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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백리 남재준 전 국정원장이 해군에 들려준 이야기 "나도 내가 두려웠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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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재준(71ㆍ육사 25기) 전 국가정보원장이 22일 계룡대 대강당에서 해군본부 간부들 앞에서 강연을 했다.
강연 제목은 ‘군인의 길’ 이었다. 해군은 지난 4월과 5월 남 전 원장을 초청하려 했으나 서로 일정이 맞지 않아 강연이 성사되지 못했다. 하지만 통영함 비리 사건 이후 '명예해군' 운동을 추진해온 해군은 육군참모총장을 지내면서 군내 대표적인 청백리(淸白吏)로 꼽혀온 그를 삼고초려(三顧草廬·세 번 찾아가 초빙) 해서 연단에 모셨다.

남 원장은 가슴에 핀 마이크를 달고, 오른손에는 검은색 수성펜을, 왼손에는 화이트 보드 지우개를 들고서 몇 차례나 쓰고, 지우고를 반복하며 강연을 했다. 그는 41년간 군생활을 하면서 두려워했던 세 가지를 소개했다.

“첫째, 나 자신이 두려웠다. 사소한 이익에 사로잡히지 않도록 경계했다. 둘째, 내 부하가 두려웠다. 내가 부하들로부터 믿고 따를 수 있는 상관인지 성찰했다. 마지막으로 내 자식들이 두려웠다. 내가 인생을 잘못 살아서 내 자식이 손가락질을 받게 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남 전 원장은 2005년 4월 육군참모총장 이임식을 마치고 전직 총장에게 관행적으로 제공되던 관용차를 마다하고 부인이 운전하는 쏘나타 승용차에 올랐던 일화도 떠올렸다. “손자들에게 자랑스러운 할아버지가 되고 싶었다”면서다.

장교의 자질로는 육·해·공군을 막론하고 '극기'와 '나라사랑' 정신, 그리고 '용기'를 꼽았다. 남 전 원장은 "장교들은 '오늘밤에라도 전쟁이 난다면 나는, 내 부하는, 내 부대는 주저함 없이 전투에 투입될 준비가 되어 있고 싸워 이길 수 있는가'라고 매일 자문하면서 행동으로 옮길 수 있도록 '24시간 전투적인 사고'를 견지해야한다"고 강조했다. 그러곤 '명령'에 대해 언급했다.

“죽을지도 모르는 전장에서 부하들이 상관의 명령을 따르는 것은 명령을 내리는 상관이 최고의 자질과 능력을 갖고 있다는 믿음, 소속부대에 대한 믿음, 자기 자신의 훈련수준에 대한 믿음으로 인해 희망을 갖기 때문이다. 명령권자는 자신이 먼저 행동으로 실천해 보고 할 수 있는 것을 명령해야한다. 그것이 합법적 명령이다."

이날 강연을 들은 해군 고위 간부는 "비록 일반론적인 군인의 자세를 얘기했을지 모르지만 해군에겐 뼈아픈 반성의 기회였다"고 말했다. 최태복 해군 공보과장(대령)은 “남 전 원장을 꼭 모셔와 해군 간부들이 도덕적으로 재무장하는 계기를 만들어보려고 했다”고 설명했다.
강연 뒤 남 전 원장은 본지 통화에서 “해군의 비리를 질책하려고 찾은 게 아니라 군인 후배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를 했을 뿐"이라고 말했다.

정용수 기자 nkys@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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