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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P계, 권오병 해임안 가결 … ‘개헌 반대’ 과시…격노한 박 대통령 “전부 색출해 제명하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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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3면

권오병

1969년 4월 초 신민당이 권오병 문교부 장관에 대한 해임건의안을 제출했다. 이유는 문교행정 난맥상과 권 장관의 국회 모독. 그해 2월 열린 국회 사학(私學) 특감장에서 권 장관은 의원 질의 중 퇴장하는 태도를 보였다. 또 3월엔 야당 의원이 질책성 질의를 하자 “회의록에 없지 않아, 회의록에”라며 반말투로 대꾸해 의원들이 격분했다. 신민당이 해임건의안을 내자 공화당에서도 적지 않은 의원이 동조했다. 국회를 무시하는 권 장관에 대한 불만이 있었던 데다 이 기회에 국회의 힘을 보여 정부에 경종을 울려야 한다는 생각이었다. 3선 개헌 반대를 위해 서명운동을 벌여 온 친JP세력이 이를 주도했다. 개헌 반대파의 항명을 통해 박정희 대통령이 3선 개헌을 다시 생각하게끔 하려는 의도였다. 분위기가 심상찮게 흐르자 박 대통령은 “어떤 일이 있어도 부결시키라”는 지침을 내놓았다. 4월 7일 공화당 의원총회에선 권 장관이 직접 나와 사과발언을 했고, 겉으로는 조용한 만장일치의 분위기를 보였다.

 투표일인 4월 8일, 막상 개표함 뚜껑을 열어 보니 총 투표 수 152표 중 찬성 89표로 해임안이 가결됐다. 당론을 어기고 찬성 표를 던진 공화당 의원이 40여 명이나 됐다. 박정희 정부에서 국무위원 해임안이 국회에서 통과된 건 처음이었다. 당시 진해로 휴가차 내려가 있던 박 대통령은 이 소식에 격노해 급거 상경했다. 박 대통령은 “즉시 항명 의원들을 색출해 일주일 이내에 제명하라”고 지시했다. 공화당은 주동 의원 5명의 제명을 결정했다. 양순직·예춘호·박종태·김달수·정태성 의원이 13일 의원총회에서 제명됐다. 훗날 71년 김성곤·길재호가 주도한 ‘10·2 항명파동’과 마찬가지로 항명 주동자에게 단호한 징계가 내려졌다. ‘4·8 항명’ 사건으로 공화당 내 개헌 반대파는 심각한 역풍을 맞았다. 이후 개헌 추진작업은 더 가속화된다.

◆3선 개헌=대통령의 중임 제한을 철폐해 3선을 가능케 한 개헌은 헌정 사상 두 차례 있었다. 1954년 11월 제3대 국회의 ‘사사오입(四捨五入)개헌’은 초대 대통령(이승만)에 한해 중임 제한을 철폐하는 게 골자였다. 표결 결과 찬성 135표로 의결정족수(135.333명)에 못 미쳤으나, 소수점 이하를 반올림하면 135명이라는 억지 주장으로 통과시켰다. 69년 3선 개헌안은 박정희 대통령의 3선 연임을 허용하는 내용이었다. 3선 개헌안은 69년 9월 여당 단독으로 국회를 통과해 10월 국민투표(투표율 77.1%, 찬성률 65.1%)로 처리됐다.

정리=전영기·한애란 기자 chun.younggi@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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