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르스가 휩쓴 대치동 학원가 … 중고생은 그래도 “공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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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르스 유언비어 퍼진 지난주에도 입시학원 정상 운영
입구서 열 측정, 손 소독제 발라…고3 “수능이 더 급해”
“마스크 하고 오래요” 이번 주부터 학원 가는 초등생도

지난 8일 월요일 오후 대치동 거리. 학원으로 향하는 학생들이 횡단보도를 건너고 있다. [김경록 기자]

토요일이던 지난 6일 대치동의 한 초등학생 대상 보습학원. 굳게 닫힌 출입문에 ‘휴관 안내문’이 붙어 있었다. 학원 주변에서 만난 한 초등학교 6학년 학생은 “지난주엔 학원 한 반 14명 중에 12명이 안 왔다. 오늘은 특강반 9명 중에 2명이 안 왔다”고 말했다. 이 학생의 친구인 또 다른 초등학교 6학년 학생은 “내가 듣는 반은 9명 중 7명이 오지 않았다”고 전했다.

 강남 일대를 중심으로 메르스 불안감이 확산하면서 대치동 학원가가 비상이다. 지난 주말부터 초등학생 대상 학원 대부분은 휴관했고, 문을 열었어도 결석한 학생들이 많아 제대로 수업이 이뤄지지 않았다. 지난 주말 이 일대 거리는 초등학생들의 모습을 찾아보기 어려웠다.

토요일이던 지난 6일 오후 학원이 밀집한 대치동 은마아파트 입구 사거리는 메르스 여파로 평소보다 한산했다.

 거리를 오가는 이들은 대부분 중고등학교 학생들이었다. 중학생과 고등학생을 대상으로 하는 학원들은 지난 주말에도 대부분 문을 열었다. 익명을 요구한 한 수학전문학원 직원은 “고교생 대상 학원은 휴관하는 곳이 거의 없다. 곧 있을 기말고사를 대비하기 위해선 학원을 쉴 수가 없는 상태”라고 말했다. 주말마다 고3 자녀를 대치동 학원에 보낸다는 이모(53·서울 광장동)씨는 “고3이라 피곤하고 면역력이 떨어져 메르스에 더 잘 걸리지 않을까 걱정된다. 하지만 그렇다고 학원을 쉬면 학습 리듬이 깨질 것 같아 학원을 안 보낼 수도 없다”고 말했다.

 문은 연 학원들은 학생들에게 손 소독제를 사용하도록 하고, 학원 입구에서 일일이 열 측정을 하고 있었다. 기자가 한 수학·과학 전문학원에 들어서자 학생으로 착각한 한 학원 강사는 “소독제 바르고 가야지”라며 불러세웠다. 또 이마에 체온계를 대서 열을 측정했고, 미열이라도 있는 학생은 귀가 조치했다.

지난 수요일부터 학원에 메르스 문의 잇달아

이 일대 학부모들 사이에 메르스 관련 유언비어가 빠르게 유포된 건 지난 3일 수요일이었다. 격리 기간 중 골프장에 갔던 60대 여성의 아들이 대치동 소재 고등학교에 다닌다거나, 그 여성의 이웃에 사는 초등학생이 귀가 조치 됐다는 확인되지 않은 소문이 학부모 SNS를 통해 퍼졌다. 이 지역에 사는 한 학부모는 “대치동은 한 반에 의사 부모가 10명이 넘을 정도고, 그 중엔 삼성서울병원 의사도 상당수라 아이들의 감염이 우려된다는 이야기가 많았다”고 말했다.

 초등학생 대상 대치동 학원들이 휴관에 들어간 건 이때부터다. 한 초등 대상 학원 인근 부동산 중개소 관계자는 “지난 수요일(3일) 학원이 문을 열었는데 학부모 문의가 쇄도해 수업이 흐지부지됐다고 들었다. 그날부터 학생들은 안 오고 직원들만 출근한 걸로 안다”고 말했다.

 실제로 지난주 금요일(5일) 오후 기자가 가본 대치동 학원가의 초등학생 대상 학원 대부분은 문이 닫혀 있었다. 한 대형 학원 앞에는 ‘메르스 확산 방지를 위한 휴원 안내문’만이 붙어 있었고, 실내등은 꺼져 있었다. 이 지역 초등학교 2학년 학생의 부모인 신모씨(45·대치동)는 “학원으로부터 5일(목)부터 9일(화)까지 휴업한다는 내용의 문자를 받았다”며 “나는 아이와 집에서 주로 지내면서 사람 많은 곳은 다니지 않고 있는데 주변에는 초등학생 자녀와 아예 지방으로 여행을 간 경우도 있다”고 전했다.

오후 10시 되니 학원 끝난 중고생들로 거리 북적

한 입시학원은 입구에서 학생의 열을 측정하고, 손 소독제 이용을 권했다. [조진형 기자]

하지만 같은 건물의 다른 층에 있는 중학생 대상 학원은 정상 운영을 하고 있었다. 같은 학원이라도 초등학생 반은 문을 닫았고 중·고등학생 반은 문을 연 상태였다. 이날 밤 10시가 갓 넘은 시각. 대치동 학원에 다니는 중·고등학생들이 수업을 마치고 집으로 향하는 때였다. 비교적 한산했던 거리가 학생들로 순식간에 붐볐다. 일부 학생들은 마스크를 쓰고 있었다. 셔틀버스나 버스정류장 주위로 중·고등학생들이 몰려들었고, 버스마다 학생들로 가득 찼다. 특히 은마아파트 앞 사거리 횡단보도는 길을 건너려는 학생들로 인산인해를 이뤘다. 한 고2 학생은 “각종 유언비어가 심하게 돌았던 지난 수요일에는 우리 반 40여 명 중에 15명이나 빠졌는데 오늘은 그보다 많은 학생이 출석했다”고 말했다. 주변 상인들은 울상이다. 한 김밥 가게 주인은 “지난주부터 가게를 찾는 학생이 많이 줄었다”며 “특히 초등학생 손님은 며칠 전부터 보기 어렵다”고 말했다.

 초등학생 대상 학원들의 휴원이 많은 건 아직 면역력이 약한 초등학생의 건강에 대한 학부모들의 걱정 때문이다. 또 아직 학업에 대한 부담이 적은 것도 이유다. 중등 대상 학원을 운영하는 김모 원장은 “초등학생은 아직 학원이 쉬는 걸 민감하게 생각할 나이가 아니다. 하지만 공부가 중요한 중고생들은 학원을 빠지는 게 부담스러울 수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대치동에서 만난 고3 학생들은 “메르스 영향을 별로 못 느낀다”고 말했다. 고3인 박모군은 “부모님도 걱정은 하시지만 학원까지 가지 말라고는 안 하신다. 수능이 별로 남지 않아 공부가 급하다”고 말했다.

학부모들 “잘 먹고 잘 자면 바이러스 이길 수 있다”

각 학원은 ‘건강한 사람이라면 크게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며 학부모들의 불안감을 가라앉히고 있다. 학부모들도 메르스에 대해 과도한 걱정을 자제하는 분위기다. 고3 딸을 둔 서모씨(46·잠실동)는 “걱정이 전혀 안 되는 건 아니지만 지나친 과민 반응으로도 느껴진다. 메르스 관련 유언비어들이 너무 많다. 평소에 꾸준히 건강 관리에 신경 쓰면 심각하게 걱정할 부분은 아니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유언비어가 오가던 학부모 SNS에도 ‘이번 메르스 관련 사망자들은 천식, 폐질환 등 기저 질환이 심각한 사람들이었다. 건강한 사람들 대다수는 이겨낼 수 있다. 잘 먹고 잘 자고 마음 편히 지내는 게 바이러스를 이기를 가장 좋은 방법’이라는 내용의 글이 오가고 있다. 대치동에 있는 한 고등학교의 교사는 “학생 중에 메르스 환자가 발생한다면 큰일이지만 아직은 없다. 학생들에게 잘 씻고 우려되면 마스크 쓰고 오라고 지시했다. 학생들도 스스로 조심한다”고 말했다.

 월요일이던 지난 8일 오후가 되자 중고생뿐 아니라 초등학생들의 모습도 눈에 띄었다. “학원에서 오늘부터 마스크하고 오래요. 지난주 목요일과 금요일엔 학원 안 갔는데 오늘은 보충이 있어서 오후 6시 50분부터 밤 10시까지 학원에서 공부해야 해요.” 초등학교 5학년 김모양은 학원 네 곳에 다니는데 그중 한 곳이 문을 열었다며 빠르게 걸음을 옮겼다. 초등학교 6학년 조모군은 “학교는 휴업했지만 오늘 수학 학원은 갔다”고 말했다.

지난 주말 휴관했던 중학교 대상 학원들도 수업을 재개했고, 불안감 때문에 결석했던 학생들도 다시 학원으로 향했다. 중학교 2학년 권모군은 “지난 금·토·일요일엔 위험하다고 해서 학원 안 갔는데 오늘은 물리 경시 대비 학원에 간다”며 “내일부터는 수학 학원도 갈 예정”이라고 말했다. 16세 학생이 메르스 확진 판정을 받았다는 소식이 전해지고 24개 환자 발생 및 경유 병원의 명단이 공개됐지만 이곳에서 만난 학생들은 “청소년들은 면역력이 높아서 걸려도 독감처럼 앓고 지나간다더라. 별로 걱정 안 한다”는 반응이었다.

초등학교 4학년 딸과 카페에서 교재를 풀고 있던 40대 주부는 “초등 대상 학원들은 지난주 휴원을 많이 했는데 이번 주는 정상 운영에 들어가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그는 “메르스 사태가 장기화할 것 같아서 화요일부터는 학원 수업을 재개하겠다는 문자를 받았다”며 “학원이 쉰다고 하면 안 보낼 텐데 그렇지를 않으니 고민”이라고 말했다.

글=조한대·조진형 기자 cho.handae@joongang.co.kr
사진=김경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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