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자제, 더 늦출 이유없다"|성병욱<편집부국장대우겸 정치부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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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이른바 「정치의안」이라는 4년째 똑같은 문제를 놓고 국회가 공전하고 있다.
한데 뭉뚱그려 정치의안이라지만 거기에는 5·16이후부터의 쟁점도 있고, 유신이후의 문제가 있는가 하면 제5공화국들어 비로소 생겨난것도 있다.
민한·국민당등 야당이 가장 큰 목소리로 요구하는 지방자치제는 과속으로 가다 5·16혁명이후 중단된 것이다. 노동관계법은 71년 비상사태이후, 집회 및 시위에 관한법은 유신이후부터 문제되던것인데 80년 입법회의에서 또한차례 손질과정을 거쳤다. 언론기본법만이 순수하게 제5공화국 출범과정에서 제정된 법률이다.
따라서 같은 정치의안이라하더라도 지방자치제의 재시행처럼 공화당정권 초기부터의 해묵은 정치이슈가 있는가하면 언기법같이 제5공화국에서 비로소 생겨난 새로운 정치쟁점도 있다.
자기책임하에서 만든것은 고수하고 이어받은 것은 쉽게 고치는게 인지상정인데 기묘하게도 민정당은 언기법같은 새로운 이슈에는 탄력성을 보이면서 지방자치제 같은 해묵은 문제에는 구정권이래의 경직성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 같다.
5·16으로 시행이 중단된 지방자치제는 지난 23년여간 비능률·지방재정의 취약성등의 이유로 재시행이 미루어져왔다. 유신헌법은 아예 통일될때까지 지방의회구성을 유보시켰었다.
지금에 와서도 재정자립도등의 이유로 「계속 연구」이상의 프로그램이 제시되지 않고 있다.
하도 오래 중단되다보니 30대이하에겐 우리나라가 지방자치를 했다는 기억이 아예없거나 희미하게 되어버렸다. 그러나 전쟁중인 52년 지방의회를 선거로 구성했고, 56년에는 시·읍·면장을 뽑았으며, 60년의 4·19후에는 서울시장과 도지사까지 뽑아 완전한 지방자치제를 실시했던 시절이 있었다.
민주주의란 곧 자기통치이기때문에 지방주민의 자기통치인 지방자치는 민주정치의 기본요소의 하나다.
오죽하면 지방자치제를 그렇게도 기피했던 구정권이 유신헌법부칙에선 통일이후로 시행을 미루면서까지 본문에는 지방자치를 규정할 수밖에 없었겠는가.
흔히 지방자치제의 시행을 반대하는 논거로 낭비와 비능률을 꼽는다.
제도를 운영하자면 적지 않은 비용이 드는건 사실이다. 그러나 주민의 견제없는 자의적인 정책운용으로 인한 낭비나 국민의 불만에 비하면 지방자치의 비용은 견딜만한 것이다.
또 흔히 취약한 재정자립도를 지자제보류의 이유로 들지만 재정자립도가 거의 1백% 가까운 서울·부산등 대도시에도 지방자치가 실시되지 않고있는 현실에서 그러한 논리는 실득력이 약하다.
재정자립도는 상당수준 국세와 지방세를 어떻게 배분하느냐에 좌우되는만큼 하려고만 들면 어느정도 까지는 당장 개선할 수도 있다.
따라서 지방자치에 관한한 시행하기 어렵다고 내세우는 명분은 이유에 불과하고 결국은 하기 싫다는것이 진정한 이유가 아니냐는 의구심을 자아낸다.
부정적 측면만 보러하지 않고 긍정적 측면을 찾으면 지방자치엔 장점이 한두가지가 아니다.
우선 민정당은 당이념으로 민주주의의 토착화를 제시하고 있는데 지방자치는 세계적으로 민주정치의 훈련장으로 간주되고 있다. 풀뿌리의 민주정치(Grassroots Democracy)라고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뿐만아니라 지방자치는 정치의 완충역할도 한다.
지방자치로 국민들의 요구와 정치적 욕구는 상당히 순화된다. 지금처럼 작은 문제가 곧장 국가중추부의 책임으로 정치이슈화되거나 그 반대로 중앙정국의 불안이 그대로 전국방방곡곡의 불안으로 직결되지 않고 한단계 걸러 완화된다.
1년에 두번꼴로 정권이 바뀐 프랑스 제4공화국이 그럭저럭 사회적 안정을 유지한 이유가 지방자치와 관료제도 때문이라는건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더구나 대통령단임제헌법에따라 평화적 정권교체를 이룩해야할 처지에선 집권의 하중을 어떻게 조정해 나가느냐가 앞으로 중요한 과제가 된다.
힘이 집중되면 부담도 무거워져 그만큼 훼거의 소용돌이에 휘말리기 쉽다.
단임정신으로 훌훌 털고 일어나기에는 아무래도 집권의 부담이 너무 크지 않은편이 좋다.
민주제도에서 말하는 수평적으로 삼권분립, 수직적으로 지방자치와 권한이양이 바로 그런것들이다.
벌써 학원사태가 저지경이지만 12대총선거가 지나고 나면 정치권도 88년을 겨냥한 커다란 변화와 도전의 회오리에 휘말릴 가능성이 있다.
그러한 상황에서 지방자치제는 평화적 정권교체의 가시적 바로미터로서 주목의 대상이다.
이제 야당에 밀려서가 아니라 정부·여당 스스로의 판단으로 지방자치제에 대해 보다 긍정적이고 진취적인 생각을 해야할 때가 된것 같다.
시간을 끌기 위한 연구검토가 아니라 결실을 맺기위한 진지한 준비가 있어야할 싯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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