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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 오디세이] 장사익의 '천지서 부른 노래'…눈물이 터지고 소리가 터지고…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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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오는 동안 언젠가 백두산에 오르리라는 꿈을 지녀왔다. 정작 백두산 가는 길이 열리고 숱한 사람들이 그곳을 다녀와도 나는 선뜻 백두산에 가지 못했다. 가슴 속에 오래 품어온 ‘백두산’을 별 의미 없이 관광 삼아 가기는 싫었던 것 같다.

‘평화 오디세이 2015’. 중앙일보에서 이 행사에 동참해달라는 제의가 왔을 때 깨달았다. 아, 이렇게 백두산에게 가려고 그동안 나서지 못했구나.
각계의 석학들이 북한과 중국 접경지대를 답사하며 통일에 관한 토론을 하는 ‘평화 오디세이 2015’는 진지하고 무거운 일정이었다. 백두산을 처음 대면하는 내게는 그보다 의미 있는 기회는 없을 것이라 여겼다. 막연하게 통일의 환상에 젖어 있던 문외한인 나는 ‘평화 통일’ ‘동북아 평화 협력’ 등의 세미나와 여행 중 버스 안에서의 열띤 토론과 고견을 경청할 수밖에 없었다. 마치 강호의 고수들이 진검승부를 벌이듯 전문 학자, 현장 활동가들의 폭 넓은 사고와 촌철살인 어법은 칼날이 번득이는 검의 세계보다 더 날카롭고 화려하며 스릴이 넘쳤다.

드디어 6월25일, 동족상잔의 날. 꿈에 그리던 백두산으로 향했다. 모두들 밝은 햇살을 기원했지만 가는 길 내내 흐리고 안개 속에 비까지 내린다. 그래도 평생 보고 싶었던 백두산의 품속에 안기는 순간은 햇살 가득한 청명한 순간이 될 것이라고 굳게 믿으며 기원했다. 아니나 다를까. 오락가락하고 비가지 내리던 날씨는믿어지지 않게도 마지막 순간에 환하게 개이고 드디어 꿈에서만 그렸던 정상에 올랐다.

“아!” 가슴이 막히고 말도 잊어버리고 속 깊은 곳에서 뜨거운 눈물이 치솟아 올랐다. 천 길 낭떠러지에 한 마리 나비가 되어 천지에 몸 던지고 싶었다. 숨죽이고 가만히 땅에 엎드려 보니 태고 적 숨소리가 들리는 듯하고 따사로운 기운이 내 몸을 감싼다. 소리가 절로 나온다. 아주 작은 내 목소리가. "야~ 야~~ 야~~~~" 곁에 있던 선생님들도 함께 하신다. "야~야~야~~"

온 몸이 가벼워졌다 채워졌다 한다. 맑고 청량한 바람과 기운이 내 몸 속에 들어온다. 하늘이 손에 잡힐 듯 땅 제일 꼭대기에서 내 노래가 터져 나온다.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새벽 빛 와 닿으면 스러지는 이슬 더불어 손에 손을 잡고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노을 빛 함께 단 둘이서 기슭에서 놀다가 구름 손짓하면은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 가서 아름다웠더라고 말하리라.”

천상병 시인의 '귀천'이다. 장군봉 위에 구름 걷히고 햇살이 영롱하다. 파란 하늘이 천지 속에 담기고 지상 최고의 요람 속에서 생사를 노닐며 하늘 벗 하니 노랫말 하나하나가 내 몸을 휘돌아 나오니 희열, 그 자체였다. 노래가 또 나온다.

“정이월 다가고 삼월이라네. 강남 갔던 제비가 돌아오면은 이 땅에도 또 다시 봄이 온다네.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를 넘어 간다.”
민족의 노래 아리랑을 민족의 영산 백두산에서 부른다. 꽁꽁 언 추운 겨울 지나 춘삼월이 오면 얼음 녹고 강물 풀려 강남제비 돌아오고 이 땅에도 따스한 봄이 오는. 이것이 진정 우리가 바라는 평화통일의 염원이 아닐까? 목청껏 원 없이 불렀다. 모든 분들이 어깨춤 추며 목 놓아 노래하니 천지인(天地人) 하나가 되었다.

평화와 통일은 우리 민족의 꿈이다. 꿈을 꾸고 그 꿈을 위해 노력하고 준비해야만 그 꿈을 이룰 수 있다. ‘평화 오디세이 2015’는 통일을 위한 큰 포석이 될 것이다. 통일 되는 그날에 백두산에서 민족의 노래 ‘아리랑’을 목청껏 부르고 싶은 꿈을 또 다시 가져 본다.

장사익(음악인·유니세프 친선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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