표정은 ‘스탕달 신드롬’을 일으켰다. 가슴이 벌렁거리고 호흡은 가빠졌다. 얼어붙은 듯 한동안 움직일 수 없었다. 세계의 명화라고 부르는 이유를 온몸으로 받아들였다.

몽롱한 도취의 행복감을 깨뜨린 관광객 그룹의 발걸음 소리가 들렸다. 우르르 몰려든 사람들이 ‘키스’를 둘러쌌다. 등산복 차림에 운동화를 신은 중년 남녀가 사이사이에 보였다. 단번에 우리나라 사람인 줄 알겠다.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입는 등산복 패션을 이 자리에서 마주칠 줄이야. 클림트 그림의 넘치는 개성은 몰개성한 사람들의 옷차림과 선명한 대비를 이뤘다. 아! 정말 싫다. 산에 오르는 일과 격조의 선택이 구분되지 않는 대한민국 아저씨 아줌마들의 현재다. 서둘러 미술관을 빠져나왔다. 그들과 다시 마주치지 않기 위해서.

등산복이야 무슨 죄가 있을까. 기능성을 갖춘 옷은 편함이 돋보이는 곳에서 입어야 빛난다. 미술관에선 땀 날 일도 없다. 다리와 팔의 근육 대신 머리와 가슴으로 감정의 이완을 만끽해야 옳다. 무릇 옷차림이란 그 사람의 현재를 정확하게 드러낸다. 미술관을 산과 혼동한 등산복 차림은 정신과 몸이 담당해야 할 역할을 잊어버린 게 틀림없다.

난 산과 들을 쏘다니며 사진 찍는 일을 오래 했다. 야외용 옷의 기능성을 누구보다 실감하고 살았던 셈이다. 웬만한 아웃도어 용품 브랜드의 제품은 잘 알고 있으며 직접 써보기도 했다. 갑작스런 비에 몸이 젖지 않고 세찬 바람을 견뎌내야 일이 수월하게 풀린다. 방수, 방풍이 되며 가볍고 편한 옷이란 등산복 말고 뭐가 있을까. 삼십 년 전부터 ‘고어텍스’ 자켓을 걸치고 다녔던 이유다. 내게 작업용 옷이란 장비였다. 예측 못 할 상황에서 스스로를 지키고 쾌적한 상태를 유지시키는 좋은 옷은 곧 작업효율과 연결되지 않던가. 등산복 입고 산 속을 누빌 때 나는 빛났다.

이제 이런 옷들은 자주 입지 않는다. 또래 아저씨들과 섞이기 싫은 탓이다. 이들이 산으로 간다면 난 벌판과 바다를 향하겠다. 집단행동처럼 비치는 아저씨들의 취향은 나와 맞지 않는다. 펼쳐진 너른 벌판과 바다 너머의 기대와 상상 앞에서 알록달록한 등산복은 필요 없다. 잘난 척을 고깝게 보지 말기 바란다. 이 나라에서 등산복이 갖는 상징의 단절을 하고 싶었을 뿐이니까.

티 나지 않는 활동복의 매력

그래도 과거의 습속은 다 버리지 못했다. 좋은 아웃도어 용품과 기능성 등산복을 여전히 기웃거린다. 많은 남자들은 좋아하는 물건을 마누라 몰래 슬금슬금 사들여 모으는 일을 취미로 삼는다. 나도 그렇다. 산을 벗어나도 티 나지 않는 활동복이 있었으면 좋겠다. 얇고 가벼우며 따뜻하고 몸에 딱 맞는 핏이어야 한다. 산에서나 필요한 원색의 현란함은 질색이다. 섞어 놓으면 그것이 그것처럼 보이는 개성 없는 브랜드도 사절이다.

원하던 물건은 우연한 기회에 내게로 왔다. 평소 관심 있었던 캐나다의 아웃도어 브랜드 ‘아크테릭스’다. 파주의 아울렛에 진열된 동사의 재킷은 바로 내가 찾던 물건이었다. 게다가 커다란 할인율의 숫자가 눈을 흐리게 했다. 미친 값이란 표현은 이럴 때 쓰는 것이다. ‘아크테릭스’제품은 비싸기로 소문났다. 기회를 놓칠 리 없다. 바로 카드를 그었고 새 옷은 내게로 왔다.

이렇게 산 ‘아크테릭스’의 짧은 재킷은 오 년 째 겨울을 났다. 정장을 하지 않는 평소의 내 패션과 부합하는 디자인과 양모 펠트천의 감촉이 좋다. 얇은 셔츠 한 장 위에 걸친 옷만으로 추위는 느끼지 못했다. 주로 바깥 활동을 위해 만든 옷은 미술관과 음악 홀에 드나들어도 실례되지 않는다. 어디에도 상표가 붙어있지 않아 더 좋았다. 오래 입어도 바로 산 새 옷 같은 때깔도 여전하다.

진가는 시간을 통해 확인됐다. 드러난 부분보다 감추어진 부분에서 느껴지는 정성과 고집을 읽어낸 덕분이다. 기능성 옷은 어떻게 만들었느냐를 따져야 한다. 이를테면 옷의 재봉선을 보자. 통상의 재봉은 인치당 실의 간격을 8땀 정도로 한다. ‘아크테릭스’는 두 배나 촘촘한 16땀으로 박혀있다. 다른 옷과 다른 단단하고 야문 느낌이 어디에서 나오는지 알겠다. 약간 긴 듯한 소매의 길이도 이유가 있었다. 추운 날 팔을 들었을 때 손목이 드러나지 않도록 한 배려다. 지퍼를 올릴 때 나는 소리는 부드럽고 물리는 이빨의 정교함도 남다르다.

같은 원단을 쓴 옷이라도 품질 차이가 크다. 만든 사람의 생각과 자세가 다르기 때문이다. 옷 만드는 일은 절대 간단하지 않다. 사람의 감각이란 온몸에 퍼져 있지 않던가. 편함과 옷맵시가 따로 놀지 않아야 하며 기능과 디자인이 다투면 안 된다. 몸에 닿는 감촉의 쾌적함을 위해 재료와 제법의 조화는 소홀히 할 수 없다. 간단해 보이는 옷의 충족감은 쉽지 않다. 겉과 속의 내용이 일치하는 꼼꼼한 처리의 완벽함이 아니라면 어림도 없다. 원하는 것을 만들어주는 사람이 없어 ‘아크테릭스’가 직접 나섰다. 아쉬움의 해소는 이전에 없던 새로움으로 채워지지 않으면 안 된다. 단순한 옷은 진화된 모습으로 완성되었다. 완벽함의 추구로 만든 실물은 모두를 놀라게 했다.

단순한 디자인 능가하는 오묘한 색상

‘아크테릭스’의 디자인은 단순하다 못해 심심하다. 행여 걸그적 거릴지 모르는 주머니도 달아놓지 않았다. 더 이상 뺄 것 없는 간결한 형태는 야외에서 입는 옷의 본질만을 환기시킨다.

심심함은 색깔로 더하면 된다. 옷에 채택할 색채는 디자이너의 머리에서 나오지 않는다. 더 신선한 색채를 찾아내기 위해 전 세계를 돌아다니는 전담팀이 따로 있다. 자연과 체험을 녹인 색채는 흔히 알고 있는 붉은 색이나 푸른색이 아니다. 소의 피 색깔에 영감을 얻은 핏빛 붉은 색이 되고 푸르스름한 달빛에서 달의 푸른색을 재현시킨다. 색채가 곧 디자인으로 바뀌는 독특한 선택은 자부심 넘치는 차별성은 이어진다.

최근 베일런스 재킷을 하나 샀다. 등산복이 아니다. 활동적인 도시의 남자들을 위한 ‘아크테릭스’의 일상복 성격이다. 아무런 장식 없는 미니멀한 디자인이 눈을 끌었다. 옷은 무게를 느끼지 못할 만큼 가볍고 편하다. 습관적으로 뒤집어 보게 된다. 아크테릭스의 비밀은 대개 뒤에 감추어져 있기 때문이다. 봉제선이 보이지 않는다. 얇은 테이프로 접착시킨 새로운 기법이 들어있다. 몸의 굴곡을 신축성 있게 받아들이는 새로운 소재의 채택에서 온 변화일 것이다.

가장 마음에 드는 것은 색채다. 고비사막에서 보았던 황혼녘의 사암을 연상시키는 붉은색 감도는 고동색이다. 컬러 차트의 조합으로 얻지 못하는 낮은 채도의 세련됨이 느껴진다. 요즘 뜨고 있는 철학자 강신주를 TV에서 보았다. 입고 있는 재킷이 많이 보던 거다. 젠장! 나와 같은 베일런스다. 잘사는 법을 설파하는 철학자의 소신은 행동으로 확인됐다. 멋진 아저씨들이 넘쳐야 후배들도 기꺼이 따라가게 되지 않나.

윤광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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