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서 튀어나온 듯한 무대 … 그런데 약간 설익었네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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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뮤지컬 ‘신과 함께(저승편)’. 39세에 요절한 ‘김자홍’(가운데 빨간 넥타이 맨 사람)이 바리데기호 지하철을 타고 저승으로 가는 장면이다. 지하철 위에 서 있는 사람은 저승 최고의 무사 ‘강림’이다. [사진 서울예술단]

우리 공연계에 ‘장수 아이템’이 될 만한 창작뮤지컬 한 편이 탄생했다. 1일 서울 서초동 예술의전당 CJ토월극장에서 개막한 서울예술단의 신작 뮤지컬 ‘신과 함께(저승편)’다. 단행본만 29만 부 넘게 팔린 주호민 작가의 인기 웹툰이 원작이다. 저승의 국선변호사 ‘진기한’과 평범하게 살다 죽은 소시민 ‘김자홍’이 함께 헤쳐나가는 49일 간의 재판 과정과, 군대에서 억울하게 죽은 원귀 ‘유성연’의 한을 저승차사들이 풀어주는 사연이 이승과 저승을 오가며 전개된다.

 ‘신과 함께’의 가장 큰 장점은 재미와 감동이다. 유쾌하게 담은 사후 세계 이야기를 160분 동안 따라가다 보면 교과서적인 교훈 ‘착하게 살자’가 가슴 찡하게 남는다. 그 공(功)의 8할은 원작의 힘이다. 2012년부터 원작자와 접촉, 이 작품의 뮤지컬 판권을 선점한 서울예술단의 선구안이 놀랍다. 뮤지컬 ‘신과 함께’는 원작을 충실히 따랐다. 극의 흐름과 대사는 물론 ‘헬벅스’ ‘주글(Joogle)’ 등 원작 곳곳에 숨어있는 유머와 재치까지 똑같이 살렸다. 또 원작자가 “만화책을 찢고 나온 듯한 배우들의 모습이 무척 신기하다”고 했을 정도로 인물 하나하나를 만화 이미지와 가깝게 만들어 무대에 올렸다.

 1986년 ‘88서울예술단’으로 출발한 서울예술단은 그동안 공연계에서 입지가 모호했다. ‘한국적 창작 가무극’을 표방하며 ‘춤 비중이 큰 뮤지컬’을 만들어왔다. 예산에 맞춰 대관을 하다 보니 공연 기간도 1주일 남짓에 불과했다. 정규 단원(31명) 중심 캐스팅이어서 스타 마케팅도 어려웠다. 관객의 관심을 끌어 화제가 된다는 것 자체가 힘들었다. 이번엔 달랐다. 처음부터 ‘대중적인 콘텐트’에 방점을 찍었다. 김다현·송용진·정동화 등 꽃미남 뮤지컬 배우들을 객원배우로 데려왔다. 거기다 김광보 연출, 박동우 무대, 변희석 음악감독, 조윤정 작곡, 차진엽·김혜림 안무, 권도경 음향 등 어벤저스급 제작진을 꾸렸다. 전략은 적중했다. 개막 전부터 입소문이 무성했고, 총 15회 공연 중 13회 공연 티켓이 매진됐다.

 무대도 수작이다. 윤회를 상징하는 지름 17m 거대한 바퀴 모양 세트가 이승과 저승을 오가는 다양한 공간을 만들어냈다. 또 바퀴 안쪽 무대 바닥에 발광다이오드(LED) 스크린을 깔아 도산지옥·화탕지옥·한빙지옥 등 7개의 지옥 풍경을 역동적으로 보여줬다.

 하지만 아쉬움도 크다. 배우에 따라, 공연 회차에 따라, 노래 실력이 제각각이고 군무도 잘 맞았다 어긋났다 들쑥날쑥했다. 연습이 모자란 어설픈 상태에서 무대에 올라온 듯했다. 야심차게 ‘신과 함께’ 프로젝트를 시작했던 정혜진 전 예술감독이 지난 4월 말 임기만료로 물러난 후유증 때문인 걸까. 지난달 23일 새 예술감독이 임명되기까지 두 달 가까이 서울예술단 예술감독은 공석이었다. ‘불운’은 하나 더 있다. 하필 김광보 연출이 지난달 1일 서울시극단 단장에 임명되면서 ‘신과 함께’에 집중하기 어려운 상황에 놓였다. 지나치게 잦아 흐름을 끊는 암전, 지루한 군무 등 ‘김광보’ 이름 값이 의심스러운 부분들이 두고두고 안타깝다. 더 다듬어진 재연(再演)을 기다린다. 이번 공연은 12일까지다.

이지영 기자 jyl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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