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대받은 『돌아오지 않는 밀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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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돌아오지않는 밀사』 총지휘 신상옥, 감독 최은희, 상영시간 2시간, 컬러35㎜.
지난달 27일부터 4일까지 파리서쪽 4백㎞지점의 낭트시에서 열렸던 「3대륙 영화제」에 북한은 신상옥·최은희커플이 금년에 만든 『돌아오지않는 밀사』라는 영화를 출품했다.
「3대륙영화제」는 세계영화시장에서 크게 맥을 못추는(?) 아시아(일본제외)·아프리카·남아메리카등 3대륙의 영화만이 출품자격을 갖는 색다른 영화제로 이들 영화후진국의 작품들을 서구에 소개한다는 취지에서 지난79년에 시작됐다.
올해엔 25개국이 참가했으며 82년부터 이 영화제에 참가해온 한국은 올해 배창호감독의 『그해 겨울은 따뜻했네』를 출품해 호평을 받았다.
신상옥·최은희를 내세워 북한이 출품한 『돌아오지않는 밀사』는 1907년 네델란드수도 헤이그에서 열렸던 세계평화회의에 고종황제의 밀사로, 파견됐던 이준열사의 이야기를 그린 것으로 대부분이 체코에서 촬영됐다.
체코영화제에서 감독상을 받았다는 이 영화는 낭트시에서 두차례 상영되는 동안 현지의 영화 관계자들이나 일반관객의 관심을 끌지 못했다.
기자가 이 영화가 첫 상영된 콜리제극장을 찾았을때 관객은 고작 1백여명 (좌석5백석)이었고 상영도중 머리를 흔들며 자리를 뜨는 관객이 상당수에 달했다.
일반적으로 템포가 느린 아시아영화들이 서구인들의 입맛에 맞지않는 탓이기도 하려니와 그럴듯한 영화제목(프랑스어로 MISSION SANS RETOUR)과는 달리 이야기전개가 스피디하지 못하고 배우들의 연기가 너무 딱딱했던 때문인것 같다.
당초 신상옥·최은희의 북한영화에 은근히 경계심을 가졌던 영화제참가 한국영화관계자들도 『재미도 없고 별것아닌 영화』라고 평했다. 우선 기술적인 면에서 촬영·조명·현상·편집이 왕년의 신상옥이 만든 영화라고 믿기 어려울 만큼 수준이하라는 것이며 배우들의 연기도 도무지 연기라고 할수없을 정도로 기계적이었다는 것이다.
낭트에 오기전 서울에서 신상옥의 옛날 영화들을 본 일이 있다는 한 한국유학생은이 영화를 보고나서 『신상옥의 초기작품수준』이라고 말했으며 프랑스 관객들도 『너무느려서 싱겁다』고들했다.
얼핏 정치선전색채가 없는것처럼 보였으나 영화에서 미국을 배신자로 낙인찍고 제3세계국가들에 추파를 던지는 내용등은 이 영화가 숨기고 있는 의미를 알아차릴수 있게 해주는 요소들이기도했다.
결국 북한과 같은 전체주의 체제에서, 그리고 이같은 체제의 테두리안에서 자라고 「연기」해온 연기자들을 데리고서는 어떤 재능있는 영화인이더라도, 만들수있는 작품의 한계가 명백하다는 것이 이영화를 본 사람들의 대체적인 느낌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이 영화제에는 신상옥·최은희가 참석할 것이라는 얘기가 있었으나 오지않았고 다른 관계자 4명이 참석했다.<파리=주원상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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