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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르스 놓친 역학조사관 34명 중 32명, 초보 공중보건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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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서울 여의도 한 금융사 건물에 설치된 발열 감시 카메라. [뉴시스]

중동호흡기증후군(MERS·메르스) 89번 환자(59)는 지난달 28일 장모의 병문안차 삼성서울병원 응급실에 머물렀다. 이후 전북 김제에 있는 집으로 갔다 고열 증세가 나타나자 지난 3~5일 김제 지역 3개 병원(우석병원·미래방사선과의원·한솔내과의원)을 찾아갔다.

 우석병원 등은 김제시보건소에 그를 의심환자로 신고했다. 그런데도 89번 환자는 격리되지 않았다. 김제시보건소 관계자는 “전라북도 역학조사관이 이 환자에 대해 조사한 후 격리가 필요 없다고 알려왔다”고 해명했다. 이 환자는 7일 보건소에 찾아가 자진 신고했고, 8일 확진 판정을 받았다. 이 환자와 접촉한 300여 명은 격리 조치됐다.

 당시 역학조사만 제대로 이뤄졌어도 이번에 전북 지역 방역망이 뚫리지는 않았다. 전북의 역학조사관은 단 한 명이며, 공중보건의 1년차로서 소아청소년과 전공의다. 공중보건의란 군 복무를 대신해 3년 동안 지역 보건소 등에서 일하는 의사를 말한다. 그는 3주 과정의 역학조사 교육을 받고 현장에 투입됐다. 본지는 89번 환자를 왜 격리조치하지 않았는지 해명을 들으려 전화 연결을 시도했으나 ‘당분간 통화할 수 없다’는 안내로 연결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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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내에서 역학조사관(총 34명)의 94%(32명)가 공중보건의다. 이들은 현재 질병관리본부에 12명, 인천공항에 2명, 17개 시·도에 18명이 있다. 이 가운데 10명은 올해 5월 배치됐다. 이관 동국대 예방의학과 교수는 “1~3년 동안 일하다 떠나는 공중보건의는 연속성과 전문성이 부족할 수밖에 없다”고 꼬집었다. 그는 역학조사관을 ‘베테랑 형사’에 비유했다. 메르스 같 은 질병일수록 역학조사관의 경험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신상엽 한국의학연구소 감염내과 전문의도 “이번 메르스 초기 대응 때부터 역학조사의 기본이 안 돼 있었다”고 비판했다. 역학조사의 기본이란 첫 번째 환자를 빨리 찾아내고, 접촉자를 파악해 감염 확산을 막으며, 추가로 환자가 나올 수 있는 환경을 조사하는 단계를 밟 는 것이다. 그런데 이번 메르스 사태에선 이런 기본이 모두 무시됐다는 것이다.

 역학조사가 부실할 수밖에 없는 구조적 문제도 제기됐다. 미국의 질병관리본부(CDC)는 매년 의대 졸업생이나 역학 분야 박사 80여 명을 뽑아 2년 동안 교육한다. 한국에선 역학조사관의 대부분이 공중보건의로 채워지는 데다 예방의학이나 감염내과를 전공하지 않아도 된다. 전 질병관리본부 역학조사관인 박모씨는 “2000년 처음 역학조사관을 뽑을 때 의사를 모집하기 어려워 급히 공중보건의를 선발했던 제도가 아직도 개선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보건복지부 관계자는 “전직 역학조사관과 대학병원 교수 등과 협력하는 등 보완책을 고려하고 있다”고 해명했다.

노진호·신진 기자 yesn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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