멀쩡하지 않아도 괜찮은 삶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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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0호 30면

‘히키코모리’는 일본의 사회문제다. 1990년대부터 문제시됐고, 2005년 후생노동성 조사 결과 전국에 300만명이나 된단다. 한국에서도 이같은 ‘은둔형 외톨이’가 늘어나는 추세라지만 정확한 통계도 없을 정도고, 그 양상도 많이 다르다. 어느 나라나 이런 사람들이 있게 마련이지만, 수백만명 단위로 집계되는 것은 일본뿐이란다.

연극 ‘히키코모리 밖으로 나왔어’, 20일까지 두산아트센터 Space111

연극 ‘히키코모리 밖으로 나왔어’는 키시다 쿠니오 희곡상을 수상한 젊은 작가 이와이 히데토가 히키코모리의 현실을 섬뜩할 정도의 사실적인 시선으로 펼쳐낸 무대다. 연극을 통해 사회적으로 묵직한 화두를 던지는 두산인문극장의 올해 주제가 ‘예외’라서 일본에 예외적인 문제를 꺼내든 걸까. 실제 히키코모리로 4년간 살았던 경험자이기도 한 작가는 ‘히키코모리’란 특별히 잘못되거나 예외적인 사람들이 아니라 그저 이 사회가 규정한 ‘멀쩡함’의 정의에서 다소 벗어난 사람들일 뿐임을 주장한다. ‘히키코모리’에 관한 이야기라기보다 ‘멀쩡함’에 관한 이야기인 것이다. 우리도 언제고 시스템에서 밀려나면 예외없이 ‘멀쩡’하지 않은 사람이 될 수 있다는 얘기다. 그렇다고 경고나 협박은 아니다. 히키코모리가 문제라는 사람들에게 ‘왜 모두가 예외없이 멀쩡해야 하느냐’는 반문이랄까.

‘히키코모리 10년’을 청산하고 히키코모리 출장상담원으로 일하며 조금씩 사회에 적응중인 모리타는 상사인 쿠로키와 함께 다양한 히키코모리와 그 가족을 만나며 저들의 사회복귀를 돕는다. 8년 경력(?)의 스무살 청년 타로, 20년 경력의 40대 노총각 카즈오는 쿠로키와 모리타의 꾸준한 노력의 결실인지 집을 나서 출장상담소 기숙사에 합숙하면서 마침내 일자리까지 구하게 된다.

여기까지는 그저 평범한 해피엔딩 성장드라마인가 했다. 하지만 충격적인 반전이 객석을 온통 혼란에 빠뜨린다. 타로와 함께 첫 출근길에 나선 카즈오가 곧바로 철로에 투신자살한 것. 8년간 축적된 컴퓨터 실력으로 ‘멀쩡’한 회사에 취직한 타로에 비해 도시락집 알바를 뛰게 된 자신이 초라해 보였을까. ‘멀쩡’한 구인광고에는 반드시 ‘25세 이하’라는 조건이 붙어있는 이 시스템에는 나와봤자 섞여들 수 없단 걸 깨달은 걸까.

이럴바에 ‘출장상담소’ 따위의 시스템은 왜 그를 굳이 밖으로 끌어냈을까. 출장상담원들은 저들을 ‘그대로 놔둘 수는 없다’면서 수년간 공을 들여 작전을 짜고, 바깥으로 나가기 위해 많은 준비를 시킨다. 그래봤자 길을 가르쳐주는 방법 같은 사소한 사회관계 훈련이다. 하지만 카즈오가 20년이나 집에 머문 이유는 사회성이 없어서가 아니라 오히려 사회성이 지나쳐 완벽주의자가 되버린 탓이다. 레스토랑에서 독특한 이름의 메뉴를 자연스럽게 주문할 수 있는 ‘완성된 상태’로 세상과 어우러지기를 꿈꾸며 집에 머물렀던 것이다.

이들은 단지 일정한 틀에 맞지 않는 개성적인 사람들일 뿐일지도 모른다. 획일적인 학교 교육을 받고 취직해 규격화된 삶을 사는 ‘완성된 상태’를 강요하는 시스템이 없었더라면 굳이 골방으로 들어갈 필요도 없었을 텐데, 밖으로 나오라며 다시 ‘완성된 상태’로 가기 위한 기초 중에 기초를 훈련시키는 아이러니다. 정작 이들이 집을 나서게 한 건 그런 준비나 훈련과 무관한 어처구니없이 단순한 이유다. ‘프로레슬링 경기를 직접 보고 싶어서’ 또는 ‘상담원이 나보다 덜 멀쩡해 보여서’ 같은.

카즈오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했다는 모리타의 자책에 쿠로키는 “우리가 하는 일은 밖으로 내보내는 것일 뿐”이라 잘라말한다. ‘사람이 왜 집 밖으로 나와야 하는지’는 생각할 필요도 없다는 것이다. 굳이 그런 질문과 대답이 필요하다면, ‘사회로 나와서 인정을 받기도 못받기도 하고, 자기가 가치있는 사람인지 아닌지 고민도 하면서 살아가는 많은 사람들’은 다들 대체 뭐하고 있는 거냐며.

하지만 멀쩡한 직장에 다니며 폭넓은 인간관계를 자부하는 당신, 그토록 멀쩡한 당신이 맺고 있는 사회적 관계는 대체 얼마나 견고한 것일까. 언젠가 시스템을 떠나게 된 후에도 그 관계를 멀쩡하게 유지할수 있을까. 어느날 갑자기 회사에서 잘려 거리를 헤매게 된 타로의 아버지 키요시는 ‘왜 나만 밖에 있는 건가’를 고민하기 시작한다. 그는 왜 당당히 집에 머물지 못하는 걸까. 멀쩡하지 않으면 좀 어때서.

글 유주현 객원기자 yjjoo@joongang.co.kr 사진 두산아트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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