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백70억원의 은행경영 손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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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한국은행은 올해도 5개 시중은행의 경영손실에 대해 8백70억원을 특별 지원했다. 중앙은행의 이런 특별지원은 이미 과거에도 몇 차례의 선례를 갖고 있고 가깝게는 바로 지난 해에 1천1백억원이 지준예치금에 대한 이자지급의 형태로 지원된바 있다.
물론 이같은 형태의 민간은행 지원은 법적절차를 거친 적법한 자금운용일 것이고, 또 최근의 민간은행들이 겪고 있는 심각한 경영난과 자금난을 고려할 때 어느 정도의 부가피성을 주장할 근거가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중앙은행이, 발권력에 의존해서 민간은행의 경영부실을 보전하는 일은 적법여부의 문제라기보다 원천적인 금융정책의 합리성과 연관되어 있음을 주목해야한다. 민영화된 시중은행의 지불준비금 예치에 대해 이자를 지급하는 방식은 비록 그것이 한은법상 불가능한 일은 아니라 해도 그것이 민간은행의 부실경영에 대한 지원의 한 편법으로서 이용되는 것은 언제나 바람직하지 않을 뿐아니라 과거의 경험에 비추어 봐도 발권력에 의존하는 이같은 편법의 남용은 언제나 인플레촉진적이었음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정작 더 중요한 문제는 이번의 특별지원을 불가피하게 만든 최근의 금융현실이다.
정부로 하여금 지준부리라는 편0법의존을 강요한 최근의 은행부실은 참으로 심각한 문제가 아닐수 없다. 은행의 경영 부실화를 초래한 요인들은 여러가지로 분석될 수 있을 것이나 그 가장 큰 요소는 해외건설과 해운산업의 부실화와 금리체계로 집약될 수 있다.
전자의 두 부실산업 문제는 그 누적되어온 문제의 심각성에도 불구하고 올들어 겨우 정리가 시작되었지만 이미 정상적인 방안으로는 수습이 어려운 지경에 이를만큼 큰 부담을 국민경제에 지우고 있다.
이들 산업의 누적채무와 적자규모로 미루어 이미 은행차원의 대응이 불가능한 현실에서 국민의 부담으로 전가될 위험을 안고 있다.
이번의 지준부리도 이같은 국민적 피해의 한 부분일 뿐이다. 때문에 이같은 중앙은행의 특별지원은 이들 부실산업의 지원을 강요당했던 민간은행들로서는 일면 당연한 보상이라 주장할 수 있는 반면 정부로서는 금융정책, 산업정책의 실패를 뒷수습하는 편법일 뿐이고 그 실패의 부담을 국민에게 전가하는 과정일 뿐이다.
더우기 이같은 편법에도 불구하고 부실산업의 정비는 아직 시작에 불과함으로써 앞으로 얼마나 더 큰 국민부담의 증가가 있어야할지 예측조차 어렵다. 이 한가지 부담만으로도 은행경영은 최소한 수년간은 경영정상화를 기하기 어려운 현실을 고려할 때 정부의 장기적인 대응책이 무엇인지 국민들로서는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이런 부담을 지고 있는한 긴축정책을 포함한 어떤 종류의 금융정책도 그 정책효과를 기대할 수 없을 뿐아니라 통화운용에 근원적인 제약요인으로 계속 남게 될 것이다.
실패의 호도는 더 큰 실패를 낳을 뿐이며 국민부담에 의한 부실기업 지원은 더이상 계속되어서는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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