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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르스로 내수 침체, 그리스로 수출 흔들리는데 거부권 정국에 막힌 민생 … “추경 빨리 통과시켜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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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1. 메르스에 소비심리 위축

투자·생산 모두 3개월째 하락
공장 가동률은 금융위기 수준
“성장률 2%대 떨어지면 늦는다
금리인하 등 비상 대책 가동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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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엔저 공세로 수출이 타격을 입은 데다 중동호흡기증후군(MERS·메르스) 여파로 내수마저 얼어붙고 있다. 경제를 지탱해온 수출과 내수의 동반 침체는 경기 회복 전망을 더 어둡게 하고 있다. 30일 통계청이 발표한 산업활동동향에 따르면 5월 전체 산업생산은 전월 대비 0.6% 감소했다. 지난 3월 이후 3개월 연속 감소다. 5월 제조업 평균 가동률도 전월 대비 0.7%포인트 떨어진 73.4%를 기록했다. 글로벌 금융위기를 겪던 2009년 5월(73.4%)과 같은 수준이다. 전백근 통계청 산업동향과장은 “자동차와 반도체의 수출이 부진하면서 5월 제조업 지표가 나빠졌다”며 “메르스는 6월 들어 첫 사망자가 나왔기 때문에 5월 경기지표엔 별다른 영향을 주지 않았다”고 말했다. 메르스가 본격적인 영향을 미치지 않았음에도 수출 부진 때문에 이미 산업생산이 타격을 입기 시작했다는 의미다.

 메르스의 영향은 6월 체감지표나 유통업체 매출에서 본격적으로 나타난다. 이날 한국은행이 발표한 6월 제조업 기업경기실사지수(BSI)는 66으로 한 달 전보다 7포인트 하락했다. 2009년 3월(56) 이후 6년3개월 만에 가장 낮은 수치다. 이는 전국 1736개 제조업체를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다. 지수가 100 이상이면 현재의 경기를 긍정적으로 보는 기업이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곳보다 많다는 의미다. 100 아래면 그 반대다. 지난달 25일 발표된 한국은행의 6월 소비자심리지수(CCSI)도 2년6개월 만에 최저치인 99를 기록했다. 지난해 세월호 참사 이후 더욱 얼어붙은 소비 심리 때문에 고전하던 백화점·대형마트도 직격탄을 맞았다. 메르스 첫 사망자가 발생한 지난달 1일부터 29일까지 롯데백화점의 매출은 4.5% 감소했다.

 관건은 메르스 사태가 얼마나 오래가느냐다. 장기화하면 경제에 미치는 충격은 그만큼 커질 수밖에 없다. 30일 산업연구원은 메르스 충격이 3개월간(6~9월) 지속할 경우 관광 지출이 최대 4조6366억원 감소할 수 있다는 전망을 내놨다. 만일 5개월간(6~10월) 지속하면 감소액은 최대 7조5616억원으로 예측됐다. 올해 국내총생산(GDP)은 메르스가 3개월 지속할 경우 0.14~0.25%포인트, 5개월이면 0.24~0.42%포인트 감소하는 것으로 전망됐다. 박문수 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소비심리가 위축되면서 서비스업을 중심으로 경제활동이 둔화할 것”이라며 “대외적인 국가신뢰도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쳐 수출과 투자 유치 등에 차질을 빚을 우려가 있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한국 경제가 심각한 위기 국면에 빠지지 않도록 하기 위해선 과감한 선제적 조치가 필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김성순 단국대 경제학과 교수는 “경기는 본격적인 침체 국면에 접어들면 되살리기가 훨씬 힘들어진다”며 “2%대 성장률로 들어서기 전에 금리 인하와 추가경정예산안 편성 등 내수를 살릴 비상 대책이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오정근 건국대 특임교수는 “정부가 추경을 편성해도 국회가 이를 제대로 통과시킬지가 의문”이라며 “편성한 추경은 가급적 빨리 집행하는 것이 효과가 크다”고 말했다.

세종=김민상 기자, 구희령 기자 kim.minsang@joongang.co.kr

2. 그리스 사태로 금융시장 벌써 요동

글로벌 자금, 신흥국서 이탈 중
중국 2분기 성장은 7% 못 미쳐
수출 28% 의존하는 한국에 타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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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청난 와일드카드(Huge Wild card).’

 미국 뉴욕 연방준비은행 윌리엄 더들리 총재가 그리스의 채무불이행(디폴트)과 유로존 탈퇴(그렉시트)를 두고 한 말이다. 지난달 28일자 파이낸셜타임스(FT)와의 인터뷰 자리에서다. 왜 더들리 총재가 그리스 디폴트와 그렉시트를 종잡을 수 없는 와일드카드로 봤을까. 톰슨로이터는 30일 전문가들의 말을 빌려 “현재 그리스 사태 자체는 2010년과 견줘 별것(something) 아니다”며 “그러나 그리스 채무불이행이나 그렉시트가 숨겨진 전달 경로를 거치면서 충격이 증폭될 가능성이 상당하다”고 짚었다.

 우선 글로벌 자금시장 상황이 심상찮다. 블룸버그통신은 “(이번 그리스 사태 이전) 글로벌 채권시장 거품이 조정 증상을 보였다”고 전했다. 전반적으로 채권 값이 가파르게 떨어지고 있었다는 얘기다. 이런 때 불거진 그리스 위기는 한국 등 신흥시장으로 가는 자금을 마르게 하기 십상이다. 벌써 조짐은 나타나기 시작했다. 미국·독일·일본 국채 등 안전자산으로 불리는 채권 값은 29일 올랐다. 이와 달리 신흥시장 국채와 회사채 값은 가파르게 떨어졌다. 블룸버그는 “그리스 사태가 글로벌 연간 총생산(77조 달러)에 맞먹는 채권시장(76조 달러)의 위기감을 극대화하고 있다”며 “이 거대한 자금이 갑작스러운 움직임을 보이는 순간 체력이 약한 나라가 위기를 맞을 수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전망”이라고 했다.

 그리스발 채권시장 불안이 미국 기준금리 인상과 맞물리면 거대한 자금의 역류로 이어질 수도 있다. 1994년 ‘데킬라 효과’가 그런 예다. 미 기준금리 인상과 멕시코 금융위기가 맞물리며 자금이 안전자산으로 쏠렸다. 그 여파로 멕시코 사태가 남미 등으로 번졌다. 미국 선물시장에 따르면 올 9월 미 중앙은행이 기준금리를 올릴 확률은 30~40% 정도다. 그리스 사태가 악화하면 인상 시점이 늦춰질 수 있다는 전망이 제기됐지만 아직은 ‘올해 안엔’ 인상하기 시작할 거란 전망이 우세하다.

 중국도 심상찮다. 중앙은행이 28일 지급준비율과 기준금리를 동시에 내렸다. 주가와 실물 경제 부양을 동시에 겨냥한 조치였다. 상황이 그만큼 좋지 않다는 방증이다. 수출 시장이 불안한 데다 내수마저 시원찮다. 이런 때 주가 하락은 내수 악화와 자금시장 불안을 부르는 도화선이 되기 쉽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올 2분기 성장률이 중국 정부 목표치인 7%보다 낮은 6.55%(전년 동기 대비)에 그칠 전망이다. 이래저래 국내 경제엔 좋지 않은 소식이다. 한국 외환당국은 그리스 사태 자체보다는 이후 전개될 ‘나비효과’에 더 긴장하고 있다. 홍승제 한국은행 국제국장은 “앞으로 그리스의 디폴트 가능성이 좀더 가시화되면 글로벌 투자자들의 위험 회피 성향이 고조되며 국제 금융시장의 변동성은 더 커질 수 있다. 정부, 관계기관과 함께 글로벌 금융시장과 국내외 유동성 상황을 면밀히 점검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국은 올해 5월 현재 수출의 27.6%를 중국에 의존하고 있다. 해마다 중국 수출에 의존하는 비율은 높아지는 추세다. 중국 금융시장 불안이 실물경제로 이어지면서 한국 수출이 입을 타격이 과거보다 더 클 수 있다는 얘기다. 톰슨로이터 역시 “유럽은 중국의 최대 수출시장”이라며 “그리스 사태가 더 나빠지면 중국의 성장률이 더욱 낮아질 가능성도 있다”고 전했다. 박상현 하이투자증권 투자전략팀장은 “중국 경기 위험을 비롯해 유로화의 추가 약세, 세계 자본 흐름 불안은 한국 수출 전망을 더욱 부정적으로 만드는 요인”이라고 했다.

강남규·조현숙 기자 dismal@joongang.co.kr

3. 경제살리기 외면하는 정치

당정 추경 규모도 못 정하고 제자리
한시가 급한데 빨라야 7월 말 처리
국회법 무산 땐 민생법안도 파행
6월 통과된 법은 ‘메르스’ 하나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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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대통령이 지난달 25일 국회법 개정안에 거부권을 행사하면서 시작된 ‘거부권 정국’이 다른 현안을 삼키고 있다. 박 대통령은 당시 “민생 법안의 사활을 건 추진이 필요함에도 정치적인 이해관계에 묶인 것(국회법 개정안)들부터 서둘러 해결되는 것을 보고 비통한 마음마저 든다”며 “여당에서조차 그것(민생법안)을 관철시키지 못하는 상황에서 (정부 시행령에 입법부가 강제성을 갖는) 국회법 개정안으로 행정업무마저 마비시키는 것은 국가의 위기를 자초하는 것”이라며 거부권을 행사했다. 하지만 ‘거부권 정국’과 그에 따른 ‘유승민 파동’의 비용이 예상보다 크다. 거부권 행사가 여권 내분을 촉발시키며 입법부를 마비시켰을 뿐 아니라 행정업무의 혼선을 초래하고, 민생경제법안을 묶어놓는 역설이 발생하고 있다.

 당장 추가경정예산을 적시에 처리하지 못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중동호흡기증후군(MERS·메르스) 사태로 인한 경기 침체와 가뭄 피해에 대응하기 위해 이른바 ‘메르스 추경’이 필요하다는 데는 정부와 여야의 입장이 같다. 하지만 새누리당 유승민 원내대표의 거취가 논란이 되면서 당장 추경을 제대로 논의하지 못하고 있다.

 지난달 25일 당정협의 때 정부는 ‘15조원+알파’의 추경안을 가져왔지만 새누리당 지도부는 ‘메르스 맞춤형 추경’을 강조하며 “구체적 지출항목을 먼저 가져오라”고 요구해 추경 규모를 확정하지 못했다. 추경 논의는 여기서 한 발짝도 나가지 못했다. 최근 청와대는 유 원내대표 체제의 여당과 “당정협의가 무슨 의미가 있느냐”는 입장을 보였다.

 당정은 1일 추경 편성을 논의할 예정이지만 추경안을 국회에서 통과시켜야 할 여당 원내사령탑인 유 원내대표는 회의에 참석하지 않아 실효가 있을지 의문이다.

 정부는 6일까지 추경안을 국회에 제출할 계획이지만 지금 같은 상황에선 신속한 처리는 어렵다는 관측이다. 유 원내대표는 30일 “국회가 추경을 최대한 신속하게 처리할 수 있도록 야당의 협조를 구하겠다”면서도 “추경 편성은 사실 정부에서 넘어오는 타이밍이 너무 늦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추경 처리는 아무리 빨라도 20일 정도는 걸린다”고 말해 7월 말이 다 돼서야 ‘원 포인트 국회’에서 처리한다는 뜻을 비쳤다.

 민생법안 60개도 지난달 25일 박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 뒤 발이 묶여 있다. 당시 여야는 온라인을 통한 소액 투자를 받을 수 있게 만들어 청년 벤처 창업을 활성화하는 ‘크라우드 펀딩법(자본시장법 개정안)’, 하도급 거래의 보호 대상을 중견기업까지 확대하는 ‘하도급거래공정화법’ 개정안 등을 통과시키기로 합의했다.

 하지만 거부권 파문으로 국회가 올스톱 되면서 민생법안 처리가 원점으로 돌아갔다. 여야는 6일 국회 본회의 때 이 법안들을 처리하겠다고 예고했다. 하지만 새정치민주연합이 요구하는 국회법 개정안의 본회의 표결이 새누리당의 집단퇴장으로 무산될 경우 본회의가 또다시 파행될 수도 있다.

 이미 올해 국회의 법안 처리 실적은 낙제점에 가깝다. 올 들어 열린 임시국회에서 각각 76건(2월 국회), 49건(4월 국회), 62건(5월 국회)에 불과했다. 6월 국회에선 지난달 25일 ‘메르스 법안(감염병예방법안)’을 처리한 게 유일하다.

 거부권 정국이 지속될 경우 해외 관광객의 숙소를 확대하려는 ‘학교 앞 호텔법(관광진흥법 개정안)’과 서비스산업기본법안 등 여야가 합의하지 못한 경제활성화 법안의 처리는 더욱 어려워질 전망이다. 한국경제연구원은 서비스 부문의 규제가 완화되면 2020년까지 청년 일자리 35만 개가 생길 것이란 분석을 내놓고 있다.

 전문가들은 경제심리를 고려해 추경이라도 신속히 처리하라고 주문했다. 서울시립대 김우철(재정학) 교수는 “추경을 어느 분야에 쓰느냐도 중요하지만 경제심리에 끼치는 효과를 고려한다면 추경 편성은 빠르면 빠를수록 좋다”며 “국회 논의 과정이 너무 길면 약효가 떨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허진·이지상 기자 bi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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