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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 전문가 4인의 진단 …인덱스 환자 여행경로 확보, 즉시 바이러스 검사 시스템 갖춰야

중앙일보

입력

“한국에서의 메르스 확산은 아주 특별한 사건이다. 그전까지는 공기감염이나 사람과 사람 간에 전파되는 일이 아주 드물 것으로 예상했지만 한국에서의 확산을 보면 양상이 다르다. 위생관리, 특히 의료기관에서의 위생관리가 아주 중요한 것으로 보인다.”

외국 감염병 전문가들이 한국 메르스 사태에 대해 내린 중간 결론이다. 감염병 분야에서 손꼽히는 학술지인 ‘국제 감염병 저널(International Journal of Infectious Diseases)’은 최근호(7월호)에 ‘메르스에 대한 공중보건 개선과 연구과제-한국 메르스 발생의 교훈’이란 기고문을 실었다. 정식 논문은 아니지만 한국 상황(6월 9일까지)을 신속하게 분석, 문제점을 제기해 눈길을 끌고 있다.

국내에서 사우디아라비아 다음으로 메르스 환자가 많이 발생하면서 세계 각국의 감염병 전문가들도 한국 상황을 주시하며 연구를 진행 중이다. 같은 상황을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 이번 사태를 분석하고 교훈 찾기에 분주하다.

이번 기고문 덴마크 아루스대학 에스킬드 페테르센 박사, 홍콩 중문대 데이비드 후이(許樹昌) 박사, 미국 아이오와대 스탠리 펄만 교수, 영국 칼리지런던의 알리무딘 줌라 박사 등 세계적인 전문가 네 명이 참여했다.

이들은 “지금까지 나온 정보를 바탕으로 볼 때 (평택성모병원의 경우) 환자와 의료진 사이에 메르스가 빠르게 확산된 것은 공기조절 시스템이 부실했기 때문으로 보인다”며 “화장실과 문 손잡이 등에서 바이러스가 검출된 것은 소독이 비효율적으로 진행됐음을 보여준다”고 지적했다.

저자들은 특히 한국에서 메르스가 발병하면서 메르스가 어느 지역에 국한된 질병이 아니라 전 세계 보건안보의 주요 위협 요인이 되고 있다고 언급했다. 또 바이러스에 돌연변이가 생기지 않아도 대대적으로 유행할 수 있는 잠재력을 갖고 있음이 확인됐다고 덧붙였다. 한국의 환자로부터 채취한 바이러스 유전자(RNA)가 사우디에서 나온 바이러스와 동일하고 의미 있는 변이가 일어나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가능하면 많은 환자로부터 나온 바이러스의 유전자를 분석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제안했다.

메르스로 인해 국제 공중보건 비상 상황에 이르지는 않았지만 메르스 바이러스의 특성과 훨씬 감염성이 강한 형태로의 진화를 감안할 때 집중적인 모니터링을 계속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이들은 또 지난 18개월 동안 에볼라 확산으로 인해 메르스를 포함한 여러 지구적인 감염병의 위협이 완전히 가려졌다고 꼬집었다. 새로운 감염병이든 재등장한 감염병이든 여러 가지 감염병을 동시에 감시하는 데는 지금의 지구적 감시 시스템이 부적절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사례라는 것이다.

저자들은 한국 사태에서 보듯이 메르스 감시 시스템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개인, 특히 의료기관 종사자들이 메르스 환자에게 노출이 됐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신속하게 진단을 받고, 초기에 자가 격리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병원에서는 인덱스 환자(Index Patient·한국의 1번 환자처럼 감염 확산의 원인과 과정을 보여주는 환자)가 도착하면 여행경로를 바탕으로 메르스 감염 위험이 있는지 분석하고 곧바로 바이러스를 검사할 수 있는 시설을 갖춰야 한다고 조언했다.

저자들은 지난 10여 년 사이에 코로나바이러스가 치사율이 높은 호흡기 질병, 사스와 메르스 두 가지를 일으켰다며 코로나바이러스를 타깃으로 하는 항바이러스 약품 개발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이들은 메르스가 중동 이외의 국가로, 다른 대륙으로 계속해서 확산된다면 결과는 심각할 수밖에 없다고 경고했다. 보건 체계나 실험실 설비가 부족해 모르는 바이러스를 신속하게 검사할 수 없는 국가로 더 확산된다면 엄청난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는 것이다. 특히 라마단 동안 사우디의 메카를 전 세게 180여 개국, 100만 명의 순례자가 방문한다는 점을 감안하면 메르스의 지구촌 확산도 일어날 수 있다고 우려했다.

한편 기고자의 한 사람인 덴마크의 페테르센 박사는 중앙 SUNDAY와의 e메일 인터뷰를 통해 “한국에서 메르스가 퍼진 것은 붐비는 응급실, 긴 대기시간 탓으로 보인다”고 진단했다. 페테르센 박스는 “하지만 한국은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를 깨달은 다음부터는 아주 잘해냈고 메르스의 종식에도 아주 근접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는 “메르스 바이러스는 공기로 전파되지만 인플루엔자나 홍역보다는 훨씬 전파력이 낮기 때문에 메르스 환자와 가깝게 접촉해야만 전파된다”며 “메르스 예방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의료진이 자신의 환자가 메르스에 감염됐을 가능성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면 신속히 환자를 격리하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페테르센 박사는 “질병 감시와 통제에서 국제적인 협력이 중요하지만 기본적으로 국가 보건당국의 책임”이라며 “자체적인 능력이 없는 아프리카 국가 같은 경우는 국제적인 협력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강찬수 기자 kang.chans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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