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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을 요리하는 마법카페<1> 꿈꾸는 지구

온라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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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을 찾는 첫 번째 숙제
1. 우주는 얼마나 큰가요? 얼마나 많은 별들이 있나요?
2. 인류의 역사는 몇 년인가요?
3. 지금 지구에는 몇 개의 대륙·바다·국가가 있나요? 인구는?
4. 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는 어떤 별인가요? 지구의 역사와 크기, 우주에서의 위치, 특성 등에 대해 알아보세요.
5. 그렇다면 내가 이 지구에 태어난 이유는?

일러스트=조혜승(떠다니는 섬)

등장인물 나디아 성=나, 이름=디아, ‘하루’라는 뜻의 스페인어. 이탈리아어로는 ‘여신’을 뜻함 언니 ‘꿈꾸는 지구’ 카페 주인, 꿈쟁이 고양이 키츠

‘장화 신은 고양이를 보고 싶어….’

머릿속은 온통 샴 고양이 생각뿐이었다. 몸통은 눈부시게 새하얗지만 네 다리는 검정 장화를 신은 듯 검고, 뾰족한 귀를 하고선 도도한 눈빛을 쏘아대던 녀석.

“디아야! 내 얘기 듣고 있어? 무슨 생각을 그렇게 골똘히 하는 거야?”

지나의 목소리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어, 미안. 잠깐 고양이 생각하느라 못 들었어.”

“고양이?”

“응. 우체국 사거리 애완동물 가게에 정말 예쁜 고양이가 있거든. 너무 데려오고 싶은데 엄마가 키우기 힘들다고 절대 안 된대. 한번 봤을 뿐인데 잊혀지지가 않아. 그나저나 아까 나한테 뭐라고 한 거야?”

“숙제 했냐고. 선생님이 내일 진로시간까지 꿈 적어오라고 하셨잖아.”

꿈이라는 단어 앞에서는 왠지 작아지는 느낌이 들었다. 사실 난 꿈이 뭔지 아직도 잘 모르겠다.

“일단 의사라고 썼어. 전에 엄마가 전문직이 최고라고 하셔서….”

“어? 나도 의사라고 적었는데….”

얼굴이 화끈 달아올랐다. 지나한테 먼저 무슨 꿈을 썼냐고 물어 볼 걸 그랬다. 그랬다면 의사 말고 아무거나 다른 걸로 바꿔 적었을 것이다. 지나의 꿈이 의사인 건 누가 봐도 그럴듯했다. 지나는 늘 만점에 가까운 점수를 받을 만큼 공부를 잘하는 친구니까. 잔소리를 퍼붓던 엄마의 얼굴이 떠올랐다.

‘에휴, 네가 평균 80점만 나와도 엄마가 이렇게 힘들게 비싼 학원비 벌러 다닐 필요 없잖니. 옆집 지나 좀 보고 배워라, 응? 고생해서 투자한 보람이 있어야지, 도대체….’

4학년 때 수학에서 60점을 받은 이후 내 인생은 꼬이기 시작했다. 엄마는 아무래도 학원이 문제인 것 같다며 그 전에 다니던 곳을 끊고 매일 90분씩 소그룹 수업을 하는 비싼 수학학원에 등록시켰다. 학원비 때문에 마트 알바를 시작한 엄마의 폭풍 잔소리도 그때 시작됐다.

처음엔 엄마에게 죄송했다. 하지만 잔소리가 반복되다 보니 점점 멍하니 아무 생각도 나지 않았다. 엄마가 마트에서 스트레스를 받고 와서 한바탕 퍼붓고 나면 생각에 생각이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난 도대체 누굴 닮아서 머리가 나쁜 거지? 이 재미없는 공부는 왜 하는 걸까? 내가 공부를 잘하면 우리 엄마도 지나 엄마처럼 우아하게 살 수 있는 건가…. 좋은 대학을 나오면 전문직을 갖거나 대기업에 취직해 돈 걱정 없이 살 수 있나…. 도대체 앞으로 몇 년이나 더 공부를 해야 하는 거야? 공부를 계속 하면 점수가 오르기는 할까….’

그 생각을 하다 보니 다시 머리가 멍해지는 느낌이었다. 그때 ‘띠링’하고 문자 알림음이 울렸다.

“앗싸! 지나야, 이것 봐! 짜잔!”

‘원장님이 몸이 안 좋아서 이번 주 수업 취소해요. 다음 주에 보강할게요.’

내 휴대폰에 찍힌 문자 메시지를 본 지나의 눈이 커다래졌다.

“우와, 대박. 진짜 좋겠다~!”

휴강 소식에 방금 전까지 했던 고민이 순식간에 사라지는 듯했다.

“지나야, 나 간다. 내일 보자.”

“그런데 너 어디 가? 집 방향도 아니잖아.”

“고양이 보러 갈 거야. 너희 엄마한테 절대로 말하면 안 돼!”

“당연하지. 아, 부럽다. 재미있게 놀아~. 내일 봐!”

나는 우체국 사거리를 향해 정신 없이 내달렸다. 이게 얼마만의 해방인가! 일주일간 주어진 매일 90분의 자유시간 동안 뭘 할까? 골똘히 생각하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뭔가 이상했다.

‘어, 여기가 어디지? 애완동물 가게가 분명히 우체국 옆에 있었는데…. 문을 닫았나? 아니면 내가 다른 우체국으로 온 걸까?’

그러고 보니 그 가게에서 샴 고양이를 본 것이 벌써 몇 주 전 일이었다. 학원에 다니느라 가게가 없어진 것도 몰랐던 모양이다. 어디로 가야 할까 망설이는데 뭔가가 시선을 사로잡았다. 뾰족한 까만 귀에 하얀 얼굴, 유난히 눈이 큰 길냥이였다.

“와 귀엽다…!”

지난번 봤던 샴 고양이와 묘하게 닮았다. 녀석은 마치 후드가 달린 검은 연미복을 입고 검정 가죽 부츠를 신은 것 같았다. 고양이를 따라 가다 보니 어느 골목 깊숙이 들어와버렸다.

“여기가 어디지?”

우르르 쾅쾅~!

번개가 치더니 하늘이 갑자기 어두컴컴해졌다. 팔에 툭 하고 차가운 무언가가 떨어졌다. 빗방울이었다. 툭, 툭 떨어지던 빗방울은 후두둑 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갑자기 굵은 장대비가 쏟아졌다.

‘맞다. 이번 주부터 장마라고 했지. 엄마가 우산 가져가라고 할 때 들을 걸….’

빵빵~!

순식간에 오토바이가 스치듯 지나갔다. 반사적으로 황급히 피하긴 했지만 도로의 패인 곳에 고여있던 물이 튀어 온몸이 흠뻑 젖어버렸다. 갑자기 길을 잃고 무섭게 비가 오고 온몸이 젖으니 왈칵 눈물이 솟았다.

‘하마터면 사고 날 뻔 했잖아? 집에 갈 걸 괜히….’

빗물과 눈물로 범벅이 된 얼굴을 닦고 있는데, 아까 그 고양이가 멈춰 서서 나를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 고양이의 투명한 초록 눈망울이 마치 내 마음을 꿰뚫어보는 것 같았다. 눈물을 그치자 고양이는 뒤돌아서더니 자기를 따라오라는 듯 고개를 돌려 바라봤다. 그리곤 앞서 갔다.

‘어디로 가려는 거지? 이미 젖은 거 그냥 가볼까?’

고양이를 따라 30미터쯤 가자 어두컴컴한 골목 끝에 따뜻한 주황 불빛이 보였다. 가까이 가자 ‘꿈꾸는 지구’라고 적힌 작은 간판이 보였다.

“야옹~”

고양이가 울자 딸랑 소리가 나며 문이 열렸다.

“키츠야, 비 오는데 어디 있었어? 어, 넌 누구니?”

진한 녹색 옷에 갈색 스카프를 한 언니가 나를 보고 눈을 동그랗게 떴다. 특이한 차림에 곱슬곱슬한 머리, 주근깨로 덮인 낯선 얼굴이 언젠가 TV프로그램에서 본 인도 여자 같기도 하고 다문화 축제에서 본 멕시코 여자 같기도 했다.

‘어떡하지? 엄마가 낯선 사람이랑 이야기하지 말라고 했는데…. 도망갈까?’

언니는 아무말도 못하고 벌벌 떨고 있는 나를 빤히 쳐다보았다. 키츠라는 고양이처럼 유난히 밝은 녹색이 감도는 눈동자. 왠지 빨려 들어갈 것 같은 이상한 느낌은 뭐지?

“세상에, 비에 쫄딱 젖은 생쥐 꼴이네…. 일단 들어오렴. 감기 걸리겠다.”

“에취~!”

인사도 하기 전에 나는 언니 얼굴에 재채기부터 했다. 아…이걸 어쩌지? 언니는 웃으며 두꺼운 수건을 갖다 주었고 난 젖은 옷들을 닦기 시작했다. 옷뿐만 아니라 가방, 심지어 꿈을 적은 숙제 종이마저 젖어 있었다. 커피포트를 켜는 소리에 이어 탁탁, 칙칙 소리가 나더니 실내 공기가 시나몬 향으로 물들었다. 울상이 된 채 숙제한 종이를 말리는 내게 언니는 김이 모락모락 나는 따뜻한 머그잔을 내밀었다.

“축축한 마음까지 뽀송뽀송하게 덥혀주는 짜이야. 인도의 서민들도, 왕족들도 이 홍차를 마시면서 하루를 시작하지. 이거 마시면 몸이 좀 따뜻해질 거야.”

엄마가 낯선 사람이 주는 음식 먹지 말라고 했는데… 마셔도 되는 걸까? 하지만 언니는 특이하긴 해도 나쁜 사람 같지는 않았다. 무엇보다 너무 춥고 배가 고팠다. 조심스레 한 모금 맛보니 예전에 이모집에서 마셔본 밀크티와 비슷하면서도 알싸하고 강렬한 맛이 혀 끝에 맴돌았다. 꿀꺽, 꿀꺽. 마치 인도의 궁전에서 보송보송한 양탄자에 앉아 차를 마시는 듯 마음이 편안해졌다. 언니가 미소를 지었다.

“너 이름이 뭐니?”

“나디아예요.”

“나디아? 성은?”

“성이 나고 이름이 디아요.”

“와~ 특이한 이름이구나.”

“부모님이 원래 한자로 아름다울 미(美), 나 아(我) 자를 써서 나미아라고 정하셨는데 동사무소에서 실수로 나디아로 등록했대요.”

“내가 어렸을 때 좋아했던 만화 주인공도 이름이 나디아였는데.”

“어? 언니도 만화 좋아하세요?”

언니는 “그럼!”하고 웃었다. 달달한 차를 마시고 몸이 한결 따뜻해지자 가게 내부 공간이 눈에 들어왔다.

“그런데 여기는 뭐 하는 곳이에요? 꿈꾸는 지구?”

“내가 이제까지 전 세계를 여행하며 찍은 사진과 기록들을 전시하는 갤러리 카페야. 매일 딱 한 가지 종류의 음료와 음식을 서빙하지. 아직 준비 중이고 1주일 후에 오픈한단다. 편하게 구경하렴”

어디서도 보지못한 신비로운 물건들과 신기한 곳의 사진들이 카페를 가득 채우고 있었다. 한구석은 푸르른 바다처럼 탁 트였고, 다른 곳은 사막 같았다. 카펫에 쿠션으로 채워진 공간도 있었고 어두컴컴한 곳에 별 같은 등불들이 반짝였다. 한쪽 벽면을 따라 가니 사진들이 진열되어 있었다. 세상에 이런 곳들도 있을까 싶은 아름다운 풍경과 특이한 옷을 입은 사람들의 모습. 그런데 사진 곳곳에 등장하는 사람이 낯이 익었다. 하얀 설산을 오르고, 이국적인 곳에서 빨간 옷을 입고 춤추고, 아프리카의 아이들과 함께 웃고, 인도 전통의상을 입고….

“이 사람 혹시 언니예요? 같은 사람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고….”

“나 맞아. 지난 15년 동안 80개국 가까이 여행하면서 많은 꿈을 이루고 도전해왔거든.”

“80개국요? 세상에 그렇게 많은 나라들이 있어요?”

“지구상에는 230여 개국이 있으니 아직 3분의 1 정도밖에 못 본 셈이지.”

“우와~! 이렇게 많은 나라를 여행했다니, 언니네 집은 부자인가 봐요? 제 친구 지나도 작년에 일본에 갔다 왔는데…. 저는 제주도로 가족여행 갔을 때 비행기를 처음 탔거든요.”

짜이를 마시던 언니는 갑자기 깔깔깔 웃었다. 한참을 웃던 언니는 내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래, 부자 맞아. 난 꿈 부자야.”

“꿈 부자요?”

“응. 언니는 꿈이 참 많거든. 그래서 그 꿈들에 도전하기 위해 전 세계를 여행했어.”

“우와 부러워요! 어른들은 늘 꿈이 뭐냐고 물어보는데 전 제 꿈이 뭔지 모르겠어요.”

“나 역시 처음부터 꿈 부자였던 건 아니야. 아니, 내가 살아온 환경에선 꿈을 꾸는 것조차 사치였어.”

그렇게 언니의 이야기는 시작되었다.

꿈꾸는 지구 레시피 ①

축축한 마음을 뽀송뽀송하게 덥혀주는 마살라 짜이

홍차와 우유, 인도식 항신료를 함께 넣고 끓이는 마살라 짜이는 전 세계 곳곳에서 즐겨마시는 밀크티로 몇몇 커피숍에서도 맛볼 수 있습니다. 인도인들은 하루의 시작을 짜이로 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죠. 집에서도 한번 만들어 볼까요.

재료 홍차잎(아삼, 다즐링, 잉글리시 브렉퍼스트 등), 우유(또는 두유), 설탕(또는 꿀이나 메이플 시럽), 시나몬 가루 약간 또는 시나몬 스틱, 향신료(정향 서너 개, 휀넬 씨 1/3 찻숟갈, 카다몬 열매 한 두개를 같이 빻아줍니다), 잘게 썬 생강.

만드는 법 냄비에 물·우유·차를 넣고 중불에 끓이면서 준비된 향신료와 생강을 다 넣습니다. 끓으면 불을 가장 작게 줄인 뒤 5분 정도 우려내면 두 컵 분량이 됩니다. 시나몬은 가루를 넣거나 스틱을 넣어 휘휘 돌려줍니다. 찻잎을 포함한 찌꺼기는 체에 받쳐 걸러내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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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와 고양이가 가져다준 ‘꿈 부자’ 언니와의 첫 만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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