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진국의 공해산업 수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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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기자가 수년전 취재차 터키에 갔을때 한 관리가 미국담배 말보로 갑을 치겨 들어보이면서 『이런 나쁜놈들 좀 보시오』라고 말한적이 있다.
무슨뜻인지 몰라 어리둥절해있자 그는 담배갑의 옆 모서리를 손가락으로 지적하면서 『담배가 당신 건강에 위험하다』는 경고문이 씌어있지 않다고 말했다. 미국을 비롯해서 서구국가에서 팔리는 미국 담배에는 예외없이 이 경고문이 씌어 있는데 제3세계에서 파는 담배에는 그런 경고문을 써넣지 않는다고 그 관리는 분개했다. 『남의 국민들은 암에 걸려도 괜찮다는 수작이 아니냐』는 것이었다.
인도 보팔시에서 발생한 엄청난 참사를 보면서 이 터키관리의 말이 생각나는것은 미국의 다국적 기업이 공해산업을 제3세계에 세움에 있어 그와 비슷한 정신상태로 임하고 있는게 아니냐는 의구심을 갖게 하기 때문이다.
다국적 기업이 제3세계에 진출하는 동기가 이윤의 극대화에 있는 이상 이들이 낮은 임금지대와 정부규제가 까다롭지 않은 나라를 찾는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규제가 적다고해서 인명을 대량으로 살상할가능성을 묵과하고 있다면 그 책임은 일차적으로 해당 다국적기업이 져야된다.
미국에서는 40년대에 대형·산업재난이 빈발했다고 한다. 그결과로 직업안정청(OSHA)과 환경보호청 (EPA) 등 관청이 세워져 독자적으로 공해산업의 안전수칙 상황을 정기적으로 점검하고 있고 시민들의 환경보호운동이 정부 이상으로 엄격한 감시를 하고있다.
이와같은 장치들은 공해의 안전처리문제는 해당기업에 맡길수 없다는 체험적 불신에서 나오는 것이다. 미국에서 기업이 안전기준을 낮춰 이윤폭을 넓히려는 타성을 그런 장치들이 억제하고 있다.
그러나 그런 장치가 없거나 미숙한 제3세계에서는 다국적기업의 횡포를 막을 길이없다. 그래서 다국적 기업의 본부가있는 미국등 공업국의 국가적책임문제가 제기되는 것이다.
제3세계를 미국과는 다른 기준으로 취급하려는 정신상태는 최근 말썽이 되고 있는 「의약품 수출법안」에서도 찾아볼수 있다. 미국식품의약관리청(FDA)이 승인하지 않은 약품을 제3세계에 수출할수 있도록 하려는 이법안에 대해 태국약학대 학생들은 『우리를 실험실 생쥐로 보느냐』며 격노하여 시위를 했다는 보도도 있었다.
인도 가스폭발사고의 원인은 아직 조사중이므로 그 배경을 단정하기는 이르다. 그러나 이엄청난 사고를 계기로 제3세계 국가들은 공업국의 모든 다국적기업에 대해 염격한 감시를 제도화해야 될것 같다.<워싱턴=장두성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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