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리는 예전엔 가난의 상징이었다. 자주 먹으면 방귀나 뀌게 하는 곡물로 여겨 천시했다. 하지만 요즘은 비만·변비·당뇨병·고혈압·암 환자에게 두루 권장된다. 보리 자체가 식이섬유 덩어리여서다. 통보리 100g의 식이섬유 함량은 21g로 백미(1g)·식빵(4g)과는 비교가 안 된다. 식이섬유는 금세 포만감을 줘 숟가락을 일찍 놓게 하는 데다 장(腸)의 연동운동을 돕는다. 쌀과 보리를 적당히 섞거나 잡곡밥을 즐기면 변비에서 탈출할 수 있다.
보리를 대표하는 식이섬유는 수용성(水溶性)인 베타글루칸이다. 보리의 베타글루칸 함량은 곡류 중 단연 1위다. 쌀의 50배, 밀의 7배다. 끈적거리는 베타글루칸은 소장에서 각종 영양소의 흡수를 방해하는 역할을 한다. 당(糖)·지방·담즙산 등의 흡수를 지연시키고, 콜레스테롤 합성을 억제하는 효과도 있다. 동맥경화·심장병·뇌졸중 등 심혈관 질환과 당뇨병이 우려되는 사람에게 보리밥을 권장하는 것은 그래서다.
보리는 식후에 혈당이 ‘롤러코스터’를 타지 않도록 브레이크를 건다. 보리밥을 먹으면 흰쌀밥을 먹었을 때보다 식후 혈당 변화가 적다는 뜻이다. 보리의 당지수(GI)는 50∼60으로 백미(70∼90)보다 낮다. 당뇨병 환자에겐 당지수가 낮을수록 이롭다. 혈중 콜레스테롤 수치를 낮추는 데도 효과적이란 사실이 미국 몬태나 주립대의 연구결과로 입증됐다. 환자에게 보릿가루로 만든 머핀·빵·케이크를 매일 3회씩 6주간 먹였더니 콜레스테롤 수치가 평균 15% 떨어졌다.고혈압 환자에게 보리가 이로운 것은 보리에 든 다당류인 전분(녹말)과 식이섬유가 혈압 상승을 억제하고, 칼륨이 고혈압의 유발 원인인 나트륨(소금)을 체외 배출시키기 때문이다.
보리는 암 예방 식품으로도 기대를 모은다. 암 예방을 돕는 프로안토시아니딘·식이섬유·셀레늄이 풍부해서다. 한방에선 보리를 발아시킨 뒤 햇볕에 말린 맥아(麥芽)를 약재로 쓴다. 곡식·과일 섭취 뒤 배가 더부룩하고 막힌 것을 뚫어준다고 봐서다.
동의보감에서 보리는 ‘오곡지장’(五穀之長)으로 예찬된다. ‘곡류의 왕’이란 뜻이다. 보리는 밀·쌀·옥수수 다음 가는 세계 4대 식량작물의 하나다. 1인당 소비량은 1965년 36.8㎏였으나 2003년 이후엔 연간 1.1∼1.2㎏ 수준에 그친다.
보리는 알이 배열된 열의 수에 따라 2조맥(두 줄 보리)과 6조맥(여섯 줄 보리)으로 분류된다. 다 자란 뒤 껍질이 알(씨앗)에 달라붙어 있으면 겉보리, 알에서 껍질이 잘 분리되면 쌀보리다. 우리가 흔히 먹는 것은 쌀보리다. 멥쌀처럼 차진 찰보리와 찰기가 없는 메성보리로도 구분한다. 찰보리엔 메성보리보다 식이섬유(베타글루칸 포함)가 많이 들어 있다. 농촌진흥청은 ‘6월의 식재료’로 양파와 보리를 선정했다.
박태균 식품의약칼럼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