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승민 “박 대통령께 거듭 죄송” 손으로 쓴 ‘반성문’ 읽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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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승민 새누리당 원내대표가 26일 오전 열린 ‘2015 정책자문위원 위촉장 수여식’에서 참석자들을 향해 허리 숙여 인사하고 있다. 유 원내대표는 이 자리에서 “대통령께서 국정을 헌신적으로 이끌어 나가기 위해 노력하고 계시는데 여당으로서 충분히 뒷받침해 드리지 못한 점에 대해 송구한 마음을 금할 길이 없다”고 말했다. 앞줄 왼쪽부터 원유철 정책위의장, 윤명희·이명수·이채익·김희국 의원, 이화수 정책자문위 부위원장. [뉴시스]

새누리당 유승민 원내대표는 26일 국회 헌정기념관 대강당에서 열린 당 정책자문위원 위촉장 수여식 인사말 도중 양복 안주머니에서 A4 용지 한 장을 꺼냈다.

 “오늘 아침 조간신문 보고 많이 놀라셨을 것 같아 꼭 좀 한말씀드리고 싶다”면서다.

 그가 꼭 전하고 싶었던 말은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사과였다. 유 원내대표는 “대통령께서 어제 국무회의에서 매우 강한 말씀으로 정치권을 비판하셨고 여당 원내대표인 저에 대해서도 질책의 말씀을 하셨다”며 “우선 국민 여러분께 참으로 송구스럽고 우리 박근혜 대통령께도 진심으로 죄송하다는 말씀을 드린다”고 했다.

 그는 “대통령께서 국정을 헌신적으로 이끌어가기 위해 노력하고 계시는데 여당으로서 충분히 뒷받침해 드리지 못해 송구한 마음을 금할 길이 없고 진심으로 죄송하다는 말씀을 드린다”고 거듭 사과했다. “국회 사정상 야당이 반대하면 꼼짝할 수 없는 현실 속에서 최선을 다했다고 생각하지만 저의 노력이 부족하지 않았는지 되돌아보게 된다”고도 했다. 그러면서 “저도 진심으로 최선을 다할 테니 대통령께서도 마음을 푸시고 마음을 열어주시라”고 했다. 그는 “박 대통령께 거듭 죄송하단 말씀을 드린다”며 “저는 박근혜 정부와 박 대통령의 성공을 누구보다 간절하게 바라는 사람”이라고 강조했다.

 직접 손으로 쓴 ‘반성문’을 다 읽은 그는 90도로 고개를 숙였다. 행사가 끝난 뒤엔 기자들 질문에 응했다.

 - 청와대와 앞으로 연락을 할 건가.

 “아직 못하고 간접적으로 전해 듣는 상황인데 주말에 자연스럽게 연락해 보겠다.”

 - 박 대통령의 마음이 열릴 것이라 생각하나.

 “저희들도 새로운 마음으로 잘하고 대통령께서도 마음을 여시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나라를 위해 중요하다.”

 - 어떤 게 죄송한가.

 “야당이 반대하면 한 발자국도 못 나가는 상황에서 공무원연금 개혁을 성사시키기 위해 최선을 다했는데 그 과정에서 국회법 개정안이나 야당이 요구해서 따라간 부분에 대해 대통령께서 걱정하실 만큼 생각을 덜한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 당·청 관계 개선을 위해 어떻게 할 건지.

 “지금 메르스 사태도 그렇고, 추경(추가경정예산) 같은 것도 그렇고, 경제활성화(법안) 남은 것도 그렇고, 당·정·청이 힘을 합치지 않으면 굉장히 어려울 걸로 본다. 계속 이런 갈등이 있으면 공멸할 수 있다는 위기의식을 가지고 마음을 합치는 게 중요하다.”

 - 그간 소신 있게 할 말은 다해 왔는데.

 “(박 대통령 발언에) 저도 상당히 놀랐고 충격을 받았다. 국민, 당원, 국회의원 다 그랬을 거다. 일단 이 경색된 관계부터 푸는 게 문제다. 그걸 푸는 데 대통령께 죄송하다고 말씀드리는 게 필요하다면 더 할 수 있다.”

 - 청와대에선 ‘유 원내대표의 상황 인식이 안이하다’는 얘기가 나오는데.

 “잘 모르겠다. 들어본 적 없다.”

 그는 사과 이후에도 청와대 반응이 싸늘하자 당황했다. 한 재선 의원은 “유 원내대표를 만났더니 ‘내가 정치해 온 시기 중 가장 힘든 시기’라고 하더라”고 전했다.

이가영 기자 ideal@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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