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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열 잃은 빨강은 비극의 색깔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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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2호 14면

마크 로스코의 ‘무제’(1970), acrylic on canvas, 152.4 x 145.1 cm, National Gallery of Art, Washington, D.

“우리 인간은 누구나 잘못을 저지르죠. / 그러나 죄를 지었다고 / 모두 다 불운에 빠지는 것은 아닙니다. /

이진숙의 접속! 미술과 문학 <14> 소포클레스의 『안티고네』와 마크 로스코

자신의 잘못을 깨달을 때, / 그 잘못을 인정하고 고집을 꺾는 사람은 / 결코 불운에 빠지지 않습니다.”



1970년 2월 25일. 미국 추상표현주의 화가 마크 로스코(1903~1970)는 시체로 발견됐다. 우울증, 건강 악화, 이혼 등의 복잡한 상황 끝에 선 그의 마지막 선택이었다. 항우울제 과다복용 상태에서 면도칼로 손목을 그은 채 쓰러져 있었다. 주변에 번진 흥건한 피는 그의 마지막 작품을 연상시켰다.

20세기 초 태어난 ‘러시아 출신 유대인 이민자’라는 말이 풍기는 뉘앙스 그대로 그의 생애는 추방당한 자의 비애와 상실감에 젖어 있었다. 그가 살던 때는 세계 대전과 대공황의 비극적인 시대였으며, 반유대주의자들이 전 세계적으로 극성을 부리던 시대였다. “나는 오로지 비극, 환희, 불행한 운명 같은 인간의 근본적인 감정에만 관심이 있을 뿐이다”라는 말은 젊은 시절 겪은 혼란과 상실감, 소외감이 평생 지속됐음을 보여 준다.

가장 위대한 인간 드라마가 된 비극의 역설
그런 그가 소포클레스(BC 496/5~BC 406)의 비극 『안티고네』의 등장인물들 이름을 딴 제목으로 작품을 그린 것은 당연했다. 2400여 년 전에 쓰인 소포클레스의 비극에는 인간 비극의 원형이 담겨 있다. 소포클레스의 『오이디푸스 왕』과 『안티고네』는 오이디푸스 가문의 2대에 걸친 비극적인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오이디푸스에게는 아버지를 죽이고 어머니와 결혼한다는 끔찍한 신탁이 내려졌다. 피하고자 몸부림쳤건만, 신탁은 모두 이루어졌다. 비극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오이디푸스가 길을 떠나자 왕위를 둘러싼 갈등으로 장남과 차남은 격렬한 전투 끝에 한 날 한 시에 죽고 만다. 왕권을 차지하기 위해 외부 세력을 끌어들였던 장남의 장례식을 둘러싼 갈등으로 딸 안티고네와 그 약혼자, 약혼자의 어머니까지 죽음에 이른다. 죽음에 죽음이 덧쌓이며 끔찍한 비극이 이어졌다.

연대기적으로 볼 때 오이디푸스 자식들의 이야기를 다룬 『안티고네』가 더 먼저 쓰였고, 나중에 『오이디푸스 왕』이 쓰였다. 『안티고네』의 인물들은 멈출 줄 모르고 충돌하면서 파멸해 갔다.

파국을 막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자신의 잘못을 되돌아보는 일. 눈 뜬 자들보다 더 지혜로운 눈먼 예언자 테이레시아스는 충고한다. “우리 인간은 누구나 잘못을 저지르죠. / 그러나 죄를 지었다고 / 모두 다 불운에 빠지는 것은 아닙니다. / 자신의 잘못을 깨달을 때, / 그 잘못을 인정하고 고집을 꺾는 사람은 / 결코 불운에 빠지지 않습니다.” 자신의 과오를 인정하지 않고 오만과 그 과오를 반복하는 어리석음은 결국 모든 것을 파국으로 몰고 간다. 이것이 진정한 비극이다.

비극은 단순한 비참함이 아니다. 한때 성공했던 자가 몰락할 때, 진실에 대한 갈망이 현실의 위선을 드러낼 때, 신념을 지키는 행동이 현실과 충돌해 파산할 때, 그 대비적 효과에 의해 비극성은 더욱 강렬해진다. 비극의 주인공들은 상황에 굴복하는 인물들도, 자신의 잘못을 인식 못 하는 우둔한 자들도 아니다. 그들은 때로 안티고네처럼 주어진 상황에서 죽음으로까지 맞서는 의지에 찬 영웅들이기도 하며, 또 비참한 상황 속에서도 자신의 존엄성을 지켜낸 오이디푸스 같은 인물이기도 하다.

오이디푸스는 운명에 복종해 그 부정한 삶을 유지하지도 않았고, 저주에 찬 운명을 내린 신을 탓하지도 않았다. 그것이 신이 부여한 운명일지라도, 다시는 반복되어서는 안 될 패륜을 저지른 스스로를 눈 찔러 벌하고 방랑길에 오른다. 아버지를 죽이고 어머니와 결혼한 자가 왕이 되어 호의호식한다면, 그 공동체는 내적으로 붕괴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오이디푸스는 왕 다운 결단을 내린 것이다. 이로써 비극은 역설적으로 가장 위대한 인간의 드라마가 되었다.

로스코에게 비극이란 피할 수 없는 ‘인간의 조건’
로스코도 비극을 피할 수 없는 인간 조건으로 이해했다. 니체나 렘브란트처럼 비극적 상황을 직시하고, 그 상황 위에 우뚝 서려는 인간의 불멸의 정신, 인간의 정신적인 숭고함을 추구하는 예술이 그의 궁극적인 목표였다. 혹독한 비극에 몸을 맡기고 그것을 감내해 냄으로써만 인간은 위대함에 도달할 수 있다. 그는 그렇게 하려고 했다.

49년 무렵 로스코의 그림에서는 모든 형태가 사라졌다. 그가 그림에 담고 싶은 것은 인간사의 유한함을 넘어서는 초월적인 숭고함과 영원한 무한함이었다. 무한을 담아내기 위해 유한한 형태는 사라지는 수밖에 없다. 커다란 캔버스 위에 두세 개의 사각형이 보이지만, 그는 사각형을 그린 것이 아니다. 사각의 캔버스 위에 존재할 수 있는 가장 무형의 형태를 찾은 것이다. 그래서 사각형이 ‘형태’로 인식되지 않도록 테두리 부분들을 스펀지로 부드럽게 뭉개 버렸다.

결국 황홀한 색채만이 캔버스에 남은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로스코는 자신을 단순한 색채화가로 규정짓는 것도 거부했다. 빛을 가장 정신적으로 이해했던 렘브란트의 작품에서 빛이 인물들의 영혼에서 흘러나오는 것처럼 보이는 것 같이, 그의 작품에서는 색이 캔버스 안으로부터 분출되는 것처럼 보인다. 로스코의 색은 빛이다. 캔버스에 유화라는 물질적 속성 때문에 그림에서 빛은 색으로 존재할 수밖에 없다. 그는 색채가 갖는 정서적 효과를 종교적 숭고함의 차원으로까지 격상시켰다.

“내 작품 앞에서 눈물을 흘리는 사람들은 내가 그 작품을 그리면서 느꼈던 종교적인 경험과 동일한 체험을 경험한 것”이라고 로스코는 말한다. 그는 자신의 작품이 감상의 대상이 아니라 종교적 체험 같은 것이 되길 원했다. 그래서 빠져들 수 있을 것 같은 큰 그림을 그렸고, 작품이 더 크게 느껴질 수 있도록 45cm 정도의 가까운 거리에서 감상할 것을 요구했다.

텍사스 휴스턴에 있는 로스코 채플은 그의 작품 세계를 가장 잘 보여 준다. 이곳은 특정 종교를 위한 예배당이 아니라 로스코의 작품들로 둘러싸인 명상적 공간이다. 채플 안에 걸려 있는 그림은 모두 검은색이다. 검은색은 색의 마지막이다. 형태와 색채를 가진 모든 것이 소멸하는 순간을 체험하도록 유도한다. 그의 작품을 보기 위해서는 차라리 눈을 감는 것이 좋다. 육신의 눈이 감기고서야 보이는 무엇이 있다는 것을 체험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로스코는 평온을 찾지 못했다. 그의 마지막 작품은 뜻밖에도 붉은색이다. 빨강은 색 중의 색이다. 피, 뜨거운 불, 태양을 연상시키는 빨강은 가장 심오한 실존적인 의미를 갖는다. 그의 빨강은 성스러움부터 환희와 절망에 이르기까지, 마치 바그너의 음악을 듣는 것 같은 장중함과 풍부함을 갖고 있었다.

노랑부터 검정에 가까운 갈색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색과의 결합 속에서 생명력을 과시해 왔던 빨강은 마지막 작품에서는 홀로 남았다. 힘이 다 빠진 빨강-. 그것은 삶에 대한 갈망과 그 갈망을 허용하지 않는 세상에 대한 깊은 절망감의 투쟁 속에서 태어난 것이었다. 승리는 했으나 여력을 모두 소진한, 더 이상 어떤 존재의 이유도 찾지 못한 슬픈 빨강이었다. 마크 로스코의 투명한 빨강은 가장 비극적인 색이 되었다. ●

이진숙 문학과 미술을 종횡무진 가로지르며 각 시대의 문화사 속 인간을 탐구하는 데 관심이 있다. 『위대한 미술책』『미술의 빅뱅』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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