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과세 해외주식펀드 나온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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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금을 덜 내는 해외 주식투자 전용펀드가 내년에 등장한다. 국내주식형 펀드와 마찬가지로 매매로 얻은 차익에 세금을 물리지 않는 것은 물론 환율 변화로 생긴 환차익도 비과세하는 상품이다. 다양한 비과세 금융상품을 하나로 묶은 ‘만능 통장’인 개인종합자산관리계좌(ISA)도 도입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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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5일 정부가 발표한 ‘하반기 경제정책방향’에는 금융상품에 물리는 세금 제도를 바꾸는 내용이 다수 포함돼 있다. ‘재(財)테크’의 기본인 ‘세(稅)테크’ 지형도가 변한다는 예고다. 핵심은 돈이 자본시장과 해외 자산으로 흐르도록 물꼬를 터주는 것이다. 고령화시대 가계소득의 ‘젖줄’ 역할을 할 자본시장을 키우는 동시에 달러를 나라 밖으로 내보내 원화 절상 속도도 좀 늦춰보려는 시도다.

 가장 눈에 띄는 대목은 세제 혜택을 주는 해외 주식투자 전용펀드를 한시적으로 도입한다는 계획이다. 현재 국내에서 설정된 해외주식형 펀드에는 배당소득은 물론 매매·평가차익과 환차익에 15.4%의 세금이 부과된다. 배당소득에만 과세하는 국내 주식형 펀드에 비해 부담이 크다. 자칫 해외펀드로 거둔 이익이 다른 금융소득과 합쳐 2000만원을 넘어갈 경우 금융소득종합과세 대상이 돼 고율의 세금을 물어야 한다. 반면 해외주식에 직접 투자하거나 해외에서 설정된 펀드(역외펀드)의 경우 22%의 양도소득세를 물지만 분리과세가 돼 종합과세에 대한 걱정은 던다.

 이런 세제의 차이는 해외펀드를 투자자들로부터 멀어지게 만들었다. 해외 주식펀드 매매 차익을 비과세했던 2007년 6월~2009년 12월 중 해외주식형 펀드의 설정액은 한때 32조원을 넘기도 했다. 그러나 세제 혜택이 사라지면서 설정액이 급속히 줄더니 지난해 연말에는 15조원으로 반 토막이 났다. 초저금리에다 글로벌 증시 활황세에 올 들어선 다소 증가했지만 회복세가 그리 빠르지는 않다.

 5년여 만에 해외 펀드 비과세를 부활하기로 한 정부는 과거보다 혜택을 더 키울 계획이다. 매매 차익은 물론 환율 변동으로 생긴 환차익에도 세금을 물리지 않겠다는 것이다. 해외펀드의 기대 수익률은 그만큼 더 올라간다. 해외투자펀드(주식 비중 60%)에 1000만원을 투자해 배당·매매이익, 환차익 등을 합쳐 30%의 수익률을 거뒀다고 가정하면 현재는 46만2000원의 세금을 내야 한다. 그러나 전용펀드에 투자할 경우 주식 매매이익평가차익과 함께 환차익에 대해서도 비과세 혜택을 받아 세금은 6만1600원으로 크게 줄어든다.

 업계에선 이번 세제 변화가 해외 자산으로 투자의 지평이 본격적으로 넓혀지는 계기가 될 것이란 기대가 나온다. 이하연 대신증권 연구원은 “일본에서도 1990년대 후반 해외펀드 규제를 완화한 이후 개인 투자자의 해외 금융자산 규모가 빠르게 증가했다”면서 “해외 투자로 바닥 수준인 국내 자산 수익률을 보완하고 분산투자의 이점도 누릴 수 있는 만큼 국내에서도 수요가 꾸준히 늘 것”이라고 말했다.

 전반적인 펀드 과세 체계도 바뀐다. 지금은 매년 결산일에 꼬박꼬박 세금을 매긴다. 하지만 내년부터는 환매할 때 물리는 방식으로 바뀐다. 가입 중 평가이익이 생겨 세금을 물었는데 정작 팔 때는 주가가 내려 손실을 보는 일이 없어진다는 의미다.

 ISA의 도입도 주목할 만하다. ISA는 하나의 계좌로 예·적금, 펀드 등 여러 상품에 투자할 수 있고, 상황에 따라 상품을 교체할 수 있다. 일정 기간 투자를 지속하면 연간 한도만큼 이자·배당 소득에 비과세 혜택을 준다. 지금처럼 다양한 개별 비과세 상품에 따로따로 가입하는 것보다 편리하고, 운용도 탄력적으로 할 수 있다는 게 가입자 입장에선 장점이다. ISA 도입에 따라 재형저축과 소득공제장기펀드(소장펀드) 등은 올해 말로 세제 혜택이 끝난다.

 문제는 ISA의 가입 문턱을 얼마나 낮추느냐다. 현재 재형저축과 소장펀드는 연간 급여 5000만원 이하만 가입하도록 하고 있다. 금융당국과 업계는 이보다 조건을 완화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이미 ISA를 도입한 영국과 일본은 가입 연령만 제한할 뿐 별다른 소득 요건을 두지 않고 있다. 하지만 세수 걱정을 해야 하는 기획재정부로선 이를 그대로 따르기는 어려울 전망이다. 송홍선 자본시장연구원 펀드연금실장은 “연소득 기준 8000만원 정도면 근로자의 대부분이 포함되는 데다 투자여력도 커져 시장에 긍정적 영향을 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기재부 관계자는 “해외 주식투자 전용펀드, ISA 도입의 구체적인 내용은 올 8월 세제개편안 발표 때 확정할 예정”이라며 “관련 법안이 국회를 통과하면 내년부터 시행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조민근·강병철 기자 jmi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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