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진회숙 칼럼] 그래 이거 짝퉁 맞아

중앙일보

입력

진회숙 음악칼럼니스트

명품 가방과 관련해 우스갯소리가 있다. 비가 올 때 가방을 머리 위에 쓰고 뛰면 짝퉁이고, 가슴에 안고 뛰면 진품이라는 것이다. 가방이 뭐 상전이라도 되냐고 하겠지만, 나라도 몇 100만원 짜리 가방이라면 행여 젖을세라 가슴에 안고 뛰었을 것이다. 명품 가방과 관련해 한 가지 생각나는 일이 있다.

몇 년 전의 일이다. 당시 나는 강의하러 다닐 때 갖고 다니기에 편리한 가방이 필요했다. DVD나 책 같은 자료가 들어가면서도 너무 크지 않은 것을 사고 싶었다. 하지만 이리저리 다녀 봐도 적당한 가방을 찾을 수가 없었다. 디자인이 마음에 드는 가방은 있었지만 크기가 너무 크거나 아니면 너무 작거나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아파트 단지의 재활용품 보관함에서 우연히 가방 하나를 발견했다. 너무 크지도 않고, 작지도 않은, 그동안 내가 찾던 딱 그런 크기의 가방이었다. 누군가 쓰다가 싫증이 나서 내놓은 것 같은데, 내 눈에는 거의 새것과 다름없어 보였다. 순간 이게 웬 떡이냐 싶었다. 그래서 다른 사람이 가져 갈세라 얼른 집으로 가지고 들어왔다. 그리고는 엄청난 횡재나 한 것처럼 딸에게 자랑을 했다.

그런데 가방을 살펴보던 딸이 심드렁한 표정을 지으며 이렇게 말했다. “이거 xx 짝퉁이네.” 가방에 새겨져 있는 로고가 바로 그 유명한 xx인데, 재활용품 보관함에 버린 걸 보니 짝퉁이 분명하다는 것이다. 나는 그때까지 xx의 로고가 어떻게 생겼는지 모르고 있었다. 물론 알았다고 해도 가방을 주워 오는데 하등 망설임이 없었겠지만 말이다. 아이는 약간 한심하다는 표정으로 “만약 가방 주인이 엄마가 그 가방 들고다니는 거 보면 어떻게 해”라고 했다. 나는 “내가 뭐 도둑질을 했냐. 자기가 들기 싫어서 버린 거 내가 들고다니는 게 뭐 어때서”라고 대꾸했다. 하지만 아이는 창피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나는 그 가방을 열심히 들고다녔다. 물론 한 가지 불편한 점은 있었다. 가끔 가방에 새겨진 로고에 관심을 표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이었다. 한 번은 백화점 세일에 갔다가 점원에게 물건값이 너무 비싸다고 한 적이 있었다. 그랬더니 점원이 “아이, xx백 들고다니시는 분이 이걸 비싸다고 하면 어떻게 해요”하는 것이 아닌가. 그 말을 듣고 나는 대뜸 “아, 이 가방 짝퉁이예요”라고 했다. 그런데 이에 대한 점원의 반응이 의외였다. 얼굴이 빨개지면서 어쩔 줄을 몰라 했다. 나는 그녀가 왜 나보다 더 당황하는지 이유를 알 수 없었다. 고객으로 하여금 자신의 치부를 드러내도록 했다고 생각한 것일까.

여하튼 그 후로도 내 짝퉁 가방에 관심을 보이는 사람이 몇 명 있었다. 그 전에는 다른 사람이 들고다니는 가방에 전혀 관심이 없었는데 이런 일이 반복되다 보니 언제부터인가 내 눈에도 xx 로고가 들어오기 시작했다.

그러던 어느 날 지하철을 타고 가다 놀라운 사실을 발견했다. 같은 칸에 xx 로고가 새겨진 가방을 들고 있는 사람이 네 명이나 되는 것이 아닌가. 물론 그 중에는 진품도 있고 짝퉁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사람의 취향이라는 것이 제각각인데 어떻게 한 지하철 안에 같은 로고를 새긴 가방을 든 사람이 네 명이나 될 수 있을까. 그 기막힌 우연이 놀라웠다.

“엄마도 명품 백 하나 장만해요. 엄마 나이가 짝퉁을 들 나이는 아니잖아요.”

딸아이가 이렇게 말한다. 물론 무리를 해서 사려면 못 살 것도 없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그 비싼 가격만큼 내가 만족을 느낄 것 같지는 않다. 말하자면 가격 대비 만족도가 그다지 높지 않다는 뜻이다. 그래서 딸아이가 뭐라고 할 때마다 “진짜 멋쟁이는 남들이 드는 가방은 안 들어”라고 빠져나가곤 한다.

하지만 지금도 나는 ‘남들이 드는 가방’을 들고다니고 있다. 얼마 전 대학 동창 모임에 문제의 가장을 들고나갔다. 내가 비싼 가방을 살 리 없다고 생각한 한 친구가 대뜸 이렇게 물었다.

“너 그거 짝퉁이지.”

그 말에 나는 주저 없이 이렇게 대답했다.

“당연하지.”

진회숙 음악칼럼니스트 hwesook7@naver.com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