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주 유학생 숙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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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취로 가득한 화장실에 놓인 침대에서 잠을 자고, 복도에서 샤워를 해야 한다면. 집 한 채에 58명이 한꺼번에 살아야 한다면. 당신은 살 수 있을까?

영어 공부와 해외 경험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는 워킹홀리데이 참가자가 겪을지도 모르는 현실이다. 호주 시드니모닝해럴드는 16일(현지시간) 시드니시 당국이 경찰ㆍ소방서 등과 함께 불법 주거 실태 특별 단속을 통해 38건의 불법 거주 실태를 확인했다고 보도했다.

지난 3월 조직된 특별단속팀은 최근 6주간 20여개 주택을 단속해 워킹홀리데이 참가자나 유학생, 노동자 등의 열악한 거주 상황을 확인했다.

방 3개짜리 한 주택은 촘촘히 벽을 만들어 19개의 벌집같은 방으로 개조되어 있었고 이 안에 무려 58개의 침상이 있었다. 집한채에 최소 58명이 거주했다는 의미다. 방 하나에 10명이 콩나물시루처럼 묵고 있는건 예사였다.

화장실에 침대를 놓고 자는 경우나 불법 컨테이너 안에서 사는 경우, 식료품 저장실에서 사는 경우도 있었다. 집하나에 수십명이 거주하며 배수구는 머리카락 뭉치로 막혀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었고 방마다 악취가 가득했다. 복도를 개조해 샤워실로 사용하는 경우도 있었다.

이런 열악한 주거 상황은 시드니의 살인적 집값과 임대료가 원인이라는 분석이다. 평균적인 주택 임대 비용은 주당 500~600호주달러(43만~52만원)에 달한다.

월세로 치면 150만~200만원이다. 외국인 노동자나 워킹홀리데이 참가자들이 100만~150만원 가량의 수입을 얻을 경우 집값조차 충당하기 힘들다.

이런 점을 노려 이번에 단속된 것과 같은 불법 숙소가 기승을 부리고 있다. 58개의 침상 중 하나를 쓰려면 주당 100~130 호주달러(8만 7000원~11만 3000원)을 내야 한다.

한국에서 온 워킹홀리데이 참가자들도 예외는 아니다. 이번 특별 단속이 시작된 것은 지난해 7월 호주 알렉산드리아의 작은 공장 건물에서 발생한 화재 때문이다.

소방대원들이 출동해서 발견한 건 한국과 일본 국적의 학생 15명이 공장 컨테이너와 버스를 개조해 불법 거주하는 모습이었다. 이들은 주당 160호주달러(13만원) 가량을 내고 배에 싣는 컨테이너와 부서진 버스, 낡은 캐러밴에서 거주하고 있었다. 숙소를 운영하던 이는 일본계 마사키 이메다였다.

이번에 단속된 불법주택들도 개조 등으로 화재 경보기가 작동되지 않는 등 소방시설이 부실해 화재가 발생할 경우 참사를 피하기 어렵다는 평가였다.

뉴사우스웨일스(NSW)주 백패커사업자연합의 크리스티 카스테어스 회장은 “시드니 타운홀 기차역 주변 5개 도심 블록은 과밀화로 악명이 높다”며 “대학과 가깝고 도심이라는 점 때문에 유학생들을 표적으로 한 단기 불법임대가 급증하고 있다”고 말했다.

클로버 무어 시드니시장도 호주 ABC방송과 인터뷰에서 “부모들은 자녀를 시드니에 공부하라고 보냈지만, 자녀 상당수가 이처럼 안전하지 않고 불법적인 거처에서 지내고 있었다”며 “불법 숙소를 제공하는 이들이 갈수록 치밀하게 바뀌고 있다”고 우려를 표했다.

시드니시의 특별조사반은 조직범죄 소탕 전문가인 형사 출신의 로이카텀 반장을 필두로 경찰과 군대 출신으로 조사반을 구성해 불법주택 단속과 처벌을 강화할 방침이다.

◇워킹홀리데이 열악한 노동 문제도 심각=주거 뿐 아니라 워킹홀리데이 참가자들의 열악한 노동실태도 문제다.

지난 8일 정의당의 청년ㆍ학생위원회와 비정규직 태스크포스팀(TFT)은 ‘워킹홀리데이 노동실태 조사보고서’를 통해 부당노동행위와 인종차별에 대한 문제점을 지적했다.

100명의 설문조사 결과 58%가 부당노동을 경험했다고 답했었다. 이중 가장 문제가 심각했던 곳은 호주로 72.1%가 부당노동행위를 경험했다고 밝혔다.

정원엽 기자 wannabe@joongang.co.kr
[사진설명]
1. 불법 개조된 건물의 화장실 안에 놓인 침대. [사진 호주 시드니시]
2. 거실 싱크대를 잘라내고 바로 앞까지 벙커침대가 놓여져 있다. [사진 호주 시드니시]
3. 복도를 개조해 만든 샤워시설 [사진 호주 시드니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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