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품가게 차린지 5년…연휴 못가져|김춘호(30·서울 서대문구 북아현동 제일식품 주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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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아현동 굴레방다리 부근 주택가에 조그만 식품가게를 차린지 5년째다.
과일·과자·통조림등의 식품과 간단한 일용잡화, 담배를 파는 5평 남짓한 가게가 우리가족의 생활터전이다.
조그만 가게를 꾸려나가는 사람들 대부분이 그러하듯이 내 경우 생업에 쫓기다보니 여가를 즐길 경제적·시간적 여유가 없다. 여가는커녕 휴일 하루도 제대로 쉬지 못하는 실정이다.
비가 오든 눈이 오든 아침6시에 가게문을 열고 밤12시가 지나서 문을 닫는다.
남들이 쉬는 일요일이나 명절날에는 더 바쁘다.
가게를 연후 5년동안 가게문을 닫고 휴업을 했던건 지난 82년11월 동생의 결혼식날 한번 뿐이었다. 여가라는 말이 우리에게는 해당되지않는 것으로 알고 지낸다.
기억나는건 지난 8월초 아이들의 방학을 맞아 서울교외인 장흥으로 물놀이 간 것이다. 다른집 아이들은 바캉스 간다고 산이나 바다로, 하다못해 수영장에라도 가서 즐기는데 그럴 기회가 전혀 없었던 아이들에게 미안해서 가게일은 처에게 맡기고 시외버스를 타고 물가를 찾았다.
두아이와 함께 준비해간 버너에 불을 피워 밥을 짓고 고기를 구워 먹었다.
야외풀에서 물놀이를 하고 시원한 하루를 보냈지만 돌아오면서는 아이들과 함께 물놀이를 다녀왔다는 즐거움보다 가게를 지킨 처에게 미안한 마음이 앞섰다.
두아이뿐 아니라 처도 함께 오붓하게 즐길수 있는 시간을 마련해야겠다는 생각을 해보지만 역시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
국민학교에 다니는 두아이들이 놀러가자고 철없이 조르지 않는것이 기특할뿐이다.
요즘은 주변에 가게가 여럿 생겨서인지 매상이 전같지 않다. 생활의 근심을 떨어버리고 서민들도 여가를 갖고 몸과 마음의 피로를 풀 기회가 많아질 날이 언제쯤 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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