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억 6000만원 물어내라" 독촉 전화 잘못 했다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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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마트폰. [사진 중앙포토]

번호 이동을 해서 새 전화기를 받아 즐거워하다 이전에 번호를 쓰던 주인과 관련된 독촉 전화를 받았다면? 한 두 번은 그냥 끊어버리겠지만 수십 차례 전화가 걸려온다면 짜증이 날 수 밖에 없다. 그것도 컴퓨터로 녹음된 자동전화라면 말이다.

컴퓨터를 이용해 자동으로 독촉 전화를 하던 기업들이 주의해야 할 만한 판결이 나왔다. 이전 번호 주인의 체납 독촉전화에 화가 난 한 미국 여성이 독촉 전화를 한 회사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해 22만 9500달러를 받게 됐다. 그것도 거대 기업인 타임워너 케이블을 상대로 말이다.

가디언은 8일(현지시간) 미국 뉴욕 맨하튼 연방 법원이 아라셀리 킹이라는 여성이 타임워너 케이블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소송에 대해 타임워너가 22만 9500달러(2억 6000만원)를 지불해야 한다고 판결했다고 보도했다.

킹은 2013년 10월 전화번호를 바꾼 후 그 번호를 사용하던 전 주인인 루이스 페레스에게 걸려오는 미납액 독촉 전화를 받기 시작했다. 독촉 전화는 컴퓨터를 사용한 로보콜(자동전화)이었고 킹은 회사에 전화를 걸어 7분 동안 자신이 누구인지를 설명했고 전화를 걸지 말라고 부탁했다. 하지만 타임워너 케이블 측은 이후에도 계속해서 자동 독촉전화를 했고, 킹은 전화를 멈춰달라고 수 차례 항의 전화를 했다.

이후 몇 달간 70통이 넘는 전화가 오자 그녀는 참지 못하고 지난해 3월 회사를 상대로 소송을 걸었다. 하지만 킹이 회사를 고소한 이후에도 74통의 전화가 추가로 걸려왔고 법원은 153통의 전화에 대해 22만 9500달러를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전화 한 통당 1500달러를 물어줘야 한다고 판결한 것이다.

타임워너 케이블 측은 연방 전화고객 보호법을 근거로 페레스에게 걸려던 전화였기 때문에 킹에게 배상할 책임이 없다고 주장했지만 법원은 타임워너 측의 주장을 인정하지 않았다. 연방 전화고객 보호법은 자동전화와 텔레마케팅 남용을 막기 위해 미국이 시행하고 있는 법이다.

법원은 타임워너 케이블 측이 전화번호의 전 주인인 페레스를 찾기 쉽지 않다는 점을 인정했지만 소송 이후에도 킹에게 74통 이상의 전화가 왔다는 점을 지적하며 “타임워너 케이블이 이 소송을 진지하게 생각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항의 전화와 소송까지 당했는데도 고객 정보 업데이트를 하지 않고 소송을 가볍게 여겼다는 것이다.

킹을 변호한 변호사는 가디언과 인터뷰에서 “회사가 사용하는 컴퓨터 자동 전화는 효율적이지 모르지만, 그 전화가 사람들의 삶을 끔찍하게 만든다면 당연히 회사는 그 대가를 치러야 할 것”이라며 “이번 케이스도 그런 사례 중 하나일 뿐”이라고 말했다. 타임워너 케이블 측은 향후 항소 여부를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정원엽 기자 wannab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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