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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유 없이 시력 떨어지고, 팔·다리 저리면 신경과 진단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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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발성경화증은 뇌·척수같은 중추신경계를 공격하는 자가면역질환이다. 재발·회복을 반복하면서 중추신경이 손상된다. 서울아산병원 신경과 김광국 교수가 다발성경화증 재발관리 중요성에 대해 말하고 있다. [사진 서보형 객원기자]

‘천의 얼굴’을 지닌 질환이 있다. 팔다리의 감각이 둔해지거나 어지럼증이 나타난다. 허리나 팔다리가 저리는 듯한 통증이 나타나기도 한다.

눈 뒤쪽에 뻐근한 통증을 호소하거나 물체가 둘로 겹쳐 보이기도 한다. 다발성경화증이라는 희귀·난치병이다.

원인은 면역체계다. 내 몸을 보호하는 면역체계의 면역 조절 기능이 깨지면서 뇌·척수·시신경 같은 중추신경계를 공격해 발병한다.

반복적으로 중추신경이 손상되면서 일상생활이 불가능해진다. 사지마비 같은 치명적인 장애를 얻기도 한다.

다행히 조기에 치료하면 재발과 악화를 막을 수 있다. 지난 1일 대한다발성경화증학회 김광국(서울아산병원 신경과) 회장을 만나 다발성경화증 치료와 재발·예방관리의 중요성을 들었다.

-다발성경화증은 어떤 병인가.

“면역체계 이상으로 중추신경이 반복적으로 서서히 손상되는 것이 자가면역질환이다. 환자마다 나타나는 증상이 다양하다. 중추신경마다 관장하는 분야가 달라서다. 예컨대 시신경이 망가지면 시력이 떨어지거나 시야가 흐려진다.

뇌·척수에 염증이 생기면 균형을 잡기 힘들어지고 팔다리 감각이 없어지다 마비된다.

여러 증상이 동시다발적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주로 면역체계 활동이 활발한 20대부터 40대 중반까지 청·장년층 발병률이 높다. 면역체계가 왜 중추신경을 공격하는지에 대해선 원인이 밝혀지지 않았다. 면역조절 기능과 관련이 있는 비타민D가 부족하면 다발성경화증 발병 위험이 높아진다는 연구도 있다.”

-희귀·난치병의 특성상 진단을 받아도 치료가 힘들다는 인식이 높아 포기하는 사람도 있을 것 같다.

“다발성경화증은 재발·회복을 반복하면서 중추신경이 망가지는 진행성 질병이다. 초기에는 재발해도 신경손상 장애 없이 호전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반복적으로 재발하면 결국 신경 손상으로 장애가 남는다.

다발성경화증은 완치는 힘들지만 재발을 억제하면 증상 악화를 막을 수 있다. 초기 진단이 빠를수록 신경 손상·퇴행을 예방할 수 있다.”

-다발성경화증이 심각한 이유는.

“한번 끊어지고 망가진 신경은 예전처럼 회복되지 않는다. 결국 영구적인 신경 손상 장애로 남는다. 다발성경화증을 제때 치료하지 않으면 발병 4년차에는 중등도 장애를 앓고, 6년차에는 지팡이를 짚고 걸어야 한다. 40년 정도 지나면 휠체어 신세를 진다.

다발성경화증은 중추신경 손상에 따라 유형이 다양하고 언제·어떻게 나타날지 예측하기 힘들다. 사회적으로 가장 왕성한 젊은 성인 환자가 많아 사회적 손실도 크다. 조기 진단과 재발 억제 치료가 중요한 이유다.”

-초기 치료가 중요하지만 증상이 일반적이어서 진단이 늦은 사람도 많을 것 같은데.

“안타까운 부분이다. 다발성경화증은 전문 분야인 신경과에서도 진단하기 까다로운 질환이다. 디스크로 오인해 여러 병원을 전전하다 최종 진단이 늦어지기도 한다. 뇌 바로 아래에 있는 중추신경에 염증이 생기면 그 주위가 아니라 팔다리나 가슴·허리 등 아랫부분에 증상이 나타난다.

MRI(자기공명영상촬영)로 아픈 부위를 찍어도 원인을 찾을 수 없어 한의원에서 침을 맞거나 통증·물리치료를 받다가 신경 손상이 심해 뒤늦게 신경과를 찾는 경우도 흔하다. 이유 없이 팔다리 감각이 둔해지고 시력이 떨어졌다면 신경과 정밀진단을 받아보는 것이 좋다.”

-다발성경화증 치료는 어떻게 이뤄지나.

“중추신경을 공격하는 면역세포의 활성을 억제해 재발을 막는 식으로 치료한다. 염증이 심할 때는 강력한 스테로이드로 염증을 빠르게 줄여준다. 중추신경 염증을 줄이면 질병 진행을 늦출 수 있다.

다발성경화증은 불씨와 비슷하다. 증상이 나타났다 사라지기를 반복한다. 작은 불씨는 끄기 쉽지만 불이 커지면 진화하기 어렵다. 병이 여러 번 재발해 중증으로 악화하면 더 이상 손쓰기 어렵다.

최근에는 다발성경화증 재발을 30%가량 줄여주는 치료제가 국내에 출시됐다. 집에서 복부나 팔·허벅지 등을 1주일에 3회 자가 주사한다.

기존 치료제보다 감기 증상이 나타나는 부작용을 1%로 크게 줄여 직장이나 학업을 포기하지 않고 일상생활을 유지할 수 있도록 삶의 질을 개선한다. 한국보다 다발성경화증 발병률이 높은 미국에서 가장 많이 사용하는 치료제다.”

-집에서 자가 주사하면 어렵지 않나.

“피하 주사이므로 교육을 받으면 누구나 쉽게 따라 할 수 있다. 주사 통증은 매번 다른 부위를 주사하면 줄일 수 있다. 문제는 귀찮다는 이유로 투약을 게을리하는 것이다. 다발성경화증 환자 30~40%는 제때 투약하지 않는다.

당연히 약효가 떨어져 재발 위험성이 높아진다. 치료 효과가 떨어지는 셈이다. 다발성경화증 치료는 증상 악화를 막을 수는 있다. 하지만 이미 신경 손상이 발생한 것을 되돌리기는 어려워 주의해야 한다.”

권선미 기자 kwon.sunmi@joongang.co.kr
인터뷰=김광국 서울아산병원 신경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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