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인 김무성만 보일 뿐, 지도자 김무성이 안 보인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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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인 김무성은 과연 박근혜 대통령을 넘어설 수 있을까. 아니 넘어설 의지는 있는 것인가.

국회법개정안 처리 과정을 놓고 최근 정치권에서 새삼 제기되는 의문이다. 여야 합의로 공무원연금개혁안을 가까스로 처리했지만 이 와중에 등장한 ‘국회법개정안’(정부 시행령에 대한 국회의 수정 요구권)에 대해 박근혜 대통령이 “받아들일 수 없다”고 하자 새누리당은 그야말로 쑥대밭이 됐다. 당장 친박계는 “협상을 주도한 유승민 원내대표는 물러나라”며 김무성 체제를 뿌리째 뒤흔들고 있다. 비박계의 반박이 이어지며 해묵은 여권 내 계파 싸움이 다시 고개를 내밀고 있다. 야당 역시 재협상 불가란 입장이다. 새누리당 김무성 지도부로선 청와대-친박-야당에 포위된 샌드위치 신세다.

4·29 재·보선 압승 이후 5·18 기념식, 노무현 전 대통령 6주기 추도식 등에 잇따라 참석해 통 큰 행보를 보이며 승승장구하던 김 대표로선 급제동이 걸린 모양새다. 김 대표는 “대통령의 뜻과 우리 당의 뜻이 다를 수 없다”며 봉합에 나서고 있지만 “이번에도 김무성 정치의 한계를 드러냈다”는 쓴소리가 나오고 있다.

“국가 이끌어 갈 비전 보여줘야”
김무성 정치의 한계란 곧 ‘2인자 정치’의 한계라는 지적이다. 즉 자신만의 독자 행보를 보이다가도 갈등이 최고조에 이르는 임계점에 다다르면 결국 꼬리를 내리고 만다는 평가다. 대표적 예가 김 대표의 지난해 중국 상하이발 개헌 발언이었다. “개헌은 블랙홀”이라며 박 대통령이 거듭 개헌 불가를 강조했음에도 김 대표는 “오스트리아식 이원집정부제가 적절하다”고 구체적 대안까지 제시했다. 박 대통령과 일대 격돌을 빚을 것이란 전망과 달리 김 대표는 한국에 도착한 순간 곧바로 청와대에 사과하며 스스로 스타일을 구기고 말았다. 이후에도 증세·복지·공무원연금 등에서 대통령과 온도 차를 보였지만 결정적 순간마다 입장을 철회하곤 했다. 김 대표에 대해 “킹 메이커가 될지언정 킹이 되기엔 역부족”이란 분석이 나오는 이유다. 김만흠 한국정치아카데미 원장은 “청와대와의 지나친 줄타기에 피로감이 든다”고 전했다.

다소 갈지(之) 자 행보를 보이는 김 대표에 대한 친박계의 불신은 강하다. 익명을 요구한 한 친박계 의원은 “정치인 김무성은 전형적인 구밀복검(口蜜腹劍·입으로는 달콤한 말을 하지만 배속엔 칼이 있다)이다. 또 언제 우리 뒤통수를 칠지 모른다. 그의 레토릭을 결코 믿지 않는다”고 전했다.

한편에선 “콘텐트가 없다”란 지적도 적지 않다. 이철희 두문정치전략연구소장은 “김 대표의 정치는 이른바 ‘형님 리더십’으로 대표되는데 이를 폄하하는 시각이 많은 것도 사실”이라고 진단했다. 가급적 적을 두지 않으려는 김 대표 스타일이 일견 포용과 통합의 이미지로 부각될 수 있으나 전문화된 현대 사회에선 오히려 구시대적 행태로 전락할 수 있다는 지적이다. 실제로 김 대표를 상징하는 정책이 마땅히 떠오르지 않는 상태다. 통일·복지·경제 등에서 뚜렷한 어젠다를 제시하지도 않고 있다. “디테일에 약하다”란 얘기가 나오는 이유다.

궁극적으론 “정치인 김무성만 보일 뿐 지도자 김무성이 안 보인다”는 평가다. 한국교통대 임동욱(행정학) 교수는 “노회하고, 타협엔 능할지 모르나 현재 차기 대선주자 1위 아닌가. 그렇다면 국가를 어떻게 끌고 갈지 비전을 보여야 한다”며 “국민은 협상력을 넘어선, 김무성의 신념과 철학을 알고 싶어 한다”고 말했다.

이 같은 비판에 대해 비박계 김용태 의원은 “김무성 대표이니 이나마 당이 굴러가는 것”이라고 옹호했다. 김 의원은 “누군들 자기 성질 부리고 싶지 않겠나. 김 대표 역시 마찬가지일 것”이라며 “하지만 놀라운 자제력으로 위기 국면을 차근차근 헤쳐나가고 있다”고 전했다.

즉 다소 불투명한 김 대표의 현재 행보에 대해 “박 대통령과 싸울 줄 모르는 게 아니다. 못하는 게 아니라 안 하는 것”이라는 평가다.

“오픈 프라이머리는 박 대통령 견제” 효과
이철희 소장은 “국회법개정안과 관련돼 위헌 논란 운운은 이번 사태의 본질이 아니다. 전형적인 여권 내 파워게임”이라고 진단했다. 이 소장은 “말로는 청와대의 심기를 거스르지 않으려 하지만 결국 김 대표는 자신의 입장을 관철시킬 것이다. 유연함은 김무성 정치의 최고 강점”이라고 전했다. 명지대 김형준(정치학) 교수는 “김무성의 정치는 기다림의 정치다. 섣불리 움직이지 않고, 상황을 관망했다가 결정적 순간이 되면 농축했던 힘을 한꺼번에 분출시킬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는 김무성 측도 공감하는 지점이다. 김 대표의 한 측근은 “박 대통령이 떨어졌다고 해도 지지율 30%는 나온다. 자체 분석 결과 박 대통령 지지층과 김 대표 지지층은 70%가량 겹친다. 현재 시점에 박 대통령과 각을 세웠다간 오히려 고정 지지 표에서 이탈층만 늘어날 수 있다는 얘기다. 당분간 대통령과 함께 가야 될 시기”라고 말했다.

그럼 어느 시점에 정치인 김무성은 독자 행보를 걷게 될까. 김형준 교수는 “내년 총선을 앞둔 올해 말께가 분기점이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당내 공천 과정에서 영향력을 유지하려는 박 대통령과 자신의 입지를 굳히려는 김 대표 사이에 힘겨루기가 불가피할 것이란 진단이다. 김 대표의 측근도 “대표 취임 이전에 5% 수준이었던 지지율이 20% 이상으로 꾸준히 올랐다. 앞으로 집토끼(고정층)는 물론 산토끼(유동층)의 지지가 유의미하게 모이면 그때가 독자 행보의 시점이 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실제 김무성 대표가 최근 방점을 두고 있는 건 ‘오픈 프라이머리(완전 국민경선제)’다. 당 대표로서 기득권을 내려놓고 전략공천을 배제한 채 철저히 당원과 일반 대중에 의해 공천을 결정하겠다는 취지다. 3일 열린 서울대 특강에서도 김 대표는 “처음 당선되면 하늘을 찌를 듯한 기개를 가졌다가도 공천이 가까이 오면 비굴해진다. 훌륭한 사람이 국회에 들어와 개판이 되는 건 다 공천권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이철희 소장은 “오픈 프라이머리의 본질은 공천권을 박근혜 대통령에게 뺏기지 않겠다는 김 대표의 복안”이라고 평가했다.

메르스 사태가 변곡점 될 수도
대다수 전문가 역시 여야 대결만큼 향후 여권 내 갈등은 더욱 고조될 것이란 전망이다. 김형준 교수는 “시간이 지날수록 결국 미래 권력(김무성)에게 힘이 쏠리게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다만 박근혜 대통령의 지지율이 변수다. 내년 총선까지 40% 이상의 지지율을 보인다면 영향력은 계속 유효할 듯 보인다. 하지만 박 대통령의 지지율은 이번 주 메르스 사태로 인해 6%포인트가 빠지며 34%(한국갤럽)를 기록했다. ‘박근혜 마케팅’이 더 이상 표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면 당내 이탈은 가속화될 수 있다. 반면 김무성 대표는 6일 경기도 현장을 찾은 데 이어, 7일엔 문재인 새정치민주연합 대표를 만날 예정이다. 국회법개정안으로 꼬인 상황을 메르스 문제로 돌파해내고 있다. 임동욱 교수는 “우왕좌왕하는 정부와 달리 김무성 대표가 안정감 있게 정국을 풀어간다면 김무성 대세론에 힘이 실릴 것”이라고 말했다.

최민우·천권필 기자 minwo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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