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핵보유 확인땐 經協도 어려울 것"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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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 정부 출범후 최대 과제인 북한 핵문제 해결과 한미관계 재정립의 조타수를 맡은 윤영관(尹永寬) 외교통상부 장관의 표정은 여유가 느껴졌다.대통령직 인수위 시절과 취임초 “중압감 때문에 잠도 제대로 이루지 못한다”는 그의 어깨가 1백일만에 다소 펴진 것 같았다.지난 3일 그를 만나 현안에 대해 들어보았다. -지난 1백일 동안 북핵 문제.대미 외교로 눈코 뜰 새가 없었을 텐데.

"단기적으로 북핵이라는 난제가 있고, 중장기 과제로는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이 있는데 노력한 결과 전반적인 방향이 잡힌 것 같아 다행이다. 국민과 해외의 반응이 긍정적이었던 것은 이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워낙 중대한 문제인 만큼 앞으로도 긴장을 풀지 않고 계속 노력할 것이다."

-참여정부 출범 이전과 이후 한.미 관계에 큰 변화가 있었다. 무슨 계기라도 있었나.

"주요 원인 중 하나는 상황 변화다. 상황 변화의 중요한 계기는 우리 정부의 이라크 파병 결정이라고 본다. 파병 결정 전의 한.미 관계와 결정 후의 한.미 관계는 상당히 변화했다. 결정 전에는 한국에 대한 미국의 불안감이 고조돼 있었고, 미국 정부 인사들의 발언이 한국인이 원하는 방향과 차이가 있었다. 그러나 결정 이후 미국의 한국에 대한 불안이 줄고 (북핵 문제 등을 놓고) 대화를 중시하는 쪽으로 바뀌는 등 많은 변화가 일어났다."

-대북 정책도 많이 바뀐 것 같다.

"대북 정책 주무 부서장은 아니지만 관련 부처 입장에서 얘기한다면, 우리 정부가 내걸고 있는 신뢰, 원칙 있는 대화를 강조하고 싶다. 투명하고 시장 논리를 중시하며 상호 신뢰를 조성하는 방향으로 북한과 관계를 설정한다는 것이 원칙이다. 다시 말해 전 정부의 정책 기조는 유지하되 운영은 다르게 하는 것이다."

-한.미 관계가 복원되면서 남북 관계가 냉각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데.

"기본적으로 남북 관계와 한.미 관계를 이분법적으로 재단하는 것은 단기적인 맥락에선 일리가 있어도 장기적으로는 올바르지 않다고 본다. 북한이 자신의 문제(경제난 등)를 풀려면 미국으로부터 안보를 보장받고 경제 지원을 받는 등 대미 관계를 개선하지 않고는 불가능하다. 따라서 한국은 대북.대미 관계를 배타적으로 보면 안된다. 한.미 관계를 긴밀히 하는 것은 북한이 안보 문제를 해결하고 경제 지원 등 목적을 달성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문제는 북한이 자신들의 문제를 해결하기를 원하면서도 잘못된 수단(핵 개발 등)으로 해결하려는 데 있다."

-그렇다면 북한을 강하게 설득할 필요가 있지 않나.

"물론이다. 그것 외에는 대안이 없다."

-북핵 해결 과정에선 위기 국면도 올 수 있을텐데.

"기본적으로 현재는 북핵 문제를 외교적 협상으로 풀어야 하는 단계로 본다. 이를 위해 한국은 미국과, 또 국제 사회와 공조해야 한다. 한.미.일 3국은 이미 공조를 하고 있고, 미국도 북한은 이라크와 다르다고 인식하고 있다. 그런 차원에서 베이징(北京)에서 3자회담이 열렸던 것이고, 앞으로도 한.미.일 간 실무회담을 통해 어떤 결정이 나올 것이다."

-북한의 백남순 외무상이 최근 방북한 미국 의원들에게 '핵을 보유하고 있고, 또 핵 재처리도 거의 끝냈다'는 입장을 밝혔다. 북한이 핵무기를 보유한 것이 맞나.

"확실한 정보는 없는 것으로 안다. 그렇지만 북의 핵 보유 선언은 대단히 중요한 정치적 의미를 갖는다. 한.미.일 모두 그 선언에 어떤 의도가 있는 것인지 심각하게 고려하고 있다. 북한도 결국 대화를 원할텐데 그런 선언이 올바른 것인지는 의문이다. 북핵을 대화로 풀자는 입장을 대단히 좁혀버린 결과를 빚었다. 핵 확산 금지는 중국.러시아까지 합의한 국제사회 원칙이다."

-북한이 핵을 보유한 것으로 확인되면 남북 관계를 동결해야 한다는 지적이 있다.

"가정 상황에 대해 구체적으로 언급하기는 어렵다. 북핵 문제가 어떻게 진전되든 남북 경협은 별개로 진행돼야 한다는 주장이 있는데 (핵 보유가 확인되면) 경협이 별개로 진행될 수는 없다고 본다. 개인적으로는 경협이 진전돼 북의 시장 기능이 작동하고, 경제가 살아나길 희망한다. 그러나 이것은 어떤 의미에서 북의 중장기적 해법인데, 단기적으로 우리 안보에 심대한 위기가 온다면 중장기적 해법을 추진하기 어려워지는 것이 현실이다."

-노무현 대통령의 현충일(6일) 방일에 대해 말이 많다.

"북핵 문제로 주변국과의 공조가 필요했고, 그 때문에 조기 방일 결정이 내려졌다. 그런데 일본이 우리가 요구한 국빈 방문을 받아들였고, 1년 전에 스케줄을 잡는 일왕의 일정도 변화가 있었다. 일본 총리도 유럽 순방 스케줄을 조정했다.북핵, 한.일 간 현안 해결과 관련한 성과를 놓고 실질적으로 평가해주었으면 좋겠다."
강영진.오영환.강찬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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