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대 관심은 "마르코스 후계"|"도미 치료" 이후의 필리핀 정국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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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마르코스」의 도미는 「레이건」 대통령의 취임식참석보다는 그 자신의 신병치료에 더큰 목적이 있는것같다. 그의 미국행은 이미 1개월여전 중병설이 나돈 직후부터 계획되어 「레이건」과도 사적으로 논의가 됐다는 보도 (뉴스위크 11월26일자) 까지 있던 터여서 취임식참석은 그의 건강상태악화를 드러내지 않고 미국에 건너가 치료를 받기 위한 하나의 구실에 불과하다는 이야기다.
19년 장기집권끝에 정적 「아키노」 암살사건으로 혼미속에 빠져있는 정국을 제대로 수습하지 못하고 버려둔채 상당기간중 외국에 나가 치료를 받기로한 결정은 「마르코스」의 건강이 얼마나 악화되어 있는가를 단적으로 나타내주는 것이며 따라서 사람들의 관심은 후계문제를 비롯한 필리핀정국의 앞날에 모아지고있다.
필리핀의 여·야·군부등에서는 「마르코스」 정권이 말기증세를 보여온것과 함께 최근 꾸준히 각자 나름대로의 정권인수태세를 갖추어왔다.
집권 신사회운동당(KBL)은 지난달 29일 대통령의 유고에 대비, 「마르코스」가 87년까지의 임기를 마치치 못하고 물러날 경우 국회의장이 권한을 승계하여 60일 이내에 대통령선거를 실시하도록하는 새법안을 국회에 제출하여 심의중이다. 이는 15인 각료집행위원회가 대통령권한을 이어받도록한 현행법이나 부통령제도를 두기로한 87년이후의 새법이 모두 「마르코스」개인이 구상해놓은 족벌정치의 연장에 지나지않는 것이기 때문에 이를 견제하여 국민의 신임을 잃지않으려는 의도로 풀이된다.
그러나 「마르코스」가 자신의 정치적 이미지나 건강상의 이유로 더이상 통치를 할수없게 된다하더라도 필리핀국민이나 여당내의 일부 반발세력이 바라는 것처럼 당장의 민주화는 어려울것이다. 탁월한 정치수완을 갖고있는 「마르코스」는 이미 그자신의 퇴진에 대비하여 그못지않은 부인 「이멜다」여사와 가족·친척등으로 구성된 충복들에게 전권을 넘겨줄 작업을 해놓았기 때문이다.
이에따라 그가 미국에 머무르는 기간이 길어지는 경우 발생되는 정권공백은 「이멜다」와 그녀의 동생「벤자민·로무알데스」 현 주미대사, 「파비안·베르」 전군참모총장등이 권력을 나누어 갖고 정국을 이끌어 갈것으로 보인다.
「마르코스」중병설이 나돈이후 그의 사진이 정부간행물에서 조차 점차 사라진 대신 거주환경상 및 마닐라지사를 맡고있는 「이멜다」의 사진이 전보다 자주 나타나고 있는 것도 이를 뒷받침하는 하나의 조짐으로 볼수있다.
「로무알데스」와 「베르」는 「이멜다」를 표면에 내세우고 자신들은 배후조종의 역할을 맡게될 공산이 큰것으로 외교분석가들은 전망하고 있다.
이들 못지않게 주목을 받고있는것은 「베르」의 뒤를 이어 군참모총장직무대행이 된 「피델·라모스」중장. 그는 군부내 친 「베르」계 장성들의 지지를 받고있는 「이멜다」파의 집권을 억제하고있는 반「이멜다」파의 리더로 알려져 있다. 「마르코스」의 6촌동생이면서도 정치적으로는 중립을 지켜와 국민들사이에서 『청렴결백한 「라모스」』로 불리는 그는 경찰군사령관직도 겸하고 있으며 「엔릴레」국방상을 비롯, 군부내의 반 「베르」파와도 긴밀한 유대를 갖고있다.
이밖에도 민주야당연합(UNIDO) 등 범야세력과 공산신인민군(NPA)등이 권력장악을 위해 끈질기게 노력하고 있으나 현단계로서는 여당에 필적할만한 세력을 키우지 못한 상태. 야당지도자의 대표적 인물로는 「살바도르·라우렐」UNIDO의장, 「아키노」가 창당했던 라반당의 「아킬리노·피멘텔」당수, 「아키노」동생으로 만족주의 반체제세력지도자인 「아가피토·아키노」, 「라파엘·살라스」 유엔사무차장, 「아키노」부인 「코라손」여사등이 있고 2백석의 의회내에도 58명의 야당의원들이 있으나 「아키노」 사후 최근에 와서야 야당측 대통령후보단일화작업을 벌이는등 아직은 통일된 구심세력이 없는 실정이다.
NPA는 「마르코스」가 물러날 경우 폭력시위등을 통해 대통령승계절차를 방해함으로써 군부쿠데타를 유발, 필리핀정국을 양극화하려고 시도할 가능성이 크다. 필리핀정세를 분석해온 전문가들은 「마르코스」이후의 사태가 다음 몇가지 시나리오 가운데 하나로 발전될것으로 보고있다.
▲ 「베르」-「이엘다」파가 「라모스」-「엔릴레」파를 누르고 집권. 군부내 「베르」 충성파들의 쿠데타가능성도 이에 포함된다.
▲평화적인 정권교체. 국회의장이 대통령권한을 승계하여 선거를 치른다면 야당이 단일후보를 내세워 압승할 가능성이 있다.
▲5인군민합동평의회가 잠정적으로 권한을 위임받아 대통령을 선출하거나 정국이 안정될때까지 권력을 보유하는 방법.
이들 시나리오중 어느것이 선택되는가하는 문제는 도미를 앞두고 8일 열리는 「마르코스」주재의 군부지도자가 포함된 전체각료회의에서 그윤곽이 잡혀질수있을 것이다.<홍성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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