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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漢字, 세상을 말하다] 蝼蟻之穴<루의지혈>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430호 27면

중국 춘추전국시대 법가(法家)를 완성한 한비자(韓非子·BC280~BC233년)가 지금 메르스 혼란상을 봤다면 어떤 반응을 보였을까. “내 분명 ‘천하의 어려운 일은 반드시 쉬운 데로부터 이뤄지고, 천하의 큰 일은 반드시 작은 일에서 비롯된다(天下之難事必作于易,天下之大事必作于细)’고 했거늘…”하고 혀를 찼을 일이다. 초동 단계에 철저히 대처하고, 미연에 방지했어야 한다는 충고다. 그는 우리에게 이 우화를 들려줬을 듯 싶다.

“명의 편작(扁鵲)이 채(蔡)나라 환공(桓公)을 만났다. 얼굴을 보니 환공에 병기가 있었다. 편작이 말하길 ‘공께서는 피부에 질병이 있습니다. 치료하지 않으면 장차 심해질까 두렵습니다’. 그러나 환공은 ‘나는 병이 없소이다’고 잘라 말했다.

10여일이 지난 후 편작이 다시 환공을 만났다. ‘공의 질병이 살 속에 있으니 속히 치료하십시요’라고 했다. 환공은 다시 편작을 물리쳤다. 10일이 지난 후 환공을 만난 편작은 ‘질병이 장과 위에까지 왔다’고 했으나 환공은 요지 부동이었다. 또 10일이 지났다. 환공을 멀리서 바라보던 편작은 도망치듯 발길을 돌려 달아났다. 환공은 사람을 시켜 그 까닭을 묻도록 했다.

‘질병이 피부에 있을 때는 찜질로 치료하면 되고, 살 속에 있을 때는 침을 꽂으면 되고, 장과 위에 있을 때는 약을 복용하면 됩니다. 그러나 골수로 퍼지면 방법이 없습니다. 공의 병은 지금 골수까지 파고 들었습니다’. 그로부터 닷새 후 환공은 몸에 이상을 느껴 편작을 찾았지만, 그는 진(秦)나라로 간 후였다. 환공은 결국 죽었다.

훌륭한 의사는 피부에 병이 있을 때 고치려고 한다. 이것은 모두 작은 단계에서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기 때문이다. 만사가 다 그렇다.”

『한비자(韓非子)』 ‘유로(喩老)’편에 나오는 고사(故事)다. 한비자는 이 이야기를 전하면서 “천 장이나 되는 제방도 땅강아지와 개미의 구멍 때문에 무너지고, 백 척 집도 굴뚝 틈새의 불씨로 잿더미가 된다(千丈之堤, 以蝼蟻之穴潰. 百步之室, 以突隙之烟焚)”고 말하고 있다. 오늘 우리에게 던지는 충고 아니던가….

한우덕 중국연구소장 woodyh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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