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단장한 광주 시민회관…광주공원의 '수퍼 정자' 꿈꾼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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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2면

지난해 12월 완공한 광주공원 시민회관은 1층 벽체이기도 한 폴딩 도어(folding door)를 한쪽으로 밀면 사방으로 열린 공간이 된다. 일명 ‘수퍼 정자’다. 지붕의 주홍색 철골 트러스는 원래 건물의 구조체다. [사진 신경섭 건축사진작가]

시민과 어우러지며 완생(完生)하길 꿈꿨으나 의도치 않게 미생(未生)으로 멈춘 공간이 있다. 새 단장이 끝났음에도 건물에는 자물쇠가 굳게 걸렸다. 건축가는 건물이 거대한 정자가 되어 누구든지 쉬며 놀길 바랐지만, 완공 6개월째 방문객은 비둘기뿐이다. 개관식도 없이 미완으로 끝난 이 프로젝트의 공식명칭은 ‘광주공원 시민회관 재조성사업’이다. 광주광역시가 추진했던 이 프로젝트의 이야기는 2010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시민회관의 정면은 옛 모습을 고스란히 살렸다. [사진 신경섭 건축사진작가]

 ◆출발은 화려=광주시는 그해 3월 남구 구동에 위치한 광주공원의 시민회관을 철거하기로 결정했다. 1972년 건립한 터라 시설이 낡았고, 지역 내 새 문화관이 생기면서 제 기능을 못하고 있다고 판단했다. 철거 공사를 시작했지만 곧 반대에 부딪혔다. 시민들이었다. 시민회관의 40여 년에는 수많은 추억이 얽혀 있었다. 누군가에게는 만화영화를 보러 가던 영화관이었고, 누군가에게는 혼례를 치른 예식장이었다. 시민회관 앞 주차장은 80년 광주민주항쟁 당시 시민군의 훈련장으로 쓰이기도 했다.

 공원의 역사도 깊다. 광주공원은 43년 일제강점기에 1호 공원으로 지정됐다. 일본은 당시 신사가 있던 공원을 가꾸기 위해 몽골·만주·대만 등 아시아 여러 곳에서 희귀한 나무를 가져다 심었다. 시간이 흘러 60년대에는 4·19혁명 희생자추모탑, 현충탑 등 각종 기념시설이 들어섰다. 광주공원에는 시대의 편린이 곳곳에 가득 남아있다.

 결국 시에서는 철거를 중단하고, 지상 4층 규모의 시민회관(3800㎡)을 리노베이션 하기로 결정했다. 이에 더해서 광주공원(4만8000㎡)도 재조성하기로 했다. 당시 활성화 방안 관련 연구용역을 맡은 전남대 이효원 교수(건축학부)는 “건물의 기본적인 골격을 남겨 역사적 흔적을 남기고, 인디 밴드의 공연장과 연습실을 만들어 노인의 공간이 된 공원에 다양한 세대가 어우러질 수 있게 제안했다”고 말했다.

 공모방식은 독특했다. 건축가와 조경가로 구성된 다섯 팀을 지명 초청한 공모전을 진행했다. MBC 노래 경연 프로그램인 ‘나는 가수다’의 형식을 차용했다. 심사위원으로 7명의 전문가와 더불어 100명의 시민을 선정해 이들 앞에서 각 팀이 프레젠테이션을 했다. 그 결과 건축가 김광수(studio_K_works 소장)와 서울시립대 김아연 교수(조경학과)의 안이 뽑혔다. 이 교수는 “시민과 함께 만든 공원 재조성 사업안은 그해의 히트작이 됐고, 담당부서가 표창받기도 했다”고 말했다.

2011년 지명 초청 공모전에서 김광수 소장이 100명의 시민 심사위원 앞에서 발표한 초안이다. 시민회관과 연계한 공원 전체 조성안이담겨 있다. [사진 신경섭 건축사진작가]

 ◆과정은 다사다난=프레젠테이션 당시 시민들에게 각광받았던 김 소장과 김 교수의 안은 ‘광주 판과 그린 콘서트’였다. 광주공원은 일제시대에 식물원으로 쓰였던 터에 4층 건물 높이를 웃도는 나무들로 빽빽하다. 김 소장은 시민회관을 숲 속 정자로 디자인했다. 건물 바닥에 밖으로 돌출한 거대한 판(422.62㎡)을 깔아 평상 같은 역할을 하게 했다. 주차장으로 쓰이던 건물 앞마당에는 똑같은 크기의 판을 하나 더 디자인했다. 김 소장은 “공간을 구획하지 않는 두 개의 판에서 세대를 아우르는 다양한 활동이 일어나길 기대했다”고 설명했다.

 그런데 공사를 위한 실시 설계에 들어가자마자 조경안은 무산됐다. 예산 부족이 이유였다. 당시 시에서 공고한 시민회관 재조성사업 지침서에 따르면 총 사업비는 39억1000만원이었다. ‘광주공원 시민회관 주변 외부공간 및 조경을 위한 공사비’는 포함되지 않은 금액이다. 시에서는 당초 계획안과 달리 공원 재조성을 위한 예산을 추가하지 않고 시민회관만 리노베이션 하기로 결정했다. 건축가가 기획했던 두 개의 판은 한 개의 판이 됐다. 당초 계획안은 축소되고 변경되면서 공사는 여러 부침 끝에 2014년 12월 26일에 끝났다.

 ◆결과는 물음표=최근 찾은 시민회관은 반쪽짜리 모습으로 잠겨 있었다. 완공 6개월째 어떤 행위도 일어나지 않고 있다. 2014년 지방선거로 시장이 바뀌었고 광주공원 시민회관 재조성 사업은 골칫거리가 됐다. 그나마 건축가의 고군분투로 시민회관은 원래 모습을 유지하면서 새로운 역할을 할 채비를 마쳤다. 내외부 소통을 위해 1·2층 벽체를 뜯어낸 덕에 주변의 울창한 나무가 건물의 배경이 됐다. 남은 기둥의 울퉁불퉁한 콘크리트 표면을 통해 시민회관의 과거와 현재가 이어진다. 이 교수는 “공원 전체를 재조성하지 못하더라도 시민회관 앞 주차장이라도 원안대로 만들어야 한다”고 조언했다. 하지만 건물 기둥에 새겨진 머릿돌에는 설계를 담당한 건축가의 이름조차 빠져있다. 광주시 노원기 공원녹지과장은 “앞으로 다양한 프로그램을 연계해 운영하겠다”고 말했다.

광주광역시=한은화 기자 onhwa@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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