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축구 무관심 힘겨워 … 눈물 쏟은 태극낭자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24면

여자월드컵 16강 프랑스전 종료 직후 눈물을 흘리는 주장 조소현. [몬트리올 신화=뉴시스]

2015 캐나다 여자월드컵 본선에 참가한 여자축구 대표팀 선수들은 대회 기간 내내 눈물을 흘렸다. 진 날은 분해서 울고, 이긴 날은 기뻐서 울었다. 22일 우승후보 프랑스와 16강전을 치른 직후에는 오랜 기간 준비한 월드컵 도전을 마무리하는 아쉬움에 또 울었다.

조별리그 3경기와 16강전까지 네 차례 경기를 마친 뒤 믹스트존(mixed zone·공동취재구역)은 항상 눈물바다가 됐다. 취재진이 인터뷰를 위해 질문을 던지면 답변을 준비하는 선수들 눈에 눈물부터 그렁그렁 맺혔다. 태극낭자들에게 월드컵은 말로 표현하기 힘든 절실함이 깃든 대회였다.

 여자축구 대표팀은 2003년 미국 대회 이후 12년 만에 두 번째로 월드컵 본선을 밟았다. 선수들이 첫 승이나 16강 진출보다 간절히 바랐던 건 ‘관심’이었다. 코스타리카전에서 멋진 헤딩골을 넣은 전가을(27·현대제철)은 지난달 월드컵 출정식에서 “한국에서 여자축구 선수로 사는 게 외로웠다”며 펑펑 울었다. 열심히 뛰어도 봐주지 않는 현실이 힘들었다고 했다. 실업여자축구 WK리그는 입장료를 받지 않지만 평균 관중은 400여 명에 그친다. 말 그대로 ‘그들만의 리그’다.

 선수들은 여자축구의 최고봉인 월드컵 무대에서 좋은 경기를 보여주면 축구팬들이 자신들을 주목할 거라 믿었다. 남자축구 대표팀이 4년마다 열리는 월드컵에서 국민적인 관심을 받는 것처럼 말이다. 평소 여자축구 기사를 자주 검색하는 수비수 심서연(26·이천대교)은 “포털사이트 스포츠 섹션에 여자축구 기사는 늘 구석진 자리에 한 개 있을까 말까다. 내가 하는 일에 대해 사람들이 관심을 갖지 않는 현실이 슬펐다”고 했다.

 선수들이 기대한 대로 여자대표팀이 월드컵 무대에서 극적으로 16강에 오르자 상황이 달라졌다. 여자축구를 다루는 기사가 크게 늘었고, 댓글도 수천 개씩 달렸다. 심서연은 “수십 개의 기사를 모두 정독했다. 누군가가 우리들을 주목한다는 사실만으로도 행복했다”고 했다.

 물론 부작용도 있었다. 예전엔 경험하지 못한 ‘비난’을 함께 받아들여야 했다. 다소 부진했던 지소연(24·첼시 레이디스) 관련 기사에는 ‘지메시라는 별명이 아깝다’는 악성 댓글이 달렸다. 선크림과 립스틱을 바르고 뛴 일부 선수들은 ‘여자가 왜 축구하나’ ‘화장할 시간에 훈련이나 하라’는 비아냥까지 들었다. 골키퍼 김정미(31·현대제철)는 “내 기사가 안 나갔으면 좋겠다. 댓글을 보고 상처를 많이 받았다”고 속마음을 털어놨다. 윤덕여(54) 여자대표팀 감독은 “무관심보단 차라리 비난이 낫다. 신경쓰지 말고 경기에 전념하자”고 선수들을 다독였다.

 오랜 기간 음지에 머물던 여자축구는 비로소 양지로 나왔다. 응원이건 비난이건 쏟아지는 대중의 관심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 지는 오롯이 선수들의 몫이다. 이젠 남자 선수들처럼 도를 넘은 비난에 의연하게 대처하는 법도 배워야 한다.

박소영
문화스포츠부문 기자

 다행히 선수들은 빨리 적응하고 있는 듯 했다. 평소 화장을 하지 않는 막내 이소담(21·대전 스포츠토토)이 갑자기 붉은 립스틱을 바르고 나타나 “어때요? 예쁘죠? 저도 립스틱 바르고 경기 나가려고요”라며 언니들을 위로하자 선수들의 얼굴이 환해졌다. 오랜 시간 서로를 위로하고 격려하며 쌓은 팀워크. 그것이 열악한 환경에서 여자축구가 버틸 수 있었던 힘이다.

박소영 문화스포츠부문 기자 psy0914@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