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황의「사과」유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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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올 한해도 저문다. 곰곰 생각해보니 올해의 제일 큰 뉴스는 한국침략에 대한 일황의 사과발언인것 같다. 일황은 『불행했던 과거를 유감으로 생각한다』 고 사과를 했다. 일제의 식민통치가 조선을 근대화시켰다는 따위의 이전의 망언에 비한다면 확실히 커다란 발전이다. 일단은 긍정적으로 받아들일수 있는 말일 것이다.
하지만 거기는 거기대로의 문제가 있다는 생각도 든다. 우선 일제 36년, 아니 강화도조약 이후 70년의 일제 침략 죄상이 「사과」로서 해결될 성격의 것이냐 라는 점이다. 그들이 이땅에서 노린것은 한국과 한국 민족의 완전한 말살이었다.
그런데 일황이 「사과」를 했다. 일본인들은 어쩌면 그것으로서 죄에 대해 마무리가 지어졌다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사과」를 했으니 그만이요, 또 죄가 씻겨졌다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그 범한 죄에 비해서 턱도 없이 안이한 생각이다. 이런 식으로 그들이 전죄에 대해서 무감각해진다면, 그것은 곧 제2의, 제3의 죄를 재범할 수 있는 가능성을 말해주는 것이다.
『유감으로 생각한다』 는 발언은 그들의 죄에 뚜껑을 덮음으로써, 그 국민을 「속죄의 고행」 으로부터 비켜서게할 위험성을 내포하는 것이었다. 뿐더러 그것은 한국민까지도 안이하게 해버릴 위험성을 갖는다.
『왜 먹었느냐』도 물론 나쁘지만, 『왜 먹혔느냐』의 문제도 우리로서 소홀히 할바가 아닐 것이다.
일황의 사과에서 『왜 먹혔느냐』 에 대한 자성의 눈이 흐려질 염려는 없는 것일까? 먹은 죄만 탓하면서 먹힌 쪽의 실책을 눈감는 한 우리는 전날의 통한과 치욕에서 환골탈태가 어려운 것이 아니겠는가?
일황의 사과는 양민족 사이의 응어리진 것, 또 짚고 넘어가야 할 어느 하나도 실질적으로 해결하는 것은 없는, 결국은 「입에 발린 빈 말」 은 아니었을까. 그러면서도 그것은 한일 두 민족을 함께 오도할 위험성만 갖는 것이었다. 한일 관계의 새로운 장이 그와 같은 「입에 발린 빈 말」로써 개척되는 것은 아니다. 먹고 먹혔던 두 민족의 뼈를 깎는 노력과 실천만이 원만한 미래의 약속일 것이다. 임종국 <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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