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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라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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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위크] 빚더미에 올라앉은 그리스가 공항·항만·고속도로 그리고 수도·가스·전기 같은 인프라를 매물로 내놓아

그리스가 유럽 채권자들에게 진 빚을 갚지 못해 애먹고 있다. 그러자 독일·중국·러시아 같은 나라의 기업들이 그리스 국가 자산을 사들이려고 줄을 선다.

공항·항만·고속도로 그리고 수도·가스·전기 같은 그리스의 주요 인프라도 매각대상으로 올라 있다. 정부의 민영화 정책을 이끄는 기관의 웹사이트에는 매물로 나온 일단의 부동산이 자세히 설명돼 있다. 매각 물건에는 ‘추진중’ ‘진행중’ 또는 ‘완료’로 계약 단계가 표시돼 있다.

이 같은 조치는 과거 민영화 프로그램에 저항하던 집권 좌파 시리자의 유턴을 의미한다. 민영화 프로그램은 국제통화기금(IMF), 유럽중앙은행(ECB) 그리고 유럽 집행위원회 등 이른바 트로이카가 그리스에 지원한 2450억 유로의 구제금융에 딸린 조건의 일환이었다.

민영화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협상 테이블에 오른 거래 중 2건이 눈길을 끈다. 중국원양운수공사(COSCO)가 그리스 최대 항구 지분 51%를 인수하는 협상, 그리고 관광객에게 인기 있는 다수 공항의 운영권을 독일 운송업체 프라포르트가 인수하기 위한 거래다.

그 밖에 매물로 나온 자산으로는 그리스 북부를 가로지르는 전장 670㎞의 에그나티아 고속도로, 뉴욕·워싱턴·베오그라드에 있는 수백만 달러 자산, 온천, 그리고 크레테섬 헤라클리온의 전 미 공군기지 부지 등이 있다.

지난 2월 말 시리자는 전략적 자산의 매각을 저지하겠다고 발표했다. 게오르게 스타타키스 경제 장관은 그리스 최대 항구인 피레우스의 매각을 중단하겠다고 말했다. 한편 파나기오티스 라파자니스 신임 에너지 장관은 여러 가스·전력업체의 지분 매각 계획을 추진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야니스 바루파키스 재무장관은 당시 이렇게 말했다. “디플레이션 위기가 한창일 때 가보를 내다파는 것은 썩 영리하지 못한 행동이다. 국가 자산을 개발하고 우수한 금융자원을 이용해 가치를 높이는 방법으로 우리 경제를 강화하는 쪽이 더 현명하다.”

그러나 3개월이 지나 상환 시한이 임박하자 시리자의 입장이 바뀌었다. 그리스 정부는 지난 4월 첫 민영화 거래를 마무리했다. 20년 간의 경마 사업권을 체코-그리스 합작업체의 자회사에 4050만 유로를 받고 매각했다.

지금은 COSCO와 피레우스 항구의 51% 지분 매각 협상이 진척된 상태다. 원래 시리자에는 ‘넘어서는 안 될 선’으로 여겨졌던 거래다. 곧 더 많은 그리스 인프라와 부동산이 매물로 쏟아져 나올지 모른다.

매각을 주도하는 ‘국유자산개발 기금’은 타이페드로 불린다. 피레우스 항구의 매각을 추진할 뿐 아니라 전력·가스 공급업체로부터 공항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국가 자산을 매물로 준비해 놓고 있다. 유럽연합(EU)과 합의하면 매각 작업이 일사천리로 진행될 것으로 예상한다고 그 기관의 대변인이 말했다. “현재 일이 진척되고 있다. EU와 협상이 타결되면 진행에 가속도가 붙어 많은 일이 신속하게 이뤄질 전망이다.”

피레우스 항구의 매각 비율을 67%에서 51%로 제한했다고 시리자가 주장했지만 반드시 그런 것은 아니라고 대변인이 설명했다. 실제로 COSCO가 인수에 성공할 경우 5년에 걸쳐 나머지 16%를 인수할 수 있는 논의가 계속된다. 그 운영권 계약에서 약속한 투자를 모두 이행하는 조건이 따른다.

진행 중인 또 다른 대형 거래는 그리스 37개 지역의 공항 중 14곳 운영권의 매각이다. 인기 휴양지 섬인 코스·미코노스·코르푸의 공항들도 포함된다. 프라포르트가 그 공항들의 장기임대료로 12억 유로를 제시했다. 곧 계약이 성사될 것으로 예상된다. 프라포르트는 기업가 크리스토스 코펠루조스 소유의 그리스 에너지 업체 코펠루조스와 손잡고 인수 제의를 했다.

그리스 2위 규모인 테살로니키 항구 67% 지분 공매의 2단계 과정에 참여할 후보군으로 8개 기업이 최종 선정됐다. 또 다른 독일 업체 ‘도이체 인베스트 에퀴티 파트너스’도 그중 하나다. 현재 그리스와 새로운 협상을 진행하는 독일이 주요 투자자라고 타이페드가 말했다. “공항의 경우 가격 다음으로 가장 중요한 문제는 경험이다. 프라포르트는 경험이 있다.”

테살로니키 항구 지분 공매 과정에 입찰한 나머지 7개 기업으로는 영국 P&O 스팀 내비게이션 컴퍼니, 러시아 철도사업체 ‘러시안 레일웨이즈,’ 그리고 ‘인터내셔널 컨테이너 터미널 서비시즈(ICTS)’ 등이 있다. ICTS는 52억 달러의 개인자산을 보유한 필리핀 사업가 엔리케 K 라손이 설립한 항만 관리 업체다.

2004년 올림픽 용으로 건설된 3개 자산도 매물로 나와 있다. 갈라치 실내 체육관, 조정 센터와 승마 센터다. 110억 유로의 추정 가격은 막대한 올림픽 비용을 고려하면 어쩌면 그리 놀랄 일도 아닐 성싶다. 지금껏 그리스의 한 부동산 개발업자가 관심을 보였다고 타이페드가 밝혔다.

루시 드라퍼 뉴스위크 기자 · 번역 차진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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