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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로공단 가발공장 배옥병 여성 노조지부장, 34년 만에 무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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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대 전두환정권 시절 구로공단에서 노동조합을 만들어 농성을 주도했다는 이유로 1년 6개월간 옥살이를 한 배옥병(57ㆍ여) 전 ㈜서통 노조지부장이 34년 만에 재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았다.

배 전 지부장은 80년 5월 구로공단 가발공장인 ㈜서통에서 동료들과 서통노조를 결성했다. 그 무렵 비상계엄령을 전국으로 확대한 신군부는 ‘노동조합 정화’ 명목 하에 노조를 와해시키기 위해 핵심 간부들을 불법체포해 수사했다. 배 전 지부장도 그 중 한 명이었다. 그는 보안사 수사관들에 의해 영장 없이 서빙고 보안분실로 연행돼 지부장직을 박탈당했다.

하지만 서통노조는 이듬해 5월 임금인상 요구안이 받아들여지지 않자 회사 강당에서 노조원들을 모아놓고 농성을 벌였다. 노조 창립 1주년을 맞아 노조기관지인 ‘상록수’를 배포하기도 했다.

경찰은 배 전 지부장을 다시 영장 없이 연행해 상록수 배포 및 노조 단체교섭권과 단체행동권을 행사했다는 혐의(옛 국가보위에 관한 특별조치법 위반)로 7월 구속기소했다. 82년 대법원까지 간 끝에 징역 1년6개월이 확정됐다.

배 전 지부장은 30년 만인 지난 2012년 서울고법에 이 사건 재심을 청구했다. 또 당시 국가보위법 일부 조항에 대해 위헌법률심판제청을 신청했다. 이와 관련, 헌법재판소는 지난 3월 국가비상사태 하에서 근로자의 단체교섭권과 단체행동권을 제한한 국가보위법 일부 조항은 ‘위헌’이라고 결정했다.

서울고법 형사5부(부장 김상준)는 옛 국가보위에 관한 특별조치법(국가보위법) 위반 등의 혐의로 기소된 배 전 지부장에 대한 재심에서 무죄를 선고한다고 5일 밝혔다. 재판부는 “국가보위법은 헌법이 요구하는 국가긴급권의 실체적 발동요건, 사후통제, 시간적 한계에 위반돼 헌법에 어긋나 위헌”이라며 “따라서 이를 전제로 한 국가보위법상 규정들도 모두 위헌”이라고 무죄 선고 이유를 말했다.

1970~80년대 노동운동의 대모격인 배 전 지부장은 현재 친환경 무상급식 풀뿌리 국민연대 상임위원장, 나쁜 투표 거부 시민운동본부 상임대표 등을 맡고 있다. 그는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젊은 시절 억울하고 힘들었던 기억이 있는데 바로 잡히게 돼 다행”이라고 말했다.

백민정 기자 baek.minje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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