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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view &] 금융에도 만능 레시피가 필요하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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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8면

김수봉
보험개발원원장

요즘 예능프로그램의 대세는 ‘쿡방(COOK방송의 줄임말, 요리하는 방송)’이다. 케이블TV에서 시작한 요리 프로그램의 열풍은 지상파 방송까지 확산돼 요리사(chef)와 엔터테이너(entetainer)를 합성한 ‘셰프테이너’ 라는 용어까지 탄생시켰다. 그 중 ‘마이 리틀 텔레비전’, ‘집밥 백선생’ 등에서 활약을 펼치고 있는 요리연구가가 두드러진다. 유명 연예인의 남편이면서 성공한 기업인으로만 알려졌던 그는 친근한 인상과 재치 있는 입담으로 시청자의 눈길을 사로잡으며 선보이는 레시피마다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뜨겁게 달구고 있다.

 대중에게 호응을 얻는 이유는 어디에 있을까. 그의 레시피는 의외로 손쉽고 간단하다. 요리는 어느 집에나 있을 법한 재료를 먹기 좋게 썰어서 프라이팬에 넣으면 끝이다. 시청자에게 “요리 어렵지 않쥬”라고 반문하며 맛있는 요리는 손이 많이 간다는 편견을 깨뜨린다. 특히 백미는 만능간장, 만능카레, 만능된장과 같은 ‘만능 레시피’다. 만능간장은 다진 고기와 간장, 설탕을 함께 끓인 후 이를 식혀서 요리할 때마다 두고두고 요긴하게 사용하는 것으로, 조리방법이 매우 단순하여 매일 식구들 반찬 걱정인 주부들과 싱글족이 열광하고 있다고 한다. 그가 우리에게 던지는 메시지는 간단하다. 요리는 식재료가 가진 맛을 최대한 끌어내는 창작 활동이며, 가급적 쉽게 따라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즉, 단순하게 생각하고 기본에 충실하자는 것이다.

 그의 메시지를 금융상품이나 보험에 적용해보자. 최근 민원이 자주 발생하고 불완전판매로 몸살을 앓는 주가연계증권(ELS)은 복잡한 상품구조로 인해 전문가들조차 그래프를 그려봐도 이해가 쉽지 않다. 낙인(Knock-In), 스텝다운(Stepdown) 등 새로운 용어가 여전히 낯선 것은 비단 필자만의 생각이 아닐 것이다. 이러한 낯섦과 난해함이 소비자 불만의 근원은 아닐까.

 보험도 마찬가지다. 보험금의 산정, 지급에 대해서는 보험사 직원조차 약관과 규정을 꼼꼼히 살펴봐야 할 정도로 복잡하니 소비자와 보험사 간 의견이 불일치하거나 민원이 자주 발생하는 것은 당연한 귀결인지도 모른다.

 또한 금융상품 판매절차가 소비자의 이해 증진에 도움이 되는지 의문이다. 상품에 가입할 때 소비자는 투자자 성향확인을 위한 서류는 물론 상품설명서, 계약서 외에도 다양한 형태의 설명확인서와 동의서를 포함해 최소 4~5가지 이상의 서류를 작성하고 있다. 그러나 고객에게 제공되는 자료의 내용이 중복되거나 지나치게 방대하며, 유사한 내용에 대한 면피성 자필서명과 덧쓰기 항목이 많다는 지적의 목소리가 높다. 반복되는 서명에 지쳐 정작 중요한 상품설명은 소홀히 지나칠 수 있다는 현장의 목소리가 더욱 현실감 있게 느껴지는 까닭이다.

 다시 원점에서 검토해보자. 금융회사는 소비자의 다양한 니즈를 반영해 직관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상품을 판매해야 하며, 가입절차를 간소화하고 형식에 치우치지 않도록 해야 한다. 금융위원회, 금융감독원 등 금융당국은 금융회사의 자율적인 영업활동을 보장하되 사후책임을 강화해 소비자의 알권리 충족과 불완전판매 근절에 나서야 한다.

 이런 관점에서 최근 금융당국이 추진 중인 금융개혁에 거는 기대가 크다. 금융개혁 현장점검반을 출범시켜 제도개선과 감독검사 관행 등 다양한 분야에서 실무적 어려움을 해소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으며, 핀테크 도입 등 금융산업 활성화를 위한 창조적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 특히 금융거래를 위한 본인확인 방법으로 비대면 실명확인을 인정하는 등 원칙은 지키되 거래의 효율성을 높이려는 시도가 눈길을 끈다. 이는 금융의 흐름이 절차 중심에서 원칙 중심으로 움직일 것이라는 신호탄으로 느껴진다.

 요리의 단계가 복잡하면 요리사의 수준은 높아 보일지언정 대중의 호응을 얻기는 어렵다. 대중은 적절한 노력과 돈을 투자하되 요리의 기본인 ‘맛’에 충실한 레시피를 원한다. 금융도 마찬가지다. 불필요한 판매절차는 간소화하고 고객이 간결한 상품에 집중할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해주는 것. 이것이 금융의 ‘만능레시피’다.

김수봉 보험개발원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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