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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로존 떠나라” “긴축안 수용을” … 노벨상 수상자도 갈렸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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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1일(이하 현지시간) 그리스 전역은 구제금융 국민투표를 둘러싼 시위로 몸살을 앓았다. 국제 채권단이 제안한 구제금융 협상안의 수용 여부를 놓고 찬성과 반대가 팽팽하게 맞섰다. 찬반 논란이 가열되는 곳은 그리스 국내만이 아니다. 경제학자 간의 논쟁도 치열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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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미국의 조셉 스티글리츠 컬럼비아대 교수와 폴 크루그먼 프린스턴대 교수는 ‘그렉시트(Grexit·그리스의 유로존 탈퇴)’ 쪽에 섰다. 그리스 국민이 국민투표에서 ‘반대’ 표를 던지는 게 낫다는 것이다. 유럽연합(EU) 집행위원회와 유럽중앙은행(ECB), 국제통화기금(IMF)으로 이뤄진 트로이카가 그리스 위기에 대해 내놓은 처방이 틀렸다는 판단에서다.

 스티글리츠는 지난달 29일 영국 일간지 가디언에 실린 기고문에서 “5년 전 트로이카가 강요한 프로그램으로 인해 그리스의 국내총생산(GDP)이 25% 감소하는 등 최악의 결과를 가져왔다. 젊은 층의 실업률도 60%를 넘어섰다”고 지적했다.

 크루그먼도 뉴욕타임스(NYT) 칼럼에서 “그리스가 금융위기의 수렁에서 빠져나오지 못하는 이유는 그리스 경제가 무너졌기 때문이고 그것은 수익을 함께 끌어내린 긴축 정책에서 기인한다”고 밝혔다. 긴축재정이 성공한 경우는 대부분 통화 가치를 대폭 끌어내려 수출 경쟁력을 높인 국가였다고 덧붙였다. 유로화를 사용하는 그리스는 이런 선택을 할 수 없는 만큼 유로존에서 벗어나 자국 통화를 도입해 수출 경쟁력을 회복하고 관광 수입을 늘려 경제를 살려야 한다는 주문이다.

 이들의 주장에 마틴 울프 파이낸셜타임스(FT) 수석경제칼럼니스트도 가세했다. 울프는 1일 자신의 칼럼에서 사실상 반대를 지지한다고 입장을 표명했다. 울프는 채권단의 긴축안은 “심장 마비를 겪은 비만 환자에게 단식 요법을 주문하는 것과 같다”며 “그리스에 필요한 것은 경제성장인데 긴축으로 경제가 무너져 GDP 대비 공공부채 비율만 높아졌다”고 지적했다.

 『21세기 자본』으로 유명한 토마 피케티 파리경제대 교수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채무 탕감을 받아 성장을 이룩한 독일과 프랑스가 부채에 허덕이는 그리스에 긴축을 요구하는 것은 아이러니”라고 비판했다.

 구제금융 협상안을 수용해야 한다는 목소리는 주로 보수적인 경제학자들에게서 나온다. 이들은 구제금융에 따른 긴축 프로그램에 대해 그리스 국민이 가혹하게 생각하는 점은 인정한다. 그럼에도 그리스의 경제 체질을 개선해 성장의 밑거름을 뿌리기 위해서는 허리띠를 졸라맬 수밖에 없다고 이들은 지적한다.

 이들은 그리스가 새 통화를 도입해 통화 가치를 낮춰도 경쟁력에 도움이 되지 않을 것으로 본다. 그리스는 수출 기반 제조업이 취약해 통화 가치가 떨어져도 수출로 벌어들일 돈이 많지 않다는 것이다. 관광산업에는 도움이 되겠지만 경제를 살릴 만큼은 아니라는 판단이다. 대신 물가 급등과 임금·연금 감소의 고통이 상당해지고 자본 유출과 예금 인출 등이 일어나 경제가 붕괴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국가 디폴트(채무불이행) 사태를 경험했던 아르헨티나의 도밍고 카바요 전 경제장관은 VOX 기고문에서 “그렉시트는 트로이카가 요구한 개혁안보다 더 고통스러운 결과를 가져올 것”이라고 주장했다.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로 그리스계인 크리스토퍼 피사리데스 런던정경대(LSE) 교수는 독일 도이체벨레(DW)와의 인터뷰에서 “독일 등 채권단의 요구가 가혹한 부분이 있기는 하지만 ECB 등의 지원 없이 경제가 제대로 굴러가기 어려운 만큼 협상장에 복귀해야 한다”고 말했다. 3000억 유로가 넘는 그리스의 총 부채에 대한 만기 연장(50~60년)과 채무 재조정 등을 논의하는 게 현명한 대처라는 설명이다.

하현옥 기자 hyunoc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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