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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여학사양산…일할곳이 없다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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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나는 결코 나의 대학졸업장을 좋은 조건의 신랑에게 시집가기위한 전시용 패물로 만들기는 싫었다. 나는 내능력을 사회에서 펴보고 싶었다. 그러나 여자를 오라는 데는 없었다. 신문에난 사원모집광고는 모조리 찾아 원서를 냈다. 13번을 떨어졌다. 만일 내가 링안의 권투선수였다면 과거 어느 권투선수의 4전5기 신화를 훨씬 .능가하는 13전14기의 주인공이되었으리라. 그러나 나는 여자라는 단하나의 이유 때문에 링안에서는 일 자체가 불가능했다. 끝내 링밖의 관객으로 머물러 링안에서 나의 강한 펀치를 날려볼수 없는 것이 안타깝다』
올해 E대 영문과를 졸업하는 송모양(23)의 취업실 패기는 오늘 우리사회 여학사들의 가슴에 응어리져가는 한(?)을 대변한다.
가정과 국가가 막대한 투자로 여성고급인력을 양산하면서 정작 이들을 사회 어느 부문에도 활용하지 못하는 모순이 갈수록 심각한 상황으로 문제를 키우고있다.
『대부분의 기업이 여자들에겐 응시기회조차 안준다. 형식적으로 원서를 받더라도 결국 떨어뜨린다. 뽑더라도 그 숫자는 극히 제한된 분야에서 극소수다. 결국 남은 대부분의 여대졸엄생은 연줄을 찾아 낙하산식 취업을 하거나 결혼해 일찌감치 가정에 들어 앉을수 밖에 없다』
S대 신방과4년 김영희양(23)이 말하는 오늘날 여대생취업의 구조적 실상이다.
대졸여성의 취업수난은 접수창구에서부터 시작된다.
한국여성개발원이 82년10월부터 83년5월까지 서울에서 발간되는 주요일간지에 실린 5천2백92건의 구인광고를 조사해 본 결과 취직시험에 관한 광고중 35%가 응시자격에 「병역필한 남자」라고 못박고 있으며 특히 대기업은 그 비율이 더 높아 52%로 여자에겐 아예 응시의 기회조차 주지않고 있다. 이 때문에 여대생들간에는 『우리도 여군에 지원하자』는 농담까지 유행하고 있다.
또 응시자격이 주어지더라도 비서나 디자인·컴퓨터프로그래머등 몇몇 직종에 국한될 뿐 그밖의 일반직에는 여성이 발들여 놓을 틈이 없다. 84년 9월 노동부가 조사한 자료에 의하면 84년도 대졸여성 6만5천7백89명 가운데 취업을 희망한 사람은5만2천7백89명에 달했으나 겨우 1천73명만이 취업했다. 취업희망자가 97%에 이르는데 비해 취업률은 2%에 불과했다는 결과를 보여준다.
이집계는 83년도 취업희망대졸여성 4만7백89명(대졸여성 4만8천1백56명)중3·6%인 1천7백25명이취업한 것 보다 줄어든 숫자다.
이를 다시 4년제 대학졸업자와 전문대졸업자로 나누어보면 83학년도 대졸여성 취업자 1천7백25명중 전문대출신은 9백88명, 4년제출신이 7백37명이며 84년도에는 취업자 1천73명중 전문대가6백27명, 4년제가 4백46명으로 전문대 출신여성의 취업률이 오히려 앞서고 있어 막상 4년제대학 졸업자의 취업이 더욱 어려워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결국 우리사회는 전문이나 고급인력으로서의 여성을 그다지 필요로하지 않고 있다는 얘기다.
그런데도 여성고급인력은 양산이 거듭되고 있다. 올해 4년제 대학졸업 예정여성의 수는 지난해에 비해 약 1만명이 늘어났다. 85년의 취업률은 그만큼 더 떨어질 수 밖에 없는 상황이다.
『봄학기까지 가봐야 정확한 통계가 나오겠지만 지금의 상황으로 보아 지난해에 비해구직은 더 어러울것 같다』 이대 직업보도실장 표경희씨의 말이다. 70년대이후 우리나라 여성의 진학률은 계속 상승세를 보여왔다. 교육의 기회가 늘어나 82년 전체고교졸업여학생의 38·1%가 대학진학을 했고 여성은 전체대학 입학자의 36·8%를 차지했다.
고교졸업자의 대학진학 증가율을 살펴보면 73∼77년사이 여성의 대학진학률은 3·1%(남성은 10·8%)에 불과했으나 78∼82년 사이에는 28·7%(남성21·0%)의 증가율을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노동시장의 구조는 양적 확장은 있으나 질적인 낙후를 벗어나지 못하고있다.
우리나라 여성취업자 대다수가 낮은 연령과 학력, 그리고 미혼이다. 업종도 저임금의 단순노동집약적인 것에 지나지 않는다. 대졸의 고급여성인력이 파고들 틈은 비좁다.
세종대 주경난교수의 조사에 의하면 우리나라 전 여성춰업자중 대학졸업여성의 비중은 1·86%에 불과하며직종별로 볼때 전체여성근로자중전문기술직에 2·54%, 행정관리직에 0·10%뿐이다.
『매년 급증하고있는 대졸여성인력이 사장되고 있는 것은 국가사회적으로 큰 낭비다. 시급히 대책이 마련돼야한다』
한국교육개발원장 김영식박사는 「여성고급인력의 적정수급계획」 의필요성을 강조했다. 「1인당 최고학부까지 교육비가 9천만원이며 1년에 4만명의 여대생중 3만여명을 경제적으로 활용하지 못하고 사장케된다면 고급주택 3만채를 한강물에 던져버리는 것과 같다」는 풍자적 해설도 호소력이 있다.
물론 대졸여성은 결혼을 해가정에서 좋은 아내, 훌륭한 어머니로서 그 교육투자의 값을 해내리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질높은 가정주부」 양성을 목적으로 막대한 교육투자를 계속해야 할 것인지는 재검토가 필요한 문제다. 이미 양성한 고급인력부터 활용하는방안이 그래서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한양대 이병태 교수 (노동법) 는 『여성이 가정을 지켜야한다는 사회통념이 개선돼야 한다』 고 지적하고 『이를위해 정부·기업·여성인력3자의 꾸준한 공동노력이 필요하다』 고 말한다.<김징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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