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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가 경쟁자 부인까지 끌어들여 비난한 까닭은…

중앙일보

입력

미국 대선에 뛰어든 공화당의 젭 부시 전 플로리다 주지사와 부동산 재벌 도널드 트럼프가 불법 이민자 문제로 난타전을 벌이고 있다. 트럼프는 지난달 멕시코 불법 이민자를 놓고 “마약과 범죄를 들여오고 성폭행범들”이라고 비난해 파문을 불렀다.

멕시코 출신의 아내를 둔 부시 전 주지사는 4일(현지시간) “이처럼 전례 없는 추한 발언을 하는 것은 공화당을 대변하는 게 아니다”며 “트럼프가 틀렸다”고 공개 비난했다. 부시 전 주지사는 “트럼프는 불을 지르고 자극하고 관심을 끌기 위해서 이런 말을 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부시 전 주지사는 취재진이 아내가 멕시코 출생인데 개인적으로 불쾌했는지를 묻자 “물론이다. 당연히 그렇다”고 했다.

트럼프는 곧바로 반격했다. 성명을 내 “부시는 국경과 국경 치안에 대해 아무 것도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며 “법을 어기고 국경을 넘는 불법 이민자들이 사랑 때문에 오는 것으로 믿고 있다”고 비아냥거렸다. 부시 전 주지사의 아내 콜룸바를 끌어들인 비난이다.

지난 6월말 CNN ㆍORC 여론조사에서 부시 전 주지사(19%)와 트럼프(12%)는 공화당 주자군에서 각각 1ㆍ2위를 차지했다. 둘의 격한 비난전은 공화당내 노선 싸움이 본격화됐음을 보여준다. 부시 전 주지사는 강경 보수층이 반대하는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교육개혁과 이민개혁에 동조하며 중도 보수로 간주된다. 반면 트럼프는 ‘불법이민=범죄자’ 발언에서 드러났듯 강경 보수층의 심리를 대변했다.

두 사람의 설전에 당 안팎의 강온 진영이 가세했다. 부시 전 주지사와 지지층이 겹쳤다가 대선 불출마를 선언했던 밋 롬니 전 매사추세츠 주지사는 트럼프 발언에 대해 “심각한 실수”라고 지적했다. 공화당 주자 중 유일하게 낙태를 공개 찬성해 왔던 ‘틈새 보수’ 조지 파타키 전 뉴욕주지사도 “무례하다”고 트럼프를 비판했다.

반면 트럼프 옹호론도 만만치 않다. 강경 보수인 티파티의 지지를 받는 테드 크루즈 상원의원은 “트럼프가 사실을 말했다”고 거들었고, 당 바깥의 압력단체인 미국보수연합의 맷 슐랩 회장은 “트럼프 얘기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고 압박했다. 지난해 오바마 대통령 탄핵을 거론했던 스티브 킹 하원의원은 “트럼프는 소신을 과감하게 밝힌 몇 안 되는 정치인”이라고 치켜 세웠다. 이 때문에 불법 이민 설전은 공화당내 강경 보수와 중도 보수의 세 싸움으로 확산되는 양상이다.

워싱턴=채병건 특파원 mfemc@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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