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로, 경영권싸고 집안 쿠데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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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화목한 「가족경영」으로 재계에 부러움을 사오던 진로그룹이 경영권을 둘러싼 내분으로 흔들리고 있다.
그것도 4촌간의 싸움이고 올해로 진로가 꼭 환갑을 맞은 해라는 점에서 충격이 더하다. 진로그룹의 모기업인 봉진로는 26일 정기주주총회를 열고 장익용현사장(49)을 전격 퇴임시켰다. 지난75년 창업주인 장학엽씨 (81) 가 은퇴한뒤 10년간 진로를 이끌어온 장익용 경영체제가 하루아침에 무너져버린 것이다.
진로의 경영권 다툼은 창업주인 장회장의 아들인 봉용(39·진로전무)·진호(34·진로상무) 씨가 장익용사장체제에 반기를 들면서 표면화됐다. 사실 주총을 통한 이번쿠데타(?) 의 주역은 진활씨로 그는 이번거사를 총괄해온것은 물론 장사장퇴임후의 임원구성까지 도맡아 처리한것으로 알려졌다.
26일 진로본사(서울신길동) 식당에서.열린 주주총회는 처음부터 분위기가 삼엄했다.
외부인의 출입을 철저히 통제했고, 노량진경찰서의 형사기동대차량까지 대기하고있었다.
예정시간 상오10시를 10분넘겨 시작된 주총은 만장일치로 의장에 추대된 장익용사장의 사회로 결산및 잉여금처분안건을 일사천리로 통과시켰다. 그러나 집행부 임원석에 자리잡았던 진호상무가 발언권을 얻어 장 현사장을 제의한 임원명단을 제시, 표결에 붙일것을 주장하면서부터 파란이 시작됐다. 회의장곳곳에서 고함소리가터져나왔다.
이런 소란이 1시간쯤 계속되자 장사장은 『정회를 선포한다. 주주총회속개는 나중에 통보하겠다』며 11시30분쯤 퇴장해 버렸다.
장사장을 지지하던 1백여명의 주주들도 함께 나갔다.
1시간여를 기다리던 진활씨측은 새로운 의장을 선임, 장사장을 제의한 새임원 명단을 일방적으로 통과시켜 버렸다.
표결을 지지한 주식사는 진로주식 전체9백만주중 51.9%인 4백67만1천3백85주 .진호씨측은 이날의 거사를 위해 지난봄부터 주식을 사모았고 이때문에 증권시장에서는 진로주가 2천원을 넘기도 했었다.
진호씨측은 30일 이사회를 열어 창업주의 장남인 봉용씨를 부회장, 창업주의 조카이자 장익용현사장의 사촌형인 장택룡씨 (54·쥬리아회장)를 진로사장,진호씨를 부사장에 선임하겠다고 밝히고있다.
그러나 장익용사장측은 『의장이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에 일방적으로 진행된 주총은 무효』라고 주장, 법에의한 해결까지 불사하겠다고 밝혀 진로의 경영권 분규는 큰파란이 예상되고 있다.
장익용사장이 진로의 경영권을 맡은것은 창업주 장회장이 어린 아들들을 대신해 조카에게 자리를 내주고 일선에서 물러나 앉은 지난75년부터. 서독유학(슈투트가르트대)까지 한 장사장은 창업주 집안이면서도 전문경영인으로 꼽힐만큼 지난10년간 남다른 경영수완을 발휘, 오늘날의 진로로 키웠다. 이번 분규를 두고 재계에서는 남의 이야기같지 않다는 반응이다.
이번 내분도 이런 배경으로 창업주아들인 봉용·진호씨가 『우리도 경영수업을 쌓았으니 이제경영권을 넘겨달라』는 요구에서 발단됐고,장사장은 『회사경영이 말처럼 쉽지는 않다. 만년 사장을 하겠다는것이 아니라 더 경영수업을 쌓으면 언제라도 넘겨주겠다』고 맞서온것으로 알려졌다.
이때문에 장사장은 26일하오 다시 회사에, 나타나 창업주집단이 주식이 많기는하나 개인으로 치면 나도 대 주주(10%소유) 라며 울적한 심정을 토로했다 한다.
진로관계자들에 따르면 지금의 분규는 창업주만이 조정할수있으나 워낙 연로해 기대하기 어렵고, 지금의 분위기에선 수습을 위한 가족회의가 열리기도 어렵다고 보고있다. 이때문에 창업주 동생이자 장익용사장의 부친인 장학섭씨(79·서광회장)도 26일하오 회사에 나왔다가 『하늘이 부끄럽다』며 침통하게 되돌아갔다고 한다. <장성효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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