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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가에선 맵지 않은 부드러운 음식 즐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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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안동 종가음식을 체험장 메뉴로 개발한 김기희씨가 옛 조리서 음식을 재현하고 있다. 김씨는 “옛 조리서 음식은 맛있다기보다 몸에 좋은 음식”이라고 강조했다. [프리랜서 공정식]
김기희씨가 조리한 연근찹쌀찜과 흑임자 무전 등 종가음식들.

지난달 경북 안동에 문을 연 종가음식 체험장 ‘예미정’의 9첩 한상 차림은 최고 7만원을 받는다. ㈜안동간고등어가 안동시 등의 지원을 받아 한옥을 짓는 등 64억원을 투자했다. 예미정에는 하루 평균 90여 명이 찾고 있다. 이들의 식후 반응은 뜻밖이다. “품격은 있는데 맛은 밋밋하다”는 게 대체적이다. 무슨 일일까.

 예미정의 메뉴를 개발한 푸드 스타일리스트 김기희(54)씨는 그런 반응에 오히려 안도한다. 의도대로 됐다는 것이다. 김씨는 “조선시대 조리서에서 재료를 따오거나 조리법을 참고한 게 많다”고 말했다. 선조들이 기록으로 전한 음식엔 미각을 자극하는 맛있는 음식보다 대부분 몸에 좋거나 약이 되는 음식이 많더라는 것이다.

 그의 ‘교과서’는 경북 북부 지역에서 발견된 조선시대 『음식디미방』과 『수운잡방』 『온주법』이란 반가의 조리서다. 『음식디미방』은 1670년께 정부인 안동 장씨가 남긴 기록이다. 김씨는 이들 책에 등장하는 음식을 하나씩 모두 만들어 봤다. 음식 가짓수가 많아 5년여가 걸렸다. 『음식디미방』에는 해삼 요리가 나온다. 말린 해삼을 불려 조리한다. 조미의 배합 비율까지 섬세하게 설명돼 있다. 그는 이들 조리서와 함께 안동 경당종택 등지를 다니며 음식을 맛보고 분석했다.

 종가음식은 제례나 잔치 등 ‘봉제사 접빈객’의 산물이 많다. 명태 보푸라기나 산적 꼬지 등이 대표적이다. 그는 예미정의 메뉴로 종가음식에 이 지역 향토음식을 가미했다. 콩가루를 많이 넣는 국수에다 무전·배추전, 생균 가공법을 응용한 엿기름을 넣는 안동식혜 등이 대표적이다.

 안동 김씨 종가에서 태어난 김씨는 어렸을 적부터 종가음식 문화 속에서 자랐다. 어머니가 음식 만드는 걸 보며 거들었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뒤에는 엘리자베스 2세 영국 여왕의 생일상을 차린 조옥화(93) 여사를 자주 만났다. 김씨는 전통음식을 공부하고 경산 호산대 등에서 강의하는 한편 안동음식대전을 기획했다. 또 88서울올림픽을 앞두고 열린 한국음식경진대회에선 이들 음식을 재현해 금상을 받았다. 지금은 숭실대 경영자 과정(MBA)에서 호텔 주방장 등을 상대로 한국음식의 정신 등을 가르친다.

 그는 종가음식을 산업화하면서 몇 가지 고정관념을 뛰어넘는 게 어려웠다고 한다. 이 지역 음식이 맵고 짜고 형태도 거칠다는 인식이었다. 김씨는 “그러나 직접 재현해 보니 부드러우면서도 사람 위주의 따뜻한 음식”이었다고 강조한다. 안동국수만 해도 국수가 손가락 굵기만하다는 말이 있는데 사실은 얇게 밀어 곱게 썬다고 표현한다. 그는 음식 재현과 함께 이런 이야기를 입히는 작업도 곁들이고 있다. 간고등어찜과 마죽 등은 세계화할 만한 메뉴로 보고 있다.

 예미정은 종가음식을 맛보는 것으로 그치지 않는다. 누구든지 직접 만들어보는 체험관을 만들고 음식에 들어가는 콩·마·참기름 등 식재료를 팔기도 한다. 관광·유통까지 겸하는 이른바 6차 산업화다. 요즘 김씨는 11일부터 나흘간 엑스코에서 열리는 대구음식관광박람회 기획으로 바쁜 일정을 보내고 있다.

송의호 기자 yeeh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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